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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May 20. 2024

극한상황에서 인간성이 유지될까

책 <파리대왕>



전쟁의 한복판에서 후송되어 가던 소년들이 우연히 한 무인도에 발을 디뎠다. 구조될 그날까지,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생존해야만 했다. 인물을 선정하고, 다수결로 리더를 뽑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민주주의의 축소판을 연상시켰다. 발언권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그들의 노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기존의 체제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등장했다. 리더 랠프에게 맞서며 쿠데타를 일으킨 잭과 그의 세력. 이 광경은 마치 우리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본 어른들의 이념 대립과 잔혹함을 겹쳐 보게 만들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들이 보인 집단적 광기는 신앙, 이성, 양심마저 버리고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통해, 대변동의 시기에 인류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가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날카롭게 비추었다. 랠프를 배신하고 잭에게 힘을 실은 대부분의 아이는 무력과 폭력 앞에 굴복하고 결속했다. 이성과 논리는 그렇게 무너졌다, <서울의 봄>을 보는 듯하게. 그러나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낸 잭과 지시를 중심으로 한 랠프의 리더십 방식의 차이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아이들의 잔혹한 행위가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여전히 아이였기 때문이다. 구조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먹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잔인함 속에서도 순수했던 그들의 본질에 가슴이 아려온다.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나는 숨을 멈추고 눈길을 떼지 못한다.

어른들은 사리를 잘 알지.
우리에게 어른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만 있다면 좋겠어.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다시 <서울의 봄>을 떠올렸다. 사리를 아는 것이 누구이며, 어른다움이란 무엇일까.

이 지독한 비극 속에서, 나는 그 안타까운 오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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