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로 본 카르텔 사회의 민낯과 폭력성
한 없이 밝고 유쾌했습니다.
그저 춤이 좋아 열심히 연습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때로는 부당한 것에 소리도 지르는,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소녀였습니다.
그렇게 밝고 열심히 살던 이 소녀를 대체 누가, 어떻게 죽음으로 내몰았을까요?
한국 영화 최초로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폐막작에 선정된 ‘다음 소희’는 장편 데뷔작 ‘도희야’로 제6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던 정주리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작품입니다. 칸에서 영화 상영 후 7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배우 배두나와 신예 배우 김시은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호연을 보여주었어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여고생 '소희'(김시은 분)가 겪게 되는 사건과 이에 의문을 품는 여형사 '유진'(배두나 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초반부 소희 중심의 시선에서 점차 유진의 시선으로 옮겨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영화는 실제로 발생한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소희는 대기업의 하청에 속하는 모 통신회사의 콜센터에서 현장실습 체험을 하게 됩니다.
부푼 마음에 입사를 하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온갖 폭언과 폭설, 험담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하루하루 고달픈 일상을 이어갑니다.
실습 체험 생임에도 불구하고 업무는 기 직원들과 같게 하지만, 임금은 얼토당토않은 금액을 받아요.
부당한 고용 및 노동 착취에 해당합니다.
또 어린 나이에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콜 수를 채워야 하는 부담감도 느끼게 됩니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윗 상사에게 지적당하고 불이익을 받습니다.
감정 노동의 극치에서 고도의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 고립감을 떠안게 되어요.
감정노동은 사회적 일을 하면서 자신의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 감정을 스스로 그에 맞추어 변형시킴과 함께, 이를 소비자들에게 상품으로서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동시에 그런 행위를 요하는 직종 자체를 일컫는 단어이기도 다.
쉽게 말해 '기분 나쁜 상황에서도 억지로 웃어야 하는 일'이다.
직무 중 사람을 상대하면서 웃음과 호의를 보이는 상황은 흔하고 때론 자연스러우나, '감정노동'이라는 말은 억지로 호의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제적인 의미가 강하다.
- 출처 : 나무위키
실습 체험을 제안했던 담임 선생님 또한 본인의 실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대기업에 들어가면 나오지 말라, 버텨야 한다'고 일관되게 종용합니다.
그래야 후배들이 이어서 편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요.
웃음을 잃어가는 소희를 보면서도 '사회생활이 다 그렇다, 나도 교장에게 혼났다'라고 위로하는 척하지만 결국에는 소희가 보내는 위험 신호를 묵인해버립니다.
그나마 소희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이준호 팀장은 책임자로서, 본인 또한 콜센터 직원으로서 굉장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결국 회사에 대한 고발장을 유언으로 남긴 채 사라지는데요.
경찰 측에서 불합리한 '합의'로 무마해 버립니다.
소중한 목숨에 대한 대가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억울하게 잊혀갔습니다.
소희는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새로 부임한 여 팀장은 감정의 동요도 없는 냉혈 인간처럼 굴었어요.
남은 사람들은 제 몫을 해야 한다며 압박을 가합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소희는 얼굴에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결국 엄마에게 하소연하듯 말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신통치가 않습니다.
그 어떤 곳에서도 위로와 공감을 얻지 못한 소희는 결국 한 겨울, 차디찬 저수지에 제 발로 들어갑니다.
소희가 힘들어하고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눈치채지 못한 엄마, 아니 어쩌면 묵인한 엄마.
취업률만 강요하는 학교와 담임.
아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업체.
모든 사건을 봉인해버리려는 교육청.
그리고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못난 어른들, 그리고 어른들.
가장 끔찍한 것은 보통이라고 생각하며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 누군가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소희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 아닌 명백한 '사회적 타살'인 것이지요.
소희의 사건을 파헤치다 사회적 부조리를 알게 된 소신 있는 형사, 유진.
정의롭게 사건을 뒤쫓아가지만 결국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과 카르텔이라는 거대한 압력에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데요.
배두나 님은 정말 며칠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민낯 그대로 출연하여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실제인지 연기인지 분간을 못 하겠더라고요.
정 감독의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 배우들의 감정선이 합쳐지며 관객이 영화에 흠뻑 몰입할 기회를 줍니다.
아무래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 더 감정이입이 되겠지요?
문득 또는 시시때때로 그녀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욱하면 누구한테라도 말해.
말해도 돼.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그러면 완전히 혼자가 돼.
그녀 이야기처럼 누구한테라도 말하면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요?
오히려 말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에 더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언어적, 비언어적인 그 말의 깊은 속뜻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회적 민감성이 필요해요.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다음 소희'를, 무엇보다 시급한 '지금 소희'들을 위해서요.
처음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 단순하지만 한 번에 꽂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무슨 내용일까, 궁금증도 유발했고요.
영화를 보니 제목이 이해되었습니다.
정 감독은 영화 속 배두나 님과 다른 분의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해 냈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소희라는 이름이 주는 보편적인, 튀지 않는, 소박함을 느꼈는데 '이런 소희가 또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라는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이어서 든 생각은 '다음 소희는 반드시 사회로부터 관심받고 유진과 같은 어른에게 보호받아야 한다. 유진은 우리가 모두 되어야 하는 인물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 감독은 영화 속 이 팀장의 죽음 다음이 소희였고, 소희 다음의 친구들을 걱정하는 유진의 마음, 영화 속 프레임에 드러난 소희 다음에 등장하는 유진을 의미한다고 해요.
소희만의 이야기가 아닌 그다음을 포함하면서 '다음이 영원히 반복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감독의 비판 어린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민하게 받아들일 부분입니다.
미리 알아차리고 대응한다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고 신호가 있을까요?
· 언어적 신호 : 죽고 싶다는 직접적인 표현, 신체적 불편감(식욕 저하, 불면증 등), 집중력 저하, 감정의 변화(세상에 내 편은 없어), 절망감과 죄책감(나는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
· 행동적 신호 : 자살 준비(약을 모음, 자살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짐), 자해 흔적, 일상생활 능력 저하(학교 성적 저하, 생산성 저하), 외모 변화(식욕 및 체중의 변화, 외모 관심 저하, 심해진 피곤함), 전에 없던 행동들(과도한 음주, 우울증 관련 증상)
· 상황적 신호 : 만성질환, 신체적 장애, 극심한 스트레스, 지인과의 사별 및 이별
· 전문 상담 기관에 도움 요청
· 이야기 경청하기.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해 시비를 따지지 않기
· ‘자살’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질문
· 되도록 혼자 두지 않기
· 자살을 할 수 있는 도구들 치우기
· 자살에 대해 비밀을 유지한다는 약속을 하지 않기(드러내기, 직면하기)
· 정신건강상담전화 : 1577-0199
· 보건복지부 자살예방 전문상담전화 : 1393
· 보건복지부 희망의 전화 : 129
· 생명화 : 1588-9191
· 응급서비스 : 112, 119
· 학교폭력근절 긴급전화 : 117
· 헬프콜 청소년전화 : 1388
· 여성긴급전화 : 1366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진정한 '어른'이 우리가 모두 돼야 하지 않을까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 대한민국.
아까운 목숨이 여러 이유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성숙한 경각심, 어른들의 관심 있는 태도, 국가의 제도·정책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사람을 살립니다.
겨울처럼 시린 세상 속에서 언제든 곁에서 온기를 주는 손난로처럼 우리, 따뜻하게 더불어 살아요.
글 | 비타V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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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1. 정신건강복지센터
2.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