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신상이 모두 공개가 되었는데요. 지나가다 봤을 듯한 매우 평범한 인상이기에 더욱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평범과 보통'이라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있고 공통적이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 일상에 치밀하게 파고드는 섬뜩함이 직관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범죄자 정 씨는 취재진과 짧은 인터뷰에서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지만, 현장 CCTV 속의 그녀는 범행 후 유달리 경쾌한 발걸음을 보였고, 구속되어서도 태연히 잘 지낸다는 뉴스가 보도되어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관련 전문가들은 '정 씨는 단순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반사회성·경계성 성격장애를 보인다, 극히 제한된 대인관계와 오랜 은둔생활로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과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요. 그녀의 인생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011년에 개봉한 영화<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는 한 아이와 엄마를 중점적으로 다룬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린 램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틸다 스윈턴, 에즈라 밀러가 각각 엄마와 아들의 역할을 맡아 고도의 심리 연기를 정교하게 표현하여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1)> ⓒ BBC 필름스
영화는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에서 이벤트를 즐기는 한 여성을 주목하며 시작합니다. 환호하며 축제를 만끽하는 사람들. 그 현장은 언뜻 즐거워 보이지만, 점점 아비규환 속 처참한 현장과 유사하게 장면이 이어집니다.
붉은 토마토의 물결은 잔혹한 사건의 현장을 연상케 하며 주인공 에바(틸다 스윈턴 분)에게 어떤 불길한 사건이 이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린램지 감독은 영화 전반적으로 '붉은색'을 중요한 모티브를 삼아 중요 사건의 암시, 상징 등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붉은색은 정열, 열정을 대표하는 색이지만 때로는 악(惡), 혈(血) 등을 떠올리게 하는 이중적인 색깔이니까요.
일상의 단서가 트리거가 되어 자연스럽게 에바(틸다 스윈턴 분)가 과거 기억을 떠올려 현재와 맞물리도록 바느질하듯 엮는 장면들은, 관객이 적잖은 심리적 타격감과 함께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경험을 하게 합니다.
붉은 색 토마토 통조림. 토마토 축제와의 연결성을 보여준다 ▲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1)> ⓒ BBC 필름스
결혼 전 에바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며 유명한 여행 작가였습니다. 결혼과 아이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토마토 축제에서 다소 충동적으로 프랭클린(존 C. 라일리 분)을 만나 임신을 하며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양육에 서툴던 에바. 아이와의 눈맞춤, 언어·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안아주기 등 아이가 분출하는 욕구에 제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는 그럴수록 더욱 에바를 힘들게 하는데요. 굉장히 까탈스러운 기질로 태어나 엄마의 노력하는 모습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죠. 마치 날 때부터 악마의 기운을 받은 아이처럼 유독 엄마에게만 공격적, 폭력적인 모습을 강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좌=자신만의 공간을 망친 케빈에게 분노하는 에바. 우=반항하는 케빈 ▲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1)> ⓒ BBC 필름스
그러나 케빈의 어긋나는 모습은 영화 곳곳에서 '엄마에 대한 애정을 갈구하는 심리' 때문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자신을 밀쳐 팔이 부러졌을 때도 마치 그녀를 두둔하는 것처럼 '자신이 잘못해서 일이 벌어졌다'고 둘러대는 한편, 엄마가 읽어주었던 로빈후드의 영향으로 활쏘기에 뛰어난 소질을 보입니다.
여동생이 태어난 후에는 동생에게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해를 입히고, 엄마가 사준 옷을 청소년이 되어서도 입는 퇴행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결국 엄마의 사랑을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여동생에게 끔직한 위해를 가하게 됩니다.
활은 학교의 친구들을 무자비하게 대량 학살하는 범행도구로 이용되며 반사회적이고 폭력성을 띠는 은둔자였던 케빈이 결국 엄마를 포함한 만인에게 희대의 살인자로 주목받게 됩니다.
로빈후드처럼 영웅이 되고 싶었던 아이 케빈. ▲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1)> ⓒ BBC 필름스
|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최근 정신의학, 심리학에서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굳이 구분하지 않습니다. 경계도 불분명하거니와 선천적으로 품고 태어난 악(惡)이냐, 후천적으로 습득한 악(惡)이냐를 분류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공감 능력을 다루는 뇌의 특정 부위의 기능장애로 보는 시각이 대세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질병을 분류해 놓은 표인 DSM-5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속한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다음 7가지 중 3가지 이상 해당하는 자에게 명명할 수 있습니다.
1. 법이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2.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속인다. 3. 충동적이고 무계획적이다. 4.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다. 5. 자신과 상대방의 안전에 대해 무감각하다. 6. 무책임하고 경제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 7.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진단명이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진단 기준은 없으나 단순하게 비교를 해보자면 사이코패스는 평생 선과 악의 차이란 것을 모르고, 충동과 욕구에 따라 범행을 저지릅니다. 자기 잘못으로 타인이 고통받는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소시오패스는 타인을 관찰하여 잘못인지를 알면서도 그에게 고통을 주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반사회성 인격장애
부모, 특히 어머니와의 기본적 신뢰의 결여가 주요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부모의 무관심, 무책임한 태도를 뛰어넘는 폭력적이고 학대적 양육이 성격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상황
범죄자 정 씨의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유전적 기질, 사회적 환경(고립된 생활, 제한된 인간관계), 피해 망상(또래의 명문대 학생을 표적으로 삼은 점, 타인 신분 도용 가능성, 주목받고 싶은 심리 등)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판단을 통해 그의 심리상태를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영화 케빈의 부모와의 관계, 가정 내에서의 위치, 돌봄, 기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제한된 인간관계, 피해망상, 폭력성 등 아이의 성격 형성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던 인자들을 영화 전반을 통해 다각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듯이 말입니다.
결국은 사회문화 경제적인 상황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뿐만 아니라 가장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할 아이와 부모(주 양육자)와의 관계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주요 가능성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고 가정·사회·국가 모두 결핍된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영역에서 역할을 다해야겠습니다. 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존중받고 존중하며 살아갈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