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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2020의 정봉이들이여!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by 내 삶의 심리학 mind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2020이 왔고 또 새로운 꿈을 꾼다.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꿈꾸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응팔의 7수생 정봉이의 경우처럼 스낵 봉지 속에서 무수히 발견했던 ‘다음 기회에 ‘ 스티커가 언젠가 ‘한 봉지 더’로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응팔의 기억


드라마 <응답하라. 19**> 시리즈 중 응팔 버전이 나에게는 유독 재미있었다. 나의 고딩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고 90년대 추억의 노래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남(어차피 남편)이 누구인지(여자 주인공의 미래 남편감 예측)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대충 다 좋았다. 그런데 말이다. 천재적인 캐릭터인 10대 프로 바둑기사가 등장하는 것은 이 시리즈의 콘셉트인 것 같아 그냥 수용했다. 전작인 응칠, 응사와 마찬가지로 모범생들은 명문대에 진학하여 의사, 법조인이 되었고 이번에는 파일럿이 되는 친구까지… 좀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야 재미있고 픽션의 자유도(degree of freedom)를 크게 잡자면 이해 안 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을 수 없다는 고3 담임 샘의 친절한 선고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여자 주인공마저 재수 후 승무원이 되는 해피엔딩에 동참하는 것을 보고 좀 실망했었다. 참 빠진 것이 있다. 승무원이 된 그 친구는 예뻤다.


지원한 대학에 일찌감치 합격한 학생들은 이제 노는 것도 지쳐 갈 1, 2월이겠지만 정시에 지원한 또 지원할 많은 학생들은 3월에 새롭게 시작하려면 이 시기를 견뎌야 한다. 입시 정보업체에서 여러 번의 모의지원 결과를 수렴하여 원서를 접수한다. 실기시험이 있는 경우에는 실기를 보기도 하겠지. 구정 연휴를 지나 정시 N차 발표가 어느 정도 이어지다가 그렇게 끝을 봐야 비로소 끝이 난다. 대학 새내기가 되든 N수를 하든 또는 대학 가는 것을 접고 다른 일을 하든 말이다. 어정쩡한 이 시기에 나는 이들의 미래와 꿈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시행착오가 자연스럽다


역사상 최대 수의 대학 응시자를 기록했다던 1990에 대입을 치렀고 자녀의 입시도 경험했고 이제는 반백의 나이가 되어 입시와는 조금은 거리를 두고 나는 생각을 해 본다. 100세 시대에 10대 말 또는 20대 초반에 내린 결정이 얼마나 맞는 것일 수 있을까? 맞지는 않더라도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그 결정으로 인한 길은 이후 인생의 곳곳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여러 번 수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실패를 거듭할 것이다. 입시지옥 탈출이 임박한 입시생들을 백 번 위로를 해 주어도 모자랄 판에 이와 같은 비극을 예고하여 미안하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처음의 결정이 바뀌어 가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처음부터 정확하게 결정하려고 했던 것이 무리가 아닐까.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자신에게 맞을 것으로 보이는 것을 찾으면 그제야 멘탈 또한 충만해질 것이다. 따라서 사실 나는 그들을 축복하고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 좀 어긋나면 어떠랴. 큰 일 나지 않는다.


상향비교와 하향비교


분야와 내용을 막론하고 우리는 성공사례를 많이 접한다. 물론 실패사례도 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배운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은 한 마디로 남과의 비교이다. 이와 같이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을 평가하는 것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사회비교(socail comparison)라는 타이틀로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분야일 만큼 중요하다.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과 비교할 때 상향(upward) 비교라 하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할 때 하향(downward) 비교라고 한다(Festinger, 1954). 타인에게 조언할 때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라(하향비교)고도 하고 어떨 때 자신보다 못한 아래를 보지 말고 위를 보며(상향비교) 노력하라고 하는 바로 그 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더 중요한 것은 남의 사례를 간접적으로 보며 자신을 비교 평가하는 것이 아닌 성공도 실패도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다. 성공이야 워낙 그 자체로도 좋고 자기 효능감을 높여주는 것이라 보탤 말이 없다. 사실 실패를 한 후에 밀려드는 우울감 또한 자연스럽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우울감은 에너지를 저하시켜 우리를 휴식하게 만든다. 그래야 재충전이 될 테니. 그리고 더 이상 방바닥을 뚫고 지구 속 멘틀까지 들어갈 것이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 봐야지. 그렇다. 실패도 겪어 보아야 안다.


정봉이의 매력


응팔의 정봉이는 7수생이다. 드라마 후반까지 분명 7수생이었는데 대학에 입학했는지, 졸업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적어도 나한테는 정봉이가 대학에 갔는지 안 갔는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 엔딩에서는 우리의 정봉이가 성공한 외식 사업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랜 시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던 나 같은 팬들에게 은근한 쾌감을 주었다. 아마도 정봉이는 공부 쪽보다는 사업에 더 매진한 것이 아닐까 싶고 음식에 대한 감각과 경험을 통한 식도락의 노하우로 외식 업계에서 대박을 터트렸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실제 정봉이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유명 외식 사업가(별명 슈가보이)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고 한다.


극 중 템플 스테이 간 절에서 산채 비빔밥을 1+1으로 먹는 정봉이의 해맑은 모습이 떠 오른다. 초딩들이나 들락거리는 동네 오락실에서 ‘보글보글’이라는 이름도 귀여운 거품 터트리기 게임에 몰두하거나 희귀 템을 입수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우표 수집 과정 등에서 ‘자지 마 독서실’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고3 동생들에 비해 정봉이가 더 다양한 경험을 하는 듯이 보였고 매 순간에 더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봉이는 단지 대학에만 자꾸 낙방을 한 것이었다. 그것은 스낵 봉지 속 숨은 동전 긁기 스티커의 ‘꽝’이었던 것이고 곧 이은 대학 N수는 수 많았던 ‘다음 기회에’ 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한 봉지 더’로 아름답고 짜릿하게 마무리되었다.


정봉이가 주는 위로


힘들 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잘 나가는 친구가 못 나가는 나를 위해 한우를 쏠 때? 함께 시험을 준비하다 합격한 친구가 비법 노트를 불합격한 나에게만 특별히 전수해 주었을 때? 성공한 선배가 자신도 예전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며 어깨를 두들겨 줄 때? 엄마가 괜찮다며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할 때?... 위로를 해 주고 위로를 받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며 위로가 되는 포인트도 다를 것이다. 심지어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얄궂게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아는 사람의 실패, 단 나의 실패보다 더 큰(주의: 너무 친한 사람이면 공감이 되어 좌절감이 전염될 수도 있고 반대로 질투로 인해 죄책감이 유발될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함). 이때 갑자기 나의 실패는 작은 것이 된다. 나는 그래도 다행이구나. 감사한 것이로구나. 뭐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비교하지 말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남과 비교를 하게 된다면 그 방향은 하향이었으면 한다. 그것이 셀프 위로의 한 방식이 될 것이다.


사회심리학 영역의 사회비교 연구에서도 실패 상황에서 사람들은 하향비교를 통해 안도감을 얻고 불안을 줄이고 자신감을 향상한다고 보고되고 있다(Helgeson & Taylor, 1993). 따라서 응팔의 수많은 캐릭터 중에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누가 뭐래도 찌질한 정봉이라 하겠다. 그런데 결국 일도 사랑도 다 이뤄 낸 사람이 정봉이다. 참고로 정봉이의 공부 잘하는 동생 츤데레 정환이는 형의 꿈을 대신 이뤄 주려고 공군사관학교에 갈 생각을 했었고(나중에는 자신의 꿈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타이밍을 못 맞춰 첫사랑도 놓쳐 버렸다. 반복된 실패와 재시도 속에서 자신만의 수정된 꿈을 이루어 낸 사람이 정봉이다.


우리가 찌질한 정봉이를 대상으로 하향비교함으로써 자존감을 유지하고 위로를 받고 있을 때 정봉이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정하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 누군가와 상향비교(Suls, Martin, & Wheeer 2002)해 노력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했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정봉이는 상향비교도 하향비교도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의 길을 간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뒷모습 유독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 깊기 때문일지 모른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 작품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새날이 밝았지만 여전히 어수선한 마음으로 서성일 대학 입시생들을 생각하며 응팔의 7수생 정봉이를 떠올려 보았다. 그를 통해 우리가 수많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한 번에 이루지 못하면서도 또 꿈을 꾸고 시도함으로써 희망을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가 아니다. 단 꿈은 반드시 수정된다. 우리는 실패와 재시도를 통해서 꿈을 수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꿈을 꾸어야 한다. 응답하라. 2020의 정봉이들이여! Try Again! mind


<참고문헌>
Festinger, L.(1954). A theory of social comparison processes. Human Relations, 7, 117-140.
Helgeson, V. S., & Taylor, S. E(1993). Evaluative and affiliative comparison and copying among cardiac patients.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23, 1171-1195.
Suls, J., Martin, R., Wheele, L., (2002). Social comparison: Why, with whom, and with what effect?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1, 159-164.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너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꿈을 심리학자로 정해버려 별다른 의심 없이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여정에서 다시 태어나면 꼭 눈에 보이는 일을 해 봐야지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심리학 대세론에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스스로 뿌듯해하며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생생한 삶 속에서 심리학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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