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지하철 안
청년들의 가방을 유심히 봅니다.
무채색의 백팩과 숄더백 위로
형형색색의 인형 키링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흔들립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쓸모없는 장식품일지 모릅니다.
"그 돈을 모아서 차라리..."
라는 핀잔이 따라붙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그 작은 인형들이 마치 부적처럼 보입니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
불안정한 고용 시장
예측할 수 없는 물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변수들 앞에서, 청년들은 자신이 확실하게 움켜쥘 수 있는 '확실한 통제권'을 샀습니다.
그들이 산 것은 5만 원짜리 인형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
작지만 확실한 '내 것'이라는 감각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핵심은 아이스크림이 아닙니다. 그 위에 올라가는 벌집꿀, 자몽, 초코볼 같은 토핑입니다. 때로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토핑 가격이 아이스크림 가격을 훌쩍 넘기도 합니다.
이것을 토핑 경제라고 부릅니다.
이 현상은 우리 삶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내 집이라는 삶의 베이스를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시대
텅 빈 방
좁은 고시원
기약 없는 전세살이...
삶의 기반이 흔들릴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위를 덮을 화려한 ‘토핑’을 찾습니다.
명품 가방은 못 사도 명품 로고가 박힌 키링을 달고,
내 집 인테리어는 못 해도 내 다이어리는 스티커로 빼곡히 꾸밉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베이스가 초라하다고 해서 삶 전체를 초라하게 두지 않겠다는, 취향으로 내 존엄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노력입니다.
내가 고른 토핑으로 내 삶의 맛을 결정하겠다는 주체적인 선언인 것입니다.
심리학에는 통제 소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 삶의 사건들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힘이죠.
이 믿음이 깨질 때 인간은 깊은 무기력에 빠집니다.
지금 청년 세대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은 통제 불가능성 입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이 안 되고, 월급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습니다.
내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때 커스터마이징은
잃어버린 통제감을 회복시켜 주는 강력한 치료제가 됩니다.
가방에 어떤 키링을 달지
폰 케이스에 어떤 그립톡을 붙일지
신발 끈을 어떤 색으로 묶을지
이 사소한 결정들은
오롯이 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이 내게 “너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키링을 고르며 무의식적으로 대답합니다.
“아니, 적어도 내 가방의 풍경은 내가 결정해.”
내 집 대신 키링을 사는 행위는,
무력감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내 손 닿는 곳의 질서를 스스로 부여하는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기성세대의 성공이 소유에 있었다면
지금 세대의 행복은 표현에 있습니다.
아파트는 101호나 102호나 구조가 똑같습니다. 소유는 획일화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키링은 다릅니다.
모남희, 그로밋, 잴리캣, 직접 만든 뜨개 인형...
그 조합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설명합니다.
아들러는 “남에게 인정받기보다 나 자신을 수용하는 용기”를 강조했습니다.
청년들은
거대한 자산을 소유함으로써 남들에게 인정받는 길 대신, 작고 소소한 물건들로 나다움을 표현하며 스스로를 수용하는 길을 택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월세방에 살지라도
내 가방만큼은 나다워야 하고
비정규직일지라도 내 책상 위 피규어는 내 취향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본이 잠식해 들어올 수 없는
나의 마지막 고유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돈 아깝게 이런 걸 왜 사냐”는 핀잔을 듣더라도
혹은 스스로 “내가 너무 사치스러운가”라는 죄책감이 들더라도,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당신은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오늘을 견딜 힘을 산 것입니다.
거대한 파도 같은 세상 앞에서
내가 닻을 내릴 수 있는
아주 작지만 확실한 내 편을 만든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날
당신이 고심해서 고른 그 작은 키링 하나가 당신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그래도 이 작은 세계의 주인은 너야.”
그 작은 통제감들이 모여,
언젠가 당신의 삶 전체를 단단하게 지탱해 줄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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