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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Mar 15. 2023

20년 만에 돌아온 편지

낯선 어쩌면 익숙한


꽤 오랜만이었다.

녀석이 모친상을 당한 후였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곱게 접힌 종이, 편지 같은데 내 쪽으로 쓱 밀었다.

나는 열어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눈을 다시 크게 떠보았다.

그 종이 안에는 20년 전의 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세련되지 못하고 유치하게 널브러진 글씨들에 당황하며, 내가 왜 이것을 너에게 주었냐는 물음에 본인이 보낸 편지에 답장한 것이라 했다.

차마 보기 민망한 철없던 그 시절에,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가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왔다.






- 이런 걸 왜 갖고 있어.

- 그동안 친구들, 부모님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유품들 정리하면서 거의 다 버렸어. 근데 이건 버리기가 그렇더라고. 너는 내 것을 버렸겠지만.


할 말이 없었다.


- 언젠가 만나면 한번 보여주고 싶었고.

보여줬으니 버려야겠다.


녀석은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피식 웃었다.






놈은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궤도에서 한참 벗어난 탕아와 같았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항상 들떠있었고, 그저 인생이 즐겁다고 했다.

틈만 나면 유랑하듯이 가방 하나 덜렁 메고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났고, 기타를 메고 다니며 아무 곳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은 저 사람 탈을 쓴 베짱이가 과연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시간은 꽤 흘렀고, 세월 한여름의 정점을 찍은 뒤 다시 보게 된 녀석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눈앞에 앉아있다.

엉뚱 발랄함과 쾌활함 대신, 전에 없던 피로함과 무거움이 먼저 눈에 띄었다.

그간 이리저리 많이 차이고 괴로웠던 시간을 대변하듯이.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 세상에 있을는지.

꽤 밝고 유쾌했던 젊었던 날들이 속절없이 스쳐 지나갔다.








- 고양이, 책, 열쇠.

- 그게 뭐야.

- 사람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잖아.

- 나 고양이 키우는 거 알아?

- 아니, 튀어나온 거야. MBTI 하듯이 즉흥적으로.

- 책은 그렇다 치고 그럼, 열쇠는 뭔데.

- ….



나는 편지를 다시 돌려줄 수 있냐는 예의 없는 질문과 굳이 왜 '열쇠'인가 묻기를 포기하였다.

때가 되면 이야기를 들을 날이 올 것이고, 이야기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라며 서로에게 축복하였다.



마침 마시는 커피잔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온 세상이 매일 너에게 다정하길




다정한 오늘과 내일이 너의 앞날에 함께하길.

세월의 흐름에 자연스레 영그는, 언제나 맑음 그대로이길.



봄이다. 봄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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