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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May 29. 2024

폐허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재생

박완서, <나목>





초록빛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둣빛 바탕 위에 갈색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진 듯한 이 모습은 마치 은은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소녀를 연상시킨다.

이 감람색 혹은 올리브색은 지속 가능한 생명력과 평화, 그리고 희망을 상징한다.


이 소설은 어두운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새로이 피어나는 희망의 이야기를 그리며 그 깊은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치 솔잎 향기가 나는 것 같아, 나는 자주 책에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대었다.      




1976년, 박완서 작가의 첫 작품으로 세상에 선보인 이 소설은 그녀가 40세가 되던 해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20세가 되기 전,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떠올리며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녀는 그 시절의 순수함과 열정이 희미해질 때마다, 이 작품을 다시 열어보곤 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 마음을 닮고 싶어 책장을 소중하게 넘겼다.      






작품은 한국전쟁 직후 서울의 수복 시기를 배경으로, 당시의 고통을 겪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내면의 감정을 미세하게 포착한다.

주인공 이경은 '나'라는 시점에서 자신이 경험한 사건과 감정을 세밀하고 생생한 문체로 담아낸다.     



이경에게 옥희도는 단조롭고 침체된 일상에 새로운 감정의 파동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반면 이경또한 옥희도에게 새로운 바람을 가져다준 존재였다.

옥희도의 잿빛이면서도 공허한 눈빛을 통해, 이경은 둘이 어떤 면에서 서로 닮아있다고 느꼈다. 마치 서로의 외로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잊혀진 퍼즐 조각처럼.     



하지만 서로를 뮤즈로 여겼던 그들은, 결혼과 예술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들을 이어주던 연결 고리가 결국 끊어지고 말았다.     



수년 후, 옥희도의 유작 전시회에서 이경은 '나목'이라는 작품과 마주한다.

한때 그의 작업실에서 본 황량한 '거목'의 그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녀 앞에 선 나무는 쇠약해진 '거목'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나목'이었다.     






나는 '나목'이 상징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한국 사회, 주인공의 가족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 지루한 나날의 단조로움, 황폐해진 마음 등,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느꼈다. 이경은 '나목'을 통해 위안을 찾았고, 옥희도는 그림을 통해 희망을 전했다.     



이 작품은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내며, 인간의 내면 깊숙한 감정을 탐구한다.

'나목'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삶의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경과 옥희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겪는 삶의 고통과 회복, 그리고 재생의 과정을 반영한다.

그들의 관계는 일시적으로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와 '나목'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작품은 삶이 때때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지만, 그 안에서 성장하고, 치유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다양한 서사와 줄거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며, 그 메시지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이슈를 잘 반영하여 현시대의 독자들에게도 큰 의미를 전달한다.


박완서 작가라는 거대한 등불이 자신의 처녀작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많은 독자가 작품의 행간에 서린 애잔함과 새로운 희망을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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