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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규 Feb 18. 2021

야근에 대한 생각

회사에서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2시간씩 연장 근무해 8시에 퇴근하고, 금토일을 쉬는 제도였다. 우리 팀이 시범적으로 주 4일제를 1주일간 체험했다. 결국 더 안 하기로 했다. 저녁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간식비가 나와서 그걸로 샌드위치를 시켜서 먹으며 일하거나, 그냥 참고 집 가서 먹거나, 회사에 있는 간식들로 때웠다. 저녁밥을 해결하는 방식은 이 3가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저녁밥을 ‘때우는’ 행위였다. 샌드위치는 먹으면서 일하기 위한 비자발적 메뉴 선택이었고, 8시까지 참고 집 가서 밥을 먹으려고 보면 아무리 빨라도 9시다. 제대로 된 한 끼를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그 한 끼를 차리고 나면 10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나는 라면으로 때웠다. 회사에 있는 간식을 먹으며 일하는 것도 결국엔 허기짐과 당 떨어짐을 견디기 위한 행위, 저녁밥을 ‘때우는’ 행위였다.

때운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는 한 주였다. 야근과 함께하는 저녁밥은 아무리 비싼 밥을 먹어도 때운다는 느낌이 강할 것 같다. 그리고 저녁밥을 때우게 되면 저녁도 때우게 된다. 야근하고 집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얼른 씻고 잠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 일정상 어느 기간 정도는 야근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땐 물론 야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야근이 일상이 되면 그건 분명 문제를 일으킨다. 이번처럼 1주일 야근이 아닌, 야근이 일상이던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다. 8시에 퇴근하면 적당한 퇴근이었고 보통 10시, 11시에 퇴근해 집에 가면 핸드폰을 충전시켜 놓고, 씻고 바로 잠들었다. 회사의 부속품이 된 느낌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껴서 멍하니 서 있던 내 모습이 그 생활의 썸네일이다.


야근을 끝내고 아직도 환한 빌딩들 사이를 걷는데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것은 야근하는 사람이 많아서라는 말이 생각났다.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것은 저녁밥을 때우는 사람이 많아서, 사전 뜻 그대로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간단한 음식이라는 말에는 음식의 스케일과 음식을 즐기는 마음까지도 포함되는 것 같다. 


저녁밥과 저녁을 때우는 사람이 많은 빌딩 사이를 계속 걸으며 생각했다. ‘때우다’라는 단어에는 ‘뚫리거나 깨진 곳을 다른 조각으로 대어 막다’라는 뜻도 있다. 우리는 각자의 저녁으로 회사의 뚫린 곳을 막는 걸까. 우리의 저녁이 뚫리거나 깨지면 무엇으로 막을까. 생각하며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 동안 빌딩들 사이에서 찬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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