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이라는 자전적 산문을 읽었다. 이 책은 어머니의 자살 이후 그녀의 삶을 회고하며 기록한 작품이다. 글을 읽으며 과거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았다. 외면했던 고통의 기억을 글로 남기는 것은, 마치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듯한 통증과 같을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매번 그 아픔을 견뎌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은 서서히 흐려지고, 도려낸 자리에는 거칠지만 새로운 살이 돋는다. 이전에 부드럽고 매끈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상흔과 같은 글이 남는다. 회고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한트케의 작품과 이 작품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고통의 기억을 마주하고, 그것을 기록하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 고인을 자유롭게 하는 과정. 두 작품 모두 글쓰기가 치유와 해방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조 작가는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듯 꺼내놓았다. 어머니의 과거와 불륜과 죽음을. 지난한 가정사와 가족 간의 관계를. 자신과 타인의 건조한 관계를. 모든 것이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나날들을.
시간이 흘러서인지 차가운 머리로 글을 써 내려간 듯한 느낌은, 자신의 서사에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모습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죽음에서도 울음을 터트리지 못하고 담담했던 그녀. 자신은 괜찮다며 바쁜 일상의 틈으로 무작정 밀어 넣었던 그녀. 글이 이성적일수록 그녀가 더 외롭고 애처로워 보였다. 마치 비 맞은 새처럼.
그러나 곧, 글로써 자유로워진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글의 문맥에 맞게 단어들을 정교하게 조율했다. 작품의 제목을 다시 본다. 『태어나는 말들.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왜 그녀 자신이 아니고 우리라고 표현했을까? 그렇다.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했던 시선을 세상의 여성들에게로 돌렸다. 그들을 위해 단어를, 언어를 재정의하며 길어 올렸다.
나의 이야기는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 태어났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언어, 당신의 말, 당신의 몸으로 들려달라. - 작가의 말 中에서
이 글을 읽는 동안 독자는 그녀의 아픔과 치유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공감과 위로를 전해준다. 당신도 이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이야기를 세상과 나눌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