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방과 요노(YONO)

청년들의 가장 솔직한 가면무도회

by 한가을

익명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누군가 6,500원짜리 스타벅스 영수증을 올립니다. 그러자마자 가차 없는 핀잔들이 쏟아집니다.


“물 떠다 마셔라.”

“그 돈이면 편의점 도시락이 하나다.”

“정신 머리가 가출했나 보네.”


날 선 비난 같지만

영수증을 올린 사람은

오히려 이모티콘으로 웃으며 답합니다.


이곳은 일명 ‘거지방’입니다.

서로를 ‘거지’라 칭하며 지출 내역을 검사받고,

무자비하게 혼나기를 자청하는 기이한 공간이지요.


겉보기엔 가학적인 놀이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묘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돈을 아끼지 못해 혼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너만큼 힘들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들.


그들은 가난이라는 무거운 짐을

놀이라는 가벼운 풍선에 매달아 잠시나마 띄워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치심 전시장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신의 약점을 먼저 드러내어 희화화하는 것은 고도의 방어기제입니다. 가난은 숨기고 싶은 수치심입니다.


하지만 거지방의 청년들은

그 수치심을 가장 먼저, 가장 적나라하게 꺼내 보입니다.


“나 돈 없어”라고 진지하게 말하면

분위기는 무거워지고 상대는 부담을 느낍니다.

하지만 “나 거지야, 탕후루 사 먹게 혼내줘”라고 말하면 그것은 유머가 되고 놀이가 됩니다.


이것은 패배 선언이 아닙니다.

내가 처한 곤궁한 현실을 내가 먼저 유머의 소재로 삼음으로써, 세상이 나를 동정하거나 비난할 권리를 박탈하는 주체적인 선언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궁핍함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궁핍함을 비웃을 수 있는 ‘여유’를 서로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솔직한 가면무도회 속에서

그들은 비로소 안전해집니다.


체념이 아닌 선택


한때 “인생은 한 번뿐(YOLO)”이라며 오마카세와 명품을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금리와 고물가는 그 파티를 강제로 끝냈습니다.


그 자리에

“하나만 있으면 돼(YONO)”

라는 새로운 구호가 들어섰습니다.


요노는

단순히 안 쓰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욕망 중에서

나에게 가장 본질적인 하나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남들이 다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비교의 행복에서 벗어나

나에게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겠다는 가치관의 전환.


그것은 가난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망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입니다.


가질 수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정의 내리는 힘.


요노는 청년들이 무력감 속에서 찾아낸 자존감의 다른 이름입니다.


함께라서


혼자서 컵라면을 먹으면 처량하지만

친구들과 모여서 “우리 오늘 라면 파티하자”라고 하면 즐거운 추억이 됩니다.


거지방과 요노 트렌드의 핵심은 바로 연대입니다.


월급은 스쳐 지나가고

전세 대출 이자는 오르는 막막한 현실.


혼자 감당하면 우울증이 되지만

익명의 공간에서 “나도 그래”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고통은 시대의 현상으로 객관화됩니다.


‘나만 실패한 것이 아니구나.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겨울이구나.’


그들은

서로의 지출을 단속해 주며 묘한 동지애를 느낍니다.


서로의 가난을 놀리고 웃어넘기며

이 차가운 시기를 건너갈 심리적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것은 밥그릇을 나누던 옛 시절의 정(情)이

디지털 시대에 맞게 진화한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유쾌한 짠내음


누군가는 거지방을 보며

“청년들이 꿈을 잃었다”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가장 비참할 수 있는 순간조차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

결핍을 놀이로 만들어 서로를 다독이는 지혜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놀라운 회복 탄력성이 아닐까요?


그 유쾌한 짠내움 속에서

당신은 이미 삶을 주도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난을 유희로 만들 줄 아는 당신이라면

훗날 찾아올 풍요 또한 누구보다 값지게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긴 글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필요한 누군가가 생각나면 조심스럽게 공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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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