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셧다운
오랜만에 만난 친구
혹은 명절날 친척 어른의 무심한 안부 인사 앞에서 턱하고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치열하게 달리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세상은 묻습니다.
왜 멈춰 있느냐고
다음 계획은 무엇이냐고.
그 질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청년들이 꺼내놓는 대답은 가장 짧고
동시에 가장 방어적인 단어입니다.
“그냥, 쉬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일할 의지도 구직 활동도 없이 쉬고 있는 청년이 42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세상은 이를 두고 니트(NEET)족이라 부르거나 경제 활력 저하라고 분석하며 혀를 찹니다. 하지만 저는 현장에서 그 건조한 숫자 뒤에 숨겨진 42만 개의 무언의 항변을 봅니다.
그들이 말한 그냥은
정말 이유가 없어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설명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이해받기엔 당신과의 거리가 너무 아득해서
차라리 입을 닫아버린 마음의 빗장입니다.
우리는 흔히 쉼을 다음 달리기를 위한 충전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이 겪는 쉼은 결이 다릅니다.
그것은 충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셧다운에 가깝습니다.
컴퓨터가 과부하 걸리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전원을 꺼버리듯, 사람의 마음도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사회적 압박이 임계치를 넘으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모든 기능을 정지시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아 고갈상태라고 부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검열하고 증명하느라
마음의 연료를 바닥까지 다 써버린 것입니다.
이력서의 빈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와 매일 밤 싸우고
나만 멈춰 있다는 자괴감을 견디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치열한 내적 전쟁의 기록입니다.
그들은 게을러서 멈춘 것이 아닙니다.
너무 열심히 마음을 썼기에, 더 이상 태울 연료가 남아 있지 않아 살기 위해 멈춰 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Doing(행위)으로 사람을 증명해 왔습니다.
어느 대학에 갔는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이력서는
바로 그 Doing의 역사를 적는 문서입니다.
그곳에 적을 행위가 없으면
마치 존재 가치가 없는 투명 인간 취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냥 쉬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Being(존재)을 묻게 합니다.
명함이 없는 나
소속이 없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잔인하고도 본질적인 질문과 독대하는 시간입니다.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았던 삶
남에게 인정받으려 나를 깎아내던 삶을 멈추고
온전히 나라는 사람의 형체를 더듬어보는 시간
이 시간은
타인의 과제를 내 과제로 착각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아들러가 말한 과제의 분리를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틈새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려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조금 늦더라도 내 호흡을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함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어야 멜로디가 완성되고
책에도 여백이 있어야 문장이 읽힙니다.
42만 명의 청년들이 만든 이 거대한 공백은
어쩌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가 반드시 거쳐야 할 집단적 쉼표일지 모릅니다.
지금 그냥 쉬고 있는 당신에게
혹은 그런 자녀나 친구를 둔 당신에게
조심스레 전하고 싶습니다.
그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닙니다.
당신은
멈춘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속도가 아닌
당신만의 속도를 찾기 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력서의 한 줄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당신의 마음은 분명히 자라나고 있습니다.
빈칸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이 빠져나가고
오롯이 나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여백입니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고
그 여백 속에서 아주 천천히
깊게 숨을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