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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양치질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까?

설선혜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

by 내 삶의 심리학 mind Feb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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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선혜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설선혜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
배우 차인표 씨가 한 드라마에서 선보였던 '분노의 양치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잇몸이 깎여 나갈 듯이 칫솔을 놀리는 행동이 뜻밖의 심리적 이득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신체 통증을 유발함으로써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합니다.


스스로 유발한 신체적 고통과 정서 조절


꽤 오래전이지만, 반듯한 이미지로 사랑받는 배우 차인표 씨가 한 드라마에서 선보였던 일명 '분노의 양치질'이 많은 사람을 웃게 했던 적이 있다. 이 양치질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내 잇몸도 시큰거리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지지만, 그렇게라도 감정을 다스리고 싶은 심경이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꼭 양치질이 아니더라도, 실수가 후회될 때 스스로 머리를 가볍게 때린다거나, 화가 날 때 주먹이 아프도록 샌드백을 때리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격한 운동을 하는 식으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던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Amos Sewel 1901-1983. ‘Brushing Their Teeth’ Amos Sewell illustration, Saturday Evening Post coverAmos Sewel 1901-1983. ‘Brushing Their Teeth’ Amos Sewell illustration, Saturday Evening Post cover

최근 Emotion에 발표된 연구(Doukas et al., 2019)에서는 스스로 유발한 신체적 고통(self-inflicted pain)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일명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정서 조절에 대한 심리학 연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관심을 돌리거나 부정적 감정을 재해석하는 인지적 조절 방법에 초점을 둔다. 신체적 고통을 이용한 정서 조절은 자해나 경계선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되어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Doukas 등의 연구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도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체적 고통을 이용한 정서 조절 전략을 드물지 않게 사용하며, 실제로 이런 방법이 인지적 정서 조절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


연구자들은 60명의 연구 참가자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사진들을 보여준 뒤 다음 네 가지 정서 조절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회피 (사진과 관련 없는 다른 생각하기)

재해석 (부정적 감정을 덜 느끼는 방향으로 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기)

통증 유발 (통증을 유발하는 강한 전기 자극을 받으면서 그 감각에 집중하기)

감각 유발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 수준의 약한 전기 자극받으면서 그 감각에 집중하기)


'분노의 양치질'이 주는 위로


놀랍게도 참가자들의 67.5%가 총 16번의 시행 중 적어도 한 번(평균 2.25회)은 통증 유발 전략을 선택했다. 정서 조절 이후 부정적 감정의 정도를 비교했을 때, 통증 유발은 감각 유발이나 회피와 비슷한 정도로 정서 조절 효과가 있었고, 재해석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정서 조절 전략을 참가자들이 직접 선택하지 않고 컴퓨터가 무작위로 정해주도록 한 조건에서도 통증 유발이 재해석보다 더 효과적이었고, 나머지 두 전략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냈다.


연구자들은 종교적 고행이나 동양 의학의 예를 들어, 실제로 통증이 신체 감각으로 주의를 돌려서 부정 정서 경험을 방해하거나 내인성 오피오이드(endogenous opioids)를 생성하여 부정 정서를 감소시킬 수 것이라고 제안한다. 건강한 수준에서 사용된다면 스스로 고통을 유발하는 정서 조절 전략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그 효용성을 앞으로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분노의 양치질’이 잇몸 건강에는 좋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정신 건강에는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mind


   <참고문헌>  

Doukas, A. M., D'Andrea, W. M., Gregory, W. E., Joachim, B., Lee, K. A., Robinson, G., ... & Siegle, G. J. (2019). Hurts so good: Pain as an emotion regulation strategy. E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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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선혜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 | 사회심리 Ph.D.

인간을 인간답게 행동하게 만드는 마음의 원리를 알고 싶어서 사회심리학과 뇌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의사결정과 행복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 연구기간동안 신경경제학과 사회신경과학을 공부했다. 사회적 행동의 사회문화적 요인과 생물학적 기반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법을 사용하여 도덕성, 이타성, 공감, 협동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행동의 심리-신경학적 기전을 연구해왔다. 현재 부산대 심리학과에서 사회신경과학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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