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고치는 게 아니라 코디하는 것이다.
오늘도 사색하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
내가 좋아하는 호주식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나만의 귀한 시간을 위한 자리를 찾았다.
이곳, 브루잉이펙트는 혼자 책을 펼치고 있어도
마치 누군가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음악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잠시 헤드폰을 꼈다가 곧 내려놓았다.
이 공간의 소리는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
카페 벽면에는 기차 창문 같은 장식이 붙어 있어
기차 여행을 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기분마저 든다.
아무튼, 이곳은 내 동네 최애 공간이다.
코코아처럼 보이지만 전혀 달지 않은
호주식 카푸치노를 한 모금씩 마시며
나는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간다.
사색은 그렇게 시작된다.
입술이 시나몬으로 물들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오늘 나의 사색 친구는 역시
나비다 조혜연의 『삶을 바꾸는 비결』이다.
이 책으로 다섯 편의 사색 여행을 연재하고 있고,
이 글은 그 네 번째 이야기다.
책을 읽다 한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겸비하고 싶은 면모를 기존의 자기 성격에 추가하여 코디하라’는 문장이었다. 255쪽
성격을 고치라는 말이 아니라,
성격을 입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주
나를 바꾸려 했는지 떠올렸다.
버려야 할 성격과 남겨야 할 성격을 나누며
나 자신을 정리하려 들었던 시간들.
하지만 이 문장은
그 모든 분류를 잠시 멈추게 했다.
성격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코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 코디는
삶의 장면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
그렇게 오늘의 사색은
‘페르소나 코디네이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성격을 평가한다.
부족하다거나, 나쁘다거나, 고쳐야 한다고 말하면서.
조심성이 많으면 답답하다고 여기고,
느리면 경쟁력이 없다고 여기고,
예민하면 피곤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존에 부족하고 나쁘게 여겼던 자신의 성격을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 또한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만약 그 성격을 버리거나, 바꿔버려서
아예 사라지게 만들었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모든 성격과 면모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기술이자 자원이다.
어떤 성격도 단독으로는 완벽하지 않지만,
상황에 맞게 쓰일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타고난 조심성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조심성을 그대로 두되,
필요한 순간에는 과감한 행동을 선택하기로 연습할 수 있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율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 성격도 훈련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학습역량의 범주에 있다.
운동을 하듯,
악기를 연주하듯,
언어를 익히듯,
그림 실력을 쌓아가듯.
나의 성격적인 면모와 행동 방식 역시
익히고, 연습하고, 다듬어야 하는 기술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을
‘페르소나 코디네이팅’이라고 부르고 싶다.
조용한 페르소나,
활발한 페르소나,
진지한 페르소나,
유머 있는 페르소나,
단호한 페르소나,
수용하는 페르소나.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의상처럼 걸어두고
상황에 맞게 선택해 입는 일.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 꽤 자연스럽고
나답게 어울리는 날이 올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으로 돌아오면
그 모든 페르소나를 잠시 벗어두고
가장 편안한 나로 돌아오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예전에는 MBTI가 꽤 흥미로웠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내가 나를 다 알지도 못하는데
알파벳 네 글자로 나를 규정하는 일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많은 내가 있고,
취향이 있고,
성격과 기질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네 글자로 단정하고
면접의 기준이 되고,
티셔츠에 프린트해 입는 시대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를 쉽게 규정하는 일에서도
조심스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MBTI를 묻는 질문조차
이제는 조금 실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인생은
어둡고 숨기기 위한 가면무도회가 아니라,
훨씬 다채롭고 밝은
삶의 전략으로서의 가면무도회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가면무도회다.
속이기 위한 가면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선택하는 가면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믿기 시작했다.
어떻게 사느냐는
어떻게 표현하느냐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쓰고, 그리고, 말한다.
나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더 잘 입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페르소나 코디네이팅 연습 중이다.
타마라 드 렘피카는 “페르소나를 가장 의식적으로 ‘입은’ 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ortrait of a Woman 과 함께 보면 좋은 작품들을 ‘자기 연출·다중 자아·선택된 얼굴’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감상하고싶다.
@mind_grida
https://www.instagram.com/mind_grida?igsh=YjN1bnN0bTVjemRo&utm_source=qr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마음을 먼저 살피는 교사입니다.
27년간 초등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의 감정과 성장을 지켜왔고,
미술치료와 감정코칭을 통해
자존감은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려지고 길러지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글을 쓰고, 그리고, 질문하며
부모와 아이, 그리고 어른이 된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자존감은 그려지는 거야』,
『오늘도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저자
미술치료·감정코칭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