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핵심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외부를 바꾸려던 조급함, 그리고 속에서 울린 한 문장(3/5)

by 두유진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두유진<지금,여기>

변화의 핵심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두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물은 모두 서 있다.

무언가를 성취한 직후도 아니고,

어디론가 급히 이동하는 장면도 아니다.

서 있다는 것은, 일단 멈추어 있다는 뜻이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안개로 가득한 풍경 앞에 선 남자를 보여주고,

나의 그림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희미한 방파제 위에

아주 작은 인물 하나를 올려놓는다.


두 인물 모두

세상을 마주하고 있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표정은 아니다.



1. 안개 앞에 선 사람


Caspar David Friedrich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종종 ‘인생의 결단’이나 ‘정복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그림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런 해석은 조금 과장처럼 느껴진다.


이 인물은 정복자가 아니다.

그는 안개 위에 서 있지만, 안개를 걷어내려 하지 않는다.

풍경을 장악하려는 몸짓도 없다.


그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만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안개는 여전히 짙고, 앞은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이 장면이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인물이 조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볼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서 있는가’다.


2. 방파제 위의 작은 인물


나의 그림 속 인물 역시

서 있다.


그러나 이 인물은

웅장한 자연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작다.


보랏빛으로 가라앉는 하늘,

묵직하게 쌓인 방파제,

잔잔하게 반사되는 물 위에

인물은 거의 기호처럼 놓여 있다.


이 장면에서 중심은 인물이 아니라

상태다.


고요하지만 정지된 고요가 아니다.

바다는 흐르고 있고,

하늘은 이동 중이며,

색은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인물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설명도, 포즈도 없다.


이 그림이 주는 인상은

외로움이 아니라

충분함에 가깝다.



3. 외부를 바꾸려던 조급함


나는 한동안

변화를 외부에서 찾았다.


환경이 달라지면

내 마음도 달라질 거라 생각했고,

관계가 정리되면

내가 좀 더 단단해질 거라 믿었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조정하고 있었다.

속도를 바꾸고,

방향을 바꾸고,

구조를 다시 짜면서.


그 과정은

나름의 성과를 가져왔지만,

이상하게도

조급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상황은 나아졌는데

마음은 계속

다음 단계를 요구했다.



4. 『삶을 바꾸는 비결』(나비다)을 읽으며


삶을 바꾸는 비결은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무엇을 바꾸려 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특히 오래 머물게 한 문장은

“모든 변화의 핵심은 겉이 아니라 속이다”라는 말이었다.


이 문장은

새로운 해답을 주기보다는

기존의 질문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나는 그동안

겉을 바꾸는 데에 익숙했고,

속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서툴렀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5. 세상을 보는 눈은 만들어진다


책은 말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세상을 보는 방식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일 수 있다고.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내가 왜

늘 ‘합리적인 판단’을

외부에서 확인받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명,

내 선택이 현실적이라는 확인.


그 확인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상태 자체가

이미 하나의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



6. 두 그림이 말하는 공통된 태도


프리드리히의 인물과

방파제 위의 인물은

모두 같은 태도를 공유한다.


서두르지 않음.


이들은

앞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불확실함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이 태도는

체념이 아니라

신뢰에 가깝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만큼만 보고,

느낄 수 있는 만큼만 느끼는 상태.



7. 변화는 방향의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일어난 변화는

환경의 변화라기보다

방향의 변화였다.


문제를 밖에서 찾던 시선이

안으로 돌아오면서,

조급함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상황이 완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을 대하는

나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8. ‘당신이 비결입니다’


『삶을 바꾸는 비결』의

“당신이 비결입니다”라는 문장은

지금의 나에게 격려라기보다

확인에 가깝다.


비결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기존의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였다.


방파제 위에 서 있는 인물처럼,

안개 앞에 선 사람처럼,

나는 이제

서 있는 자리에서

나를 먼저 확인한다.



9. 다시, 두 그림 앞에서


두 그림은

삶의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순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상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존재.


변화의 핵심은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고,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다.


앞은 여전히 안개일 수 있고,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서 있는 나의 태도만큼은

이전과 다르다.


그 차이 하나로

삶은 이미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화요일 연재
이전 10화우여곡절 속에서 드러난 가짜 나와 진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