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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규 Dec 27. 2020

잔치국수

12월 끄트머리 겨울밤. 잔치국수가 먹고 싶다.


연갈색 반투명한 멸치육수에 뽀얀 소면이 가득하고 소면 뭉치 중앙엔 고춧가루와 김 가루가 뭉쳐져 있는 아주 심플한 잔치국수.


젓가락을 집어 들고 소면 뭉치 중앙을 살살 풀어준다. 고춧가루와 김 가루가 적당한 배열로 흩어진다. 젓가락을 그릇 바닥에 닿을 때까지 담갔다가 소면을 최대한 많이 잡아 올린다. 고개를 숙여 입에 넣는다. 입 크기보다 넓게 잡은 소면. 입술 양쪽 바깥으로 흘러내리는 소면들. 상관없다. 두 번째 젓가락에서 다시 먹으면 된다. 입안에 가득 들어온 소면들. 입안에 살짝 과부하가 걸릴 정도의 양. 소면을 우걱우걱 씹으면 배어 나오는 멸치육수의 맛을 음미한다. 


멸치육수를 삼키며 계속 면을 씹으면 조금은 퍽퍽해진다. 밑반찬으로 나온 신김치를 집는다. 평소 먹는 김치 크기보다 더 잘게 썰어져 있다. 조그마한 신김치 조각을 세 개 정도 한 번에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입안에 가득 찬 퍽퍽해진 소면 뭉치 중앙 부분에 신김치 조각을 밀어 넣는다. 소면 뭉치가 신김치 조각을 품고 있다. 우걱우걱 씹으면 신김치가 소면 쪽으로 내보내는 매콤하고 시큼한 김칫국물이 소면의 멸치 향과 어우러진다. 


소면과 신김치를 어느 정도 삼키고 입안에 소면이 반 정도 남아있다. 양손으로 그릇을 잡고 국물을 마신다. 입안으로 들어온 국물에 남아있던 소면이 살랑 움직인다. 국물을 먼저 삼키고 육수에 흠뻑 젖은 소면을 마저 씹는다. 

겨우 한 세트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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