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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Apr 07. 2020

내 안에 박보검이 있다면...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우리가 사람 얼굴을 볼 때, 눈, 코, 입을 하나하나 따로 보면서 누구인지 알아채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는 여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금방 알아볼 수 있을까?


심리학은 꿈을 이뤄주는 학문이 아니다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라고 말을 하면, 이렇게 답하는 친구들이 많다. '예뻐야 사랑을 하죠.' 뭔가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 수 있으니깐.


학부 때 사회 심리학 수업을 수강하는데, 교과서의 한 챕터의 제목이 '매력'이었다. '그래 심리학이 나의 매력을 높여줄지도 몰라'라는 설렘을 갖고 교과서를 폈으나, 그 챕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요인이 바로 '외모'였다. 외모가 빼어나면, 매력이 높단다. 그걸 누가 모르나... (심리학이란 꿈을 이뤄주는 학문이 아닌, 팩트 폭격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와이프와 함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별로 연예인에 관심이 없는 와이프가 너무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심코 한 마디 한다. '저 아이 너무 예쁘다.' 당시 화면에 나오고 있었던 배우는 택이 역할을 하던 박보검 배우. 그 후에 그분이 여행을 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었다. 박보검이 비행기를 타고 내렸는데, 두 손에는 뭔가 먹을 것이 잔뜩 들려 있었다. 같이 갔던 (연예인) 동료들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승무원 누나들이 줬다는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얼굴 안의 박보검


미국 유학 시절 그렇게 국제선을 타고 다녔지만, 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 아니, 뭐 나야 일반인이라 치고, 다른 연예인들도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하는 힘. 다름 아닌 박보검의 외모. (박보검의 매력은 외모뿐이 아니지만, 글의 전개상 이렇게 적는다. ^^;;;) 내 얼굴 안에 박보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겠지? 뭐, 까짓 거 한 번 해 보지. 전공이 시지각이고, 특기가 포토샵인데! 그런데.. 음... 박보검 어디 갔지?

이 사람은 누구인가?

위의 사진이 누구처럼 보이는가? 수업 시간에 이 사진을 보여 줬더니, 젊은 윤종신 씨라는 대답이 나왔다. 정답은 바로, 나와 박보검이다. 나의 얼굴 윗부분과 박보검의 얼굴 아랫부분을 이은 것이다. 이 얼굴에서는 나의 얼굴도 박보검의 얼굴도 찾기 힘들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래의 사진을 보면 두 얼굴 모두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얼굴 상단부와 박보검 배우의 얼굴 아래 부분의 결합

이 사진은 나의 얼굴과 박보검의 얼굴을 엇갈리게 이은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두 얼굴 모두 보이지 않나? 참고로 옆에는 두 얼굴의 원본 사진이다.


우리가 사람을 쉽게 알아보는 이유


세상이 좋아졌다. 요즘은 핸드폰이 얼굴 인식을 해서 잠금이 풀린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를 봐도, 우리는 그 친구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차린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주름도 늘어 나이 먹은 얼굴은 예전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 화장을 풀메이크업으로 한 얼굴은 물리적으로 매우 다르게 변화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구인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사실 무척이나 신기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긴 그 똑똑하다는 핸드폰도 이제 겨우 안면 인식을 가능할 정도니... 우리가 동일한 덩치에 동일한 색상을 가진 두 마리의 레트리버를 본다고 하자. 과연 그 얼굴만을 보고 두 마리의 레트리버를 구분할 수 있을까? 얼굴의 작은 차이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동일한 크기에 동일한 피부톤을 가진 두 명의 한국인을 얼굴만 보고도 쉽게 구분 가능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의 뇌를 보면, 사람의 얼굴을 다른 사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며, 특히 사람의 얼굴만이 처리되는 특수 영역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특별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다른 사물을 볼 때와는 달리, 우리가 사람 얼굴을 볼 때, 그 얼굴에서 눈, 코, 입을 하나하나 따로 처리하지 않으며, 눈, 코, 입을 전체적으로 처리하는데, 이를 전역적 처리(holistic processing)라고 한다. 이때 특별히 중요한 것이 눈, 코, 입의 전체적인 배열이다. 그러니깐, 쉽게 말하면 아무리 똑같은 눈, 코, 입을 가졌어도 그 전체적인 배열이 달라지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그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클라우드 모네의 부인 카미유와 그의 Claude Monet (1840–1926)

아래 사진은 누구일까?

어느 날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 얼굴 정보의 전역적 처리를 아주 잘 보여주는 게임을 발견했다. tvN 방송국에서 토요일에 방영되는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유명인의 얼굴을 보여주고 누구인지를 맞히는 게임이었다. 뭐 이리 쉬운 게임이 있냐고? 우리 한 번 해 보자. 아래 사진은 누구일까?

아마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눈, 코, 입만 보여주니 알 수가 없다고? 물론 그렇다. 얼굴 형태 자체가 없으니. 하지만 다음 사진을 보자.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지 알았을까? 정답은 연예인 (배)수지이다. (옆에 수지의 얼굴을 첨부한다.) 아까 본 사진과 동일한 눈, 코, 입 부위만을 가지고 있다. 두 사진의 차이는 아래 사진의 경우, 수지님의 눈, 코, 입이 원래 수지의 눈, 코, 입 위치에 있었던 반면, 위의 사진은 눈, 코, 입이 다른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아래의 사진은 수지의 눈, 코, 입의 배열이 원래 얼굴과 동일했고, 위의 사진은 원래 얼굴과 다른 배열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배열의 차이로 동일한 눈, 코, 입이지만, 위의 사진에서는 수지를 수지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불경(?)을 저지른 셈이다.


전역적 처리의 효과


이처럼 우리의 시각 시스템은 사람의 얼굴을 볼 때, 눈, 코, 입을 전체적으로 처리하는 전역적 처리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눈, 코, 입만 따로 떼어 내서 제시하면 그 주인을 찾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최보검(최훈 + 박보검)의 사진에서 나의 얼굴 윗부분과 박보검의 얼굴 아랫부분을 이었을 때 박보검 님의 얼굴 아랫부분에 있는 콧망울, 입술, 턱선은 존재하지만, 그 부분들이 박보검님의 얼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두 사람의 눈, 코, 입에 대해 전역적으로 처리를 하다 보니 최훈도 아니고, 박보검도 아닌 최보검이 나오게 된다.


얼굴을 전역적으로 처리하고, 눈, 코, 입 각각에 대해서 높은 가중치를 두지 않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타인의 얼굴을 보고 그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것을 생존의 전략으로 선택했다.


따라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의 무리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무리에 속한 사람인지를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보다 빠른 방식으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특화된 것이 전역적 처리이다. 눈, 코, 입을 따로따로 세세하게 처리하여 신원을 확인한다면, 그 세세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더 소요하기 때문에 정확할지는 몰라도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니다.


물론 눈, 코, 입 등의 세세한 정보들이 처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처리가 되며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된다. 단, 얼굴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그것들보다는 배열 정보와 같은 전역적 정보가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 얼굴에 박보검이 있다면? 뭐 별일 없을 것이다. mind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 인지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 석사를 마치고, 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Boston University와 Brown University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한림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 아이돌, 스포츠를 지각 심리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평생 덕질을 하듯 연구하며 사는 것을 소망하는 심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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