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파리대왕>
전쟁의 한복판에서 후송되어 가던 소년들이 우연히 한 무인도에 발을 디뎠다. 구조될 그날까지,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생존해야만 했다. 인물을 선정하고, 다수결로 리더를 뽑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민주주의의 축소판을 연상시켰다. 발언권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그들의 노력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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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기존의 체제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등장했다. 리더 랠프에게 맞서며 쿠데타를 일으킨 잭과 그의 세력. 이 광경은 마치 우리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본 어른들의 이념 대립과 잔혹함을 겹쳐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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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들이 보인 집단적 광기는 신앙, 이성, 양심마저 버리고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통해, 대변동의 시기에 인류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가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날카롭게 비추었다. 랠프를 배신하고 잭에게 힘을 실은 대부분의 아이는 무력과 폭력 앞에 굴복하고 결속했다. 이성과 논리는 그렇게 무너졌다, <서울의 봄>을 보는 듯하게. 그러나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낸 잭과 지시를 중심으로 한 랠프의 리더십 방식의 차이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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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잔혹한 행위가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여전히 아이였기 때문이다. 구조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먹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잔인함 속에서도 순수했던 그들의 본질에 가슴이 아려온다.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나는 숨을 멈추고 눈길을 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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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사리를 잘 알지.
우리에게 어른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만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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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다시 <서울의 봄>을 떠올렸다. 사리를 아는 것이 누구이며, 어른다움이란 무엇일까.
이 지독한 비극 속에서, 나는 그 안타까운 오늘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