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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잘생기면 인생이 얼마나 쉬운지 알아요?"

외모지상주의가 주는 경고

by 비타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게 후광효과(Halo Effect)가 작용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 사연을 풀어볼게요.






필자가 중학교 1학년 때, 정말 예쁜 친구가 있었어요.

얼굴이 새하얗고 머리는 갈색 생머리에, 눈망울은 크고, 코가 오뚝하고, 입술 색은 꽃잎 물을 들인 것처럼 붉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지? 매일 생각하게 하는 아이였어요. 더구나 이름까지 외모에 어울리게 예뻤거든요.

같은 반이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일파만파 했어요.

전교생이 쉬는 시간마다 교실로 몰려왔고, 그 아이가 지나가는 곳이 홍해가 갈라지는 길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뉴진스의 '해린' 양 아시나요? 그 모습의 순한 맛이었어요.

해린 양은 눈꼬리가 올라가 고양이상인데 이 친구는 강아지상이었거든요.




여자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인간 고양이 '해린' <출처 : 스타뉴스>



외모가 눈에 띄니 선생님들도 그 친구를 예뻐하셨는데요.

어느 날 과학 시간에 선생님께서 과학반장을 뽑는다고 하셨어요.

누굴 뽑을까, 하다가 그 아이를 보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얘, 과학반장 네가 해라. 이름이 OOO이지?"

"…네."

"너, 참 예쁘게 생겼다."


이 친구는 솔직히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모범적인 친구는 아니었어요.

선생님의 권위로 과학반장을 뽑는다고 하지만, '예쁘다'는 이유로 그냥 지목된 거예요.

지금이면 말이 많겠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이후로도 '참 예쁘게 생긴 친구'에게 많은 혜택이 쏟아졌어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얻은 이는 보통의, 평범한, 때로는 보잘것없는 저를 포함한 '나머지들'이었어요.






뚱뚱하고 못생겨서 매일 무시받는 예지 <출처 : 트리플픽쳐스>



최근에 애니메이션 영화 '기기괴괴 성형수(Beauty Water)'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2020년에 개봉한 것으로, 오성대 작가의 유명한 웹툰 '기기괴괴' 중 '성형수'의 에피소드를 원작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뛰어난 발레 실력을 자랑했지만, 대회에서 '다소 부족한' 외모 때문에 1위를 놓치게 되어요.

이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발레를 그만두고, 성인이 되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합니다.

유명 연예인에게 온갖 갑질을 받으며 설움을 참습니다.

또 못생겼다는 이유로 자주 보는 경비 아저씨나 편의점 총각에게 조롱 섞인 말을 들어야만 했고요.


어느 날, '시중'을 들고 있는 담당 연예인의 TV 홈쇼핑 다이어트 제품 광고 촬영이 있었는데요.

음식을 먹는 역할을 맡는 연기자가 갑자기 펑크를 내는 바람에 예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예쁜 연예인 옆 뚱뚱한 여자가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이 되고, 인터넷 게시판에 극혐 영상과 악플이 난무하게 되어요.

예지는 깊은 좌절과 절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물건을 받게 되는데요. 바로 '성형수'라는 겁니다.

이 성형수에 몸을 20분 정도 담그고 있으면 살이 녹으면서 자연스럽게 외모를 고칠 수도, 남은 살을 뜯어버릴 수도 있어요.

말 그대로 수술하지 않고 전신 성형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이지요.



<출처 : 트리플픽쳐스>



성형수 전문 시술사에게 찾아가 시술해 달라고 하고, 그 대가로 부모님에게 2억 원을 뜯어냅니다.

예지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요.

완벽한 미모의 절정판이 된 예지는 이름도 '설혜'라고 바꾸고, 주변의 대우가 급변하고 연예인 데뷔 기회를 얻는 것을 보면서 외모에 더욱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됩니다.

살이 조금 쪘다는 이유로 성형수를 사용했지만, 정해진 20분이 지나 살이 녹아서 해골의 모습으로 변해버려요.

부모에게 살을 달라고 애원하여 얻지만, 삶의 방향이 생각지 못한 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출처 : 트리플픽쳐스>






'기기괴괴 성형수'는 외모지상주의를 강렬히 비판하면서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5세 관람가이지만, 제가 보기에도 끔찍한 장면들이 나와 섬뜩했어요.

전개와 연출이 다분히 호러·스릴러이거든요.

작품 초반부에 '여자는 예쁜 게 최고'라는 분위기를 풍겨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남성들의 음흉한 시선이나 아파트 경비원의 '예쁜 냄새'라는 발언도 언어 성희롱처럼 느껴졌고요.

하지만 후반부에서 세상에 미인은 수없이 많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외모가 주는 환희는 일시적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조경훈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외모는 결국 껍데기인데 이 껍데기를 잘못 타고난 죄가 너무 크지 않나. 사람들은 껍데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서열을 나누고 경제적인 부도 나눠 가진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포인트를 작품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아름다운 여성이 받는 뜨거운 시선과 대접, 미인 앞에서 무장해제 되어 지갑을 여는 남자들, 여성들의 미(美)에 대한 광기와 집착의 모습 등이 그것이지요.



"이제부터 내가 행복해 질거야. 사람들한테 사랑받으면서." 극중 설혜 대사. <출처 : 트리플픽쳐스>






결말은 파국으로 치닫는데요.

개인적으로 예상보다 뻔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마음이 예뻐야 진짜 미인이다, 예지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던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적인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 누구도 예지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예지의 모습에서 우리의 민낯을 보게 되고, 개인의 욕망과 외모지상주의 사회와의 연결점을 생각하게 되니까요.






| 미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이런 분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쁜 얼굴과 마른 몸을 동경합니다.

일반인도 이런데 TV 속 연예인들은 더 그렇겠지요?

항상 사람들의 모니터링 대상이 되니까요.

다이어트 전문 업체가 생기고, 성형외과나 에스테틱이 넘쳐납니다.

안티에이징도 끝이 없고요.

한방·양방 모두 마찬가지고, 특히 요새 바디 프로필 촬영이 성행이잖아요.

물론 건강을 위한 관리는 좋으나 무엇이든지 병적으로, 강박적으로 집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 내가 만난 '거식증' 아이



제가 신경심리실에서 만난 친구인데요. 17살의 여고생이었습니다.

사연은 '먹기가 싫다,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 바로 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불과 한두 달 전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깜짝 놀랐어요.

사진 속의 아이는 귀여운 얼굴에 아담한, 너무나도 어여쁜 친구였거든요.

그런데 그동안,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상담을 해 본 결과 이 친구는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겁니다.

본인이 못생기고 뚱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실의에 빠진 나머지 음식을 거부하더니,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찔까 봐 바로 토해버리는 것이 일상이 된 겁니다.

학교도 갈 수 없고, 누워만 지내다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겨우 온 것이에요.

아이는 섭식장애 중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에 해당하였습니다.


| 섭식 장애 :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음식 섭취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
대표적인 질환으로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과 폭식증(신경성 대식증)이 있음

| 거식증 : 체중 감소. 살이 찌는 것에 대하여 걱정과 공포를 느끼고 비만이 아님에도 자신이 비만이라고 생각.
환자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를 제한하거나, 먹은 뒤 인위적으로 구토하는 등의 행동을 함

| 폭식증 : 단순히 일시적인 과식이나 식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음식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비상식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미친 듯이 먹고, 폭식 후에 의도적으로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는 상태

→ 거식증과 폭식증의 증상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며, 일부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음



섭식장애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키는 158cm인데 몸무게가 35kg 정도 되었어요.

월경도 하지 않고 본인이 계속 못나고 뚱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담 후 바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의뢰되었어요.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통계 편람(DSM-Ⅳ-TR)의 진단 기준에 따라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정신과적 상담과 검사를 통해 다른 신경정신과 질환과의 감별을 시행해야 합니다.

또한 현재 전반적인 건강 상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므로 내과적 검사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치료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심각한 내과적 문제가 동반되어 필요한 경우 입원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본인 키에 비해 예상되는 몸무게의 20% 이하인 경우나 기타 내과적 문제가 심각한 경우 반드시 입원 치료를 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또한 체중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 등이 문제가 되므로, 식사조절뿐 아니라 포괄적인 치료 계획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인지 행동치료, 역동적 정신치료, 가족치료 등과 함께 적절한 약물치료가 고려되어야 하지요.

신경성 과식증 역시 내과적 상황에 대한 검진이 필요하며,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항우울제 등의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고, 인지행동치료, 역동적 정신 치료 등을 함께 고려합니다.






영화와 사례를 통해 미모지상주의의 민낯과 위험성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TV를 틀면 예쁘고 멋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어떻게 하면 워너비 얼굴과 몸매가 될까, 정보를 찾고 또 찾습니다.

유독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한국이어서 그런 걸까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요?


끊임없는 비교와 열등감에 빠지지 않도록 그 사람의 가능성과 본질을 꺼내어주어, 가까운 사람들부터 자존감을 키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 | 비타VITA





Reference

1. 삼성서울병원 의학정보

2. 서울대학교 의학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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