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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l 22. 2020

행복한 삶에 가장 중요한 것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관계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관계를 맺을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황량하겠는가. 행복의 비밀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관계 스트레스의 함정


요즘 서점에서 자기 계발이나 인간관계, 심리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들을 살펴보면 상당 수의 책들이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거나 상처 받지 않고 나의 삶을 산다. 당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면 이 책에서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큰 의미도 없을 관계 스트레스에 허비하고 있길래 이런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일까? 되돌아보면 나 또한 필요 이상의 배려심이나 타인의 평가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고민을 하고 괴로워했던 적이 많았다. 관계 스트레스는 언제 어디서든 있어 왔을 터이지만 ‘개인의 삶’이 점차적으로 중요해지는 사회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이런 류의 스트레스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 최근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보다 먼저 강한 개인주의적 문화를 발달시킨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세계 제2차 대전 전후의 시대사조를 대표한다는 철학자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옥과 같은’ 관계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것이 고민할 것도 없고 신경 쓸 것도 없는 천국으로 가는 길일까?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같은 발코니에 있지만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Édouard Manet (1832–1883), 'The Balcony'.

친구가 없다면


극단적인 상상을 한번 해보자. 온 세상의 시간이 갑자기 멈추고 오직 나의 시간만 흐르고 있다면? 영화 '가려진 시간'에 등장하는 세 명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친구인 세 아이들은 간섭하는 어른들 없이 자유를 만끽하며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대로 해볼 수 있고 세상에 남겨져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언제까지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오고, 아이들 중 한 명이 앓던 지병으로 죽게 된 후에도 시간은 20년 가까이 멈춰있다. 결국에는 참을 수 없는 지루함과 외로움으로 남아있던 두 아이들 중 한 명은 자살을 하기에 이른다.


내가 만약 이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 아무리 인간관계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못 견딜 일이다. 타고 있던 비행기의 조난으로 인해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남게 되는 주인공을 그린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서도 주인공은 무인도에 떨어진 지 불과 며칠 만에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 넣어 말동무 윌슨(Wilson)을 만든다. 그리고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사 년간 이 배구공은 주인공이 모든 생각과 감정, 일상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누구라도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면 가상의 친구라도 한 명이라도 만들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주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심리학계에서는 최근 들어 사람이 얼마나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인지 보여주는 연구들이 쏟아졌다. 현대사회에서는 자금만 충족된다면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 있지만, 산업이 현재와 같이 발달하기 전, 인간이라는 종이 존재해 온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타인과 동떨어져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타인과의 관계가 내가 생존해 나가는 데 보다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를 다른 사람들과의 분업이 없이 혼자 공급받는 데에는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사냥과 채집을 통해 음식을 장만한 후 이를 요리해 먹고, 집과 옷을 포함해 생활에 필요한 잡기들을 만들어 내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가능하다 하더라도 여럿이 분업을 했을 때보다는 훨씬 힘들고 풍요롭지 못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존재로 오랜 시간을 살았고 또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는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직접적인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이다.


'사이언스'(Science)지에 실린 한 논문은 인간이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Eisenberger et al., 2003). 우리가 신체적으로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두 군데 있는데, 한쪽에서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려 노력한다고 한다. 한데 신체적인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이런 신경시스템이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에도 동일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프다던 가수 백지영 씨의 노랫말이 그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체적으로 아플 때 사람들이 주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나 행동들이 우리 몸이 회복할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이별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진통제가 완화시켜준다는 결과도 있다(DeWall et al., 2010).


매우 행복한 사람들


같은 맥락에서 따뜻한 인간관계가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반대로 이런 인간관계의 부재나 외로움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는 연구결과들은 무수히 많다. 사람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이렇게나 중요하다. 쓸 데 없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서도 인간관계에 관한 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에 있어 인간관계는 어떤 역할을 하며 얼마나 중요할까?


2002년, 행복 연구의 창시자로 알려진 디너 교수와 긍정심리학을 대표하는 셀리그만 교수는 함께 ‘매우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저 행복한 것을 넘어 자신의 행복 수준에 대해 만점이 가까운 점수를 준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해 본 논문이었다. 다른 많은 변인들도 살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외향적이고 원만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신경증 점수가 낮고 정신과 질환을 앓는 경우도 드물었다. 하지만 방금 언급한 이 특성들은 필요조건이 되지는 못했다. 매우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이 모든 특징을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많은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닌 바로 좋은 인간관계였다. 연구에 의하면 매우 행복한 사람들 중 가족, 연인,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80년 연구의 결과


개인적으로 행복에 대한 연구들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연구는 1938년 하버드대에서 시작된 그랜트 연구(Grant Study)이다. 일단 이 연구는 다른 일반적인 연구와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여기서는 200명이 넘는 참가자를 대학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관할하였는데, 한마디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80년 넘게 추적해 가며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본 것이다. 성인이 된 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또 성장해 나가는가를 보았다는 뜻에서 성인발달 연구로 분류되기도 한다.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는 많은 연구들과 달리 8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인생의 흐름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 결과의 무게와 깊이를 무시할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 그 결과에는 어떤 사람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또 어떤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지, 어떤 요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또 성공에 있어서는 어떤 요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행복의 비밀


30년 넘게 이 광범위한 연구의 책임자를 맡았던 베일런트(Vaillant) 교수는 무수한 자료를 집대성해 요약한 그의 책, ‘행복의 비밀’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은 내린다: ’75년 동안 이어져온 그랜트 연구는 행복한 삶을 떠받드는 기둥이 두 개 있음을 발견했다. 하나는 사랑이라는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밀어내지 않는 대응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베일런트 교수는 연구가 세월과 함께 무르익어 갈수록 따뜻하고 친밀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행복하고 성공적이며 건강한 인생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랑이 있는 인간관계’를 꼽는다.


인간관계는 삶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인 동시에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기도 하다.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관계에 관해서라면 사소한 일에도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인간관계가 지옥이 아닌 축복이 되려면, 그 안에 사랑과 친밀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베일런트 교수의 80년 넘는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따뜻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사랑이 있는 관계라 답해야 한다는 것. 이는 현재 행복을 연구하는 그 어떤 심리학자도 반박하지 않을 사실이다. mind


<참고문헌>  

조지 베일런트 저, 최원석 역, <행복의 비밀> 21세기북스, 2013

DeWall, N.C., MacDonald, G., Webster, G.D., Masten, C.L., Baumeister, R.F., Powell, C., Combs, D., Schurtz, D.R., Stillman, T.F., Tice, D.M., & Eisenberger, N.I. (2010). Acetaminophen reduces social pain: Behavioral and neural evidence. Psychological Science, 21(7), 931-937.

Eisenberger, N.I., Lieberman, M.D., & Williams, K.D. (2003). Does rejection hurt? An fMRI study of social exclusion. Science, 302, 290-292.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 사회및성격심리학 MA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4년간 심리학 교사로 재직하였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긍정심리학을 중심으로, AP심리학(심리학개론), 선택교과심리학, 사회심리세미나, 심리학논문작성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진학상담부의 상담교사로서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민사고 행복 수업'이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현재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학 교과서를 집필 중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심리학 연구들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연세대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이중전공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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