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게임에 버그났어

by 빙기


인생은 항상 흘러간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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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었을 때, 전공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구에 대한 궁금증 외 큰 목적의식을 갖고 대학원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고, 이공계열도 아니기에 대체로 사람들이 만류할 만한 결정이었다. 대학교 끝무렵은 여느 때보다 큰 꿈과 야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박사 유학을 꿈꾸며 대학원까지 꼭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반년 간의 입학 준비 끝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입학 후 대학원이라는 작은 사회를 경험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바쁘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행복했던 것 같다. 이때까지도 진로고민은 끊이질 않았다. 진로는 평생 고민하게 된다는 말이 있던데, 진짠가보다 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생활에 불만이 커져 사회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휴학도 했었다. 휴학하고 "취업"을 찍먹 하며 짧은 고뇌의 시간도 거쳤다. 그때도 불안하고 막막했던 것 같은데, 어찌 됐건 학생의 신분이었고 다 실패해도 돌아갈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목적이었던 돈을 못 벌고 돌아가게 될 수 있겠다는 우려 외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딱히 없었다.


그렇게 한 학기 후 대학원에 복학하고, 졸업까지 열심히 달렸다. 졸업을 바라보며 새로운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고, 박사 유학 외의 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탐구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사회에 발을 내딛기 무서웠지만 어쨌든 해야 하니까, 나는 지금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해야 하니까, 다들 하니까, 무작정 할 수 있는 업무에 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연구원에 지원했지만 정말 하고 싶어서 지원한 자리는 드물었다. 면접도 오며 가며 봤지만 가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떨어졌나?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한 자리 외에는 모두 탈락하고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졸업한 지 반년.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진로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에 정진했는데, 그 길을 준비하면서도 불안했다.


불안감은 공부에서 오진 않았고, 그냥 이걸 왜 하고 있지? 이걸 해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거지?라는 막막함과 막연함, 맞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봐 오는 공포감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친구들 중에서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그 공부와 도전을 지속하는 이들도 있었고, 나처럼 흔들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자연스러운 고민이겠거니 생각하고 흘려보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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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잘 안 됐고, 어쩌다 보니 새로운 사회생활은 시작됐다.


뉴스를 켜면 절망적인 사회 소식만 흘러나오는 지금 이 시기라서 그럴까? 내 노력과 운이 부족해서일까? 아님 내 망설임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일까?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조금 흥미가 갔던 공고에 구직을 시도했고, 급작스럽게 직업 생활이 시작됐다.


대학교 다닐 때 그 흔한 인턴이라도 해볼걸 그랬나, 그때 아무 생각 없이 공부와 휴식을 오가며 지냈던 기억이 있다. 행복했던 시기였지만 취업 시장을 맛본 현재의 나는 그때의 나를 꾸짖게 된다. 뭐 하나라도 더 해뒀다면 좋지 않았겠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치만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 미래는 미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겠지.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얼레벌레 들어온 곳에서는 업무 적응이 쉽지 않았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무도 나에게 눈치 주거나 나에게 큰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정신적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어마어마하게 찾아왔다. 이때를 위해 전공 지식을 쌓아둔 것이 아니었나? 하며 열심히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원래 나는 생각이 없는 편이다. 이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누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전반적으로 생각이 없는 상태로 하루를 살아갔다. 학생 신분이 너무 달콤했던 것일까? 공부라는 길이 너무 쉬웠고 편했던 것일까? 내가 사회를 회피해 왔기 때문일까? 이제 와서 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직업 적성을 찾고 경력을 만들어서 취업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무겁기 때문일까? 적응 스트레스와 함께 전반적으로 불안한 생각이 떠돌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마음 편하게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그렇다고 불안해서 미치겠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황 발작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안하고 불쾌하고 불편한 느낌이 계속됐다. 머리가 아파서 두피로 열이 몰리는 듯 해, 이러다가 심인성으로 탈모가 오는 것은 아닌지 잠깐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렇지만 설령 탈모가 생긴다고 한들 걱정과 불안을 갑작스럽게 스위치 끄듯 꺼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정신과는 망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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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일에 적응하려고 하고 있다. 겉으로는 사실 티가 안 날지도 모르겠지만, 가까운 이들에게는 매우 티가 나고 나 스스로 조언도 많이 구하러 다녔고 현재도 그러고 있기 때문에 모를 수 없을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뭐가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업무에 적응되면 이 스트레스는 끝날까? 그렇다면 몇 주만 더 버티면 갑자기 괜찮아지려나? 그러길 바라고 있긴 하다. 어제보다 오늘 더 괜찮아지길 바라고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하고 과제하고 대학원생의 무언가의 본분을 다하는 것과 사회는 매우 달랐다 (당연히). 난 내가 이렇게 완벽주의가 심한 사람인지 몰랐는데, 왜냐면 과제와 과제를 거치면서 나를 놓는 법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정말 새로운 일을 마주한 나는 완벽주의와 순도 100% 예기불안의 집합체였다. 이 직업을 이대로 회피하며 그만두더라도, 다음 일을 찾아야 한다. 다음 일을 찾으려면 또 나를 깎아내는 고민 끝에 새로운 업무에 지원해야 하고, 또 그 거지 같은 면접 일대기를 거쳐서, 들어가면? 그러면 또 안 맞을지도 모른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삶을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해내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 정말 사람들의 인내심, 가끔 화낸다고 욕할 수 없다.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 거였다.


그 안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그 사람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당장 이 일에도 허덕이는데, 집에 와서 모든 긴장을 곤두세우던 하루의 피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운동도 겨우 가는데, 운동 갔다 오면 나는 자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는데. 그러던 중에도 다음날 아침 댓바람부터 다시 또 긴장과 불안의 하루가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면 슬퍼지는데. 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뭘 어떻게 살면 내가 불안감을 적당히 유지하면서 이 삶에 적당히 만족하면서, 쓸데없는 미래 걱정(그러니까,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두뇌에서 미친 듯이 일어나는 사고 과정과 감정 반응을 조금이라도 다스리고자 글을 쓰기로 했다. 어떻게 이성적이고 정제된 척하면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이걸 통제하기도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뭐라도 남기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적는다.


동물의 숲 주민처럼 살고 싶다.


너무 행복해 보인다. 게임을 하다 보면, 힐링 게임인 만큼 나도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동물 주민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평화롭고, 또 잡초나 나뭇가지 줍고 섬을 꾸미면서 유유자적하게 오늘 하루도 평온하게 지내는 그 삶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박물관 구경도 좀 하고, 뛰어다니고, 할 일 없으면 누워있고. 주민들이랑 인사하고, 산책하고, 섬을 투어 하는 그 생활,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미래 걱정 같은 것은 동물의 숲에서는 안 하겠지, 그냥 눈앞의 퀘스트에 집중하면서 살겠지. 하지만 내가 있는 세상은 그 세상이 아니라서, 눈앞의 퀘스트 하나하나를 깨면서도 자꾸만 버그가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