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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l 14. 2019

베스트 댓글, 무시할 수 없나요

권영미 성균관대 심리학과 초빙교수

권영미 성균관대 심리학과 초빙교수
베스트 댓글이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심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베스트 댓글의 빛과 그림자를 올바르게 구분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


A는 관심 있는 주제의 인터넷 기사를 찾아 읽은 후 스크롤(scroll)을 내려 댓글을 확인한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을 확인한 후 멈칫한다. ‘잠깐, 사람들이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고? 내가 이상한 건가…’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과는 상반된 누군가의 생각이 이끌어 낸 추천 수를 보고, A는 순간 자신의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된다.


댓글의 기능


온라인 기사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웹툰 등 온라인을 통해 제공되는 다양한 콘텐츠에는 보통 해당 콘텐츠를 읽은 이용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상을 표현할 수 있는 ‘댓글’ 서비스가 함께 제공된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이 남긴 댓글을 보며 같은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확인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활동이다. 굳이 인지적 자원과 시간을 더 할애하며 ‘남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기저에는 ‘나의 생각’에 대해 확인하고 싶어 하는 동기가 존재한다. 즉, 나의 생각이 얼마나 일반적인 것인지, 내가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공유하고 있는지 비교를 통해 확인하길 원한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 Leon Festinger 박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능력에 대해 파악하고 싶어 하는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의견이 얼마나 타당한지, 또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수준인지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페스팅거 박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과 능력 수준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을 때, 자신과 유사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판단하려고 한다. 온라인 기사를 읽은 후 자신이 내린 결론이 타당한지 판단하기 위해, 동일한 기사를 읽은 다른 사람들의 결론을 댓글을 통해 확인하고 비교하는 과정이 바로 이런 사회 비교social comparison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수많은 댓글 중에서도 우리의 주의를 가장 쉽게 끄는 댓글은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이다. 일단 지각적으로도 댓글들 중 가장 위에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시선이 먼저 갈 수밖에 없다. 또한, 베스트 댓글은 ‘한 개인의 의견이 동의를 많이 얻은 상태’라기보다는 이미 ‘다수majority의 의견’처럼 보이기 때문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다수’가 존재한다고 지각할 때 사람들은 다수의 행동이나 의견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 현상을 동조conformity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다수에게 동조할까? 아마도 다수가 주장하는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수와는 다른 의견을 주장하기에는 스스로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의문은 실제로 초기 사회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연구 문제였다.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 1935 박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판단이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과정을 실험 연구를 통해 관찰했다. 연구 참가자들은 한 명씩 어두운 실험실에 입장했고, 스크린에 비친 작은 불빛을 보고 이 불빛이 얼마나 움직이는지 응답했다.


이때 불빛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자동운동 효과autokinetic effect라는 착시 현상 때문에 참가자들은 불빛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꼈고, 개인마다 빛이 움직이는 거리를 서로 다르게 추정했다. 그 후 셰리프 박사는 비슷한 거리를 추정한 두 명의 참가자와 매우 다른 응답을 한 한 명의 참가자를 집단으로 구성하여 동일한 과제를 하도록 했다. 세 명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차례가 오면 빛이 움직이는 거리를 소리 내어 말해야 했고, 이 절차는 여러 번 반복되었다.


실험 결과 처음에 서로 다른 응답을 했던 세 명의 참가자들은 점점 서로 비슷한 응답을 했고, 결국 하나의 추정 거리로 모두의 응답이 수렴되었다. 특히 처음에 개인 응답이 매우 달랐던 한 명의 참가자는 다른 두 명의 응답 쪽으로 강하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참가자들은 다시 개인별로 실험실에 안내하여 빛의 이동 거리를 추정하게 했을 때, 참가자들은 처음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추정했던 거리가 아닌 세 명의 집단에서 수렴된 값을 이야기했다. 즉, 집단에서 수렴된 응답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더 이상 옆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동조 효과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한편 솔로몬 애쉬Solomon Asch, 1951 박사는 셰리프의 연구와는 달리 스스로의 판단이 확실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다수에 동조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고안했다. 이 연구에서 사용한 과제는 기준 선과 세 개의 비교 선을 보여주고, 비교 선들 중 기준 선과 길이가 같은 선을 고르는 것으로, 답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쉬운 과제였다.


참가자는 일곱 명의 협조자(참가자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연구를 돕는 역할)와 함께 실험에 참가하였고, 가장 마지막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순서대로 답을 말한 이후 마지막에 응답을 하게 되었다. 전체 18회 차의 과제 중 12회 차 동안 협조자들은 모두 동일한 오답을 이야기했고, 이때 참가자가 다수에 동조하여 오답을 이야기하는지 관찰하였다.


실험 결과, 평균적으로 1/3 정도의 참가자들이 다수의 오답에 동조했고, 75% 정도의 참가자들이 적어도 한 번은 동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에게 답을 이야기하는 대신 따로 적게 하면 동조 행동이 급격하게 감소했는데, 이는 다수가 명백하게 틀린 상황에서 적지 않은 참가자들이 압력을 느끼고 동조하는 행동을 보였지만, 자신의 생각이 여전히 옳다고 믿기 때문에 사회적 압력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동조하는 이유들


위에서 소개한 고전적인 동조 연구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다수에 동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정보적 영향information influence으로, 다수의 의견이나 행동이 타당하고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적 영향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에 대해 확신이 없거나,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 모호한 상황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처음 접해보는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사람들의 ‘먹는 법’을 관찰한다거나, 장례식에 처음 조문을 가는 사람이 실수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조문 방식을 관찰하는 등, 다수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의견은 모호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반면 동조의 두 번째 이유인 규범적 영향normative influence은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에도 동조를 유발할 수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혼자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이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걱정되기 때문에 적어도 겉으로는 동의하는 방식으로 동조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소하게는 친구들과 저녁 메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수가 선호하는 메뉴를 군말 없이 따르거나, 심각하게는 소수를 괴롭히는 다수에게 반대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는 일까지, 우리는 다수의 규범적 영향을 생각보다 더 자주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 기사를 읽고 난 후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타당하고 적절한지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사람들은 베스트 댓글의 정보적 영향과 규범적 영향에 종종 노출된다. 특히 자신의 의견에 확신이 없을수록 다수가 추천한 베스트 댓글은 유용한 정보로 활용되고 ‘옳은 판단’으로서 내면화될 수 있다. 자신의 의견과는 상반된 생각이 베스트 댓글로 추천된 경우에도, 사람들은 ‘내가 잘못 생각했나?’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판단의 타당성을 의심하거나, ‘나만 생각이 다른가 봐’, ‘내가 이상한가?’라며 침묵하는 소수로 남으려고 할 수도 있다.


편향된 다수의 함정


문제는 사람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는 베스트 댓글이 실제로 다수의 의견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베스트 댓글에 달린 추천 수라는 것은, 적어도 해당 기사나 글을 읽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본인의 의견을 표현하려고 행동한 사람들에 한정된 정보로, 기사를 읽지 않았거나 추천을 누르지 않은 사람들의 개인 의견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결국 우리가 ‘다수’라고 지각하는 대상은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다수가 아닌, 스스로 글을 읽고 의사표현을 선택한 자기 선택적 표본self-selection sample으로서의 편향된 다수일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생각이라고 지각한 베스트 댓글이 사실은 ‘진짜 다수’의 의견과는 다른 경우도 존재할 수 있고, 이때 우리는 ‘거짓 다수’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베스트 댓글이 특정 집단의 의견이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터너Turner박사와 동료들은 동조가 일어나는 세 번째 이유로 준거 정보적 영향referent informational influence를 들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내집단ingroup의 의견이나 행동에는 동조하는 반면, 자신과는 관계없는 외집단outgroup의 의견이나 행동에는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다수의 의견이 옳다는 믿음이나 다수로부터 수용되고 싶어 하는 동기는 그 다수가 자신이 소속된 내집단인 경우에만 강하게 발생하고, 그 결과 동조를 유발한다.


보수 대 진보의 정치적인 대립이나 남성과 여성 간의 갈등 등 두 집단이 첨예하게 대치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댓글을 추천하여 베스트 댓글로 만드는 행동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 집단의 입장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로 나타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들며 추천 수를 늘리는 편법을 쓰기도 하는 이 과정에서는, 결국 베스트 댓글이 실제 대다수의 사람들의 개인 의견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다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판단 과정에 편향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베스트 댓글을 넘어


베스트 댓글이 실재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우리는 베스트 댓글이 일으키는 사회적 영향의 가능성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거나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댓글을 보지 않음으로써 자기의 고유한 의견의 독립성 independence을 지키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페스팅거 박사의 주장이 맞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싶은 유혹을 언제까지나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베스트 댓글이 우리에게 주는 유용성과 흥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한 가지 사실을 언급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의 시선과 흥미를 끄는 베스트 댓글에 묻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개인’의 의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어쩌면 다수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느라 다양한 소수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는지도 모른다. 베스트 댓글로부터 눈을 돌려 소수 의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결국 우리는 내 의견이 일반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소리 내어 표현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얻게 되지 않을까. mind


권영미 성균관대 심리학과 초빙교수 | 사회심리 Ph.D.

따뜻한 시각과 냉철한 사고를 갖춘 심리학자로 살아가기 위해 고심 중이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Washington State University에서 사회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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