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시댁’이라는 두 글자의 오만과 편견 : 허상 속에 감춰진 의미
우리는 종종 시댁 식구들이 건넨 가벼운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거나, 좋은 의미로 한 말이어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먼저’ 받아들이곤 한다.
‘시댁’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가부장적 구조가 만들어낸 시대의 유물일지도 모른다. 그 무게는 실제보다 훨씬 무겁고, 더 크다.
마치 축축이 젖은 손으로 전기 코드에 갖다 대면 금방이라도 감전이 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정작 그들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는
‘셀프 디스’의 자각에서부터 이런 생각들이 만들어 진건 아닐까 싶기도 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작아지게 만든다면
그 이후의 감정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 모습은 마치 완전 무장을 한 군인이
“돌격”이라는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날아오지도 않은 화살에 대해 먼저 방패를 든 셈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시댁’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어리석은 허상에 불과하다.
나 역시도 그 허상 속에 갇혀 있었던 적이 있었다.
2025년 7월 31일.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나의 인생에서 위대하고도 초라한,
‘퇴사’의 날이었다.
13년의 회사생활을 졸업하고
‘진짜 나답게’ 살아가고자
‘작가’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날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스스로도 잘 안다.
그냥 ‘백수’가 되었단 사실을.
퇴사를 앞두고 보름 전쯤,
시댁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퇴사 소식을 전했다.
“아버님, 저 보름 후에 퇴사해요…”
아버님은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요즘 경기도 너무 안 좋고,
그만한 직장 구하기가 힘든데 갑자기 그만둔다고…….”
그 한마디에
감정이 확 올라왔다.
‘아들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할 텐데.’
‘결국 아들만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물론, 내 계획을 면밀히 설명하지 못한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다.
가령, 내가 정말 ‘전업주부’가 된다 하더라도
우리 부부가 함께 내린 결정인데,
그 선택을 믿어주시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님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보름 후.
예정대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8월 2일, 퇴사 후 이틀 만에
아버님께 전화 한 통이 왔다.
“이틀 전에 퇴사한 거지?”
“그래, 더운데 몸 관리 잘하고 내일 저녁 식사하자꾸나.”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또 혼자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정말 뭐야, ‘퇴사’에 대해 확인 사살이라도 하려는 전화야?”
“정말 숨 막힌다………”
다음 날, 일요일 저녁.
시댁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환하게 웃으신 아버님이 입을 여셨다.
“퇴사를 축하해.”
“고생 많았고, 앞으로를 응원할게.
그리고 오늘 만나자고 한 건…
일주일 후 네 생일 때문에 보자고 한 거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오해는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이었다.
보름 전, 그때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아버님의 말은 정말 아들이 걱정돼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걸까?
아니다.
진심 어린 애정이 섞인 조언이었다.
아버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얼마를 벌든,
성실하게 직장에 나가 하루하루를 살아야
아름다운 인생의 조각이 맞춰지는 거란다.”
그때의 그 한마디는,
며느리를 향한 따뜻한 조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듯,
‘시댁’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속아 우리는 마치 소설작가가 된 듯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분명 따뜻하게 건넨 말이었는데도
우리는 먼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당신은 ‘시댁’이라는 단어에 속지 말아라.
오해와 착각, 그 어리석음 속에 나를 가두지 말아라.
때론 그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