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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놀음, 가스라이팅

조종하거나, 조종당하거나

by 비타


여기, 아름다운 한 여인이 있습니다.

기품 있고, 우아하며 하얀 피부에 윤기 나는 금발을 가진 여성.

저음이지만 귀에 쏙 들어오는, 목소리까지 매력적인 여성.

지성과 미모를 두루 갖춘 그녀의 직업은 작가입니다.



그녀는 어느 파티장에서 운명의 짝을 만납니다.

그 역시 젠틀하고 매너 있는 남성이었습니다.

한눈에 반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어요.

그런데 결혼 5주년이 된 날, 갑자기 여인이 사라집니다.

남 부러운 것 없어 보이는 다정한 그와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출처 : 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이하 동일).



'파이트 클럽', '소셜 네트워크' 등을 연출한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2014)'는 미국 작가 길리언 플린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벤 애플렉(닉 던 역), 로자먼드 파이크(에이미 던 역)가 주인공을 맡아서 열연을 보여주었는데요.



영화 시작 장면과 엔딩의 장면이 유사한 수미상관의 기법을 따르고 있는데, 마치 극이 다시 시작하는 듯한 데자뷔 현상을 일으킵니다.

촘촘한 연출, 치밀한 전개, 예측 불가한 스토리 등으로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데요.

여주인공인 로자먼드 파이크는 에이미를 완벽하게 연기해 냅니다.

소름 끼치도록 미세한 표정 변화, 말투, 몸매 등 모든 것이 에이미 그 자체였으니까요.




차갑고 싸늘하면서 공허한 눈빛의 에이미.






에이미는 그녀의 엄마가 쓴 동화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여주인공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늘 화제의 중심이었고 주목받는 삶을 살았죠.

어찌 보면 교양 있는 부모에게 맞춰진 딸로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춰진 그녀의 눈빛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런 그녀가 닉을 만나면서 가면을 벗은 자신을 만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원하는 완벽한 이성으로서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모든 커리어를 놓고 고향도 떠나게 돼요.







끝없는 낭만이 이어질 것 같았지만 점차 삐걱거리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더니 이내 파국에 치닫게 됩니다.

결혼 5주년이 되는 날, 에이미는 집에서 사라지는데요.

서로 맞지 않는 결혼생활에 염증이 난 두 사람.

그녀는 견디다 못해 남편 닉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고, 자신을 살해한 범죄자로 몰아가는 대국민 사기극을 펼칩니다.

작가인 그녀답게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재설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혹하고 가학적인, 기괴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에이미는 일기를 쓰며 상황을 꾸미지만, 결국 본인이 쓴 글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행동하지요.

어렸을 적 엄마가 쓴 소설 속 주인공처럼요.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사람들을 조종합니다.

심리적 지배, 이른바 '가스라이팅'입니다.




<출처 : 부산일보>



| 가스라이팅, 무슨 뜻일까?



가스라이팅(Gaslighting) 또는 가스등 효과는 심리적 조작을 통해 타인 마음에 스스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하여 그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로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가정, 학교, 군대, 직장, 종교 모임 등에서 발생하는데요.

가해자는 자기 생각을 주입해 타인을 통제하고, 피해자는 자신도 모르게 당하면서 본인에 대한 신뢰와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

1938년 연극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되었으며, 학술적인 정식 용어는 아니고 일종의 유행어라고 합니다.




가스라이팅의 대략적인 유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거부 : 피해자의 의견을 거부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
반박 : 피해자의 기억을 불신한다.
전환 : 피해자의 생각을 의심한다.
경시 : 피해자의 요구나 감정을 하찮게 여겨지게 만든다.
망각 : 실제로 발생한 일을 잊은 척하거나 부인한다.

결국 자신을 계속 불신하면서 가해자에게 의지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지요.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보여준 학교폭력, 드라마 '카지노'에서 차무식이 일반인을 카지노에 빠지게 하는 장면 등은 가스라이팅의 한 예이며, 이외 부모-자식 관계 및 직장 상사나 선후배 사이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좌 : 더 글로리 포스터 / 우 : 카지노 스틸> 심리적 지배.








'나를 찾아줘' 이 영화는 다소 극단적인 장면을 연출했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 가스라이팅에 대한 피해를 정확히 밝히기가 어려워 일상에서 이보다 더한 상황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심리적인 협박, 폭력 속에 피해자의 영혼은 계속 말라가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 대처법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유형은 주로 인간관계가 좁아 결국 가해자에게 의지하는 사람, 사람을 불쌍하게 여겨 '나라도 이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구원 환상(Rescue fantasy)을 가진 사람, 의존적인 성향이 높은 사람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때문에 늘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잘못됐나? 왜 저 사람은 내 생각을 자꾸 의심하지? 라고요.

본인의 판단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거절당할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좋다', '싫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라는 자기표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죠.

본인의 불편한 감정을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표출해야 합니다.

또 가능하다면 그 사람과 최대한의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며 가스라이팅의 피해를 줄일 방법입니다.

연민과 공감을 가장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세요.

살면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스스로 깨우치고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글 | 비타V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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