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규 마인드웍스 대표
페미니즘 미술의 거장 바바라 크루거의 아시아 첫 번째 개인전. 특히 최초의 한글 설치 작품이 인상적이다. 아시아퍼시픽 미술관에서 12월 29일까지 전시된다.
<untitled(제발 웃어, 제발 울어)>(2019)는 아시아 중 우리나라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FOREVER의 작품으로 작가의 최초 한글 설치 작업이다. <제발 웃어, 제발 울어> 외에 <untitled(충분하면 만족하라)>(2019)를 함께 선보였는데 충분하면 만족하라는 ‘Plenty Should be Enough’과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제발 웃어, 제발 울어>는 영문 텍스트 없이 한글로만 이루어진 작업이다.
잡지사 디자이너 경력이 있는 작가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오리고 붙이는 페이스트업 작품을 시작으로 Futura와 Helvetica 폰트 같이 단순한 형태의 타이포를 활용하여 짧지만 강력한 한 방이 있는 메시지 담은 작품을 만들고 있다.
특히 붉은 프레임 안에 넣은 텍스트의 결합은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조형적 요소를 극대화시키며 우리가 지각하는 메시지에 대한 강렬함을 더한다. 바바라 크루거의 텍스트 작업은 이미 우리도 익숙한데 바로 요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패션 브랜드인 Supreme의 로고 때문이다. 슈프림의 로고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영감을 받았다고 하기엔 너무 미러급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명품 브랜드 카피 등급은 커스텀급 미러급 일대 일급 등이 있다고 한다).
작가가 만들어 내는 강렬한 메시지들은 권력과 제도에 대한 모순 특히, 성차별에 맞서 여성에게 각성을 요구하며 그런 사회를 비판하고 저항하라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현대미술에 있어 대표적인 여성주의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과장된 테스트를 대형 전사지에 출력해 공간을 가득 메운 작품 <Untitled(forever)> 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 발췌한 문장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를 담고 있다. 이 방에서 쏟아지는 듯한 이 문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성으로서, 나는 절로 서럽다.
작가의 메시지 선정 의도를 고려할 때 이 번 전시에서 최초의 한글 작업에서 선택한 이 메시지가 "제발 웃어 제발 울어"인 점이 특히 흥미롭다. please로 번역될 수 있을 ‘제발’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청유의 의미라면 그 뒤에 따라오는 ‘웃어’, ‘울어’는 명령형이다. 이 둘이 나란히 배치될 때 이 ‘제발’은 무언가를 청하는 느낌이라기보다 명령을 더욱 강조하는 느낌을 주는데 마치 ‘진짜 징글징글하다. 웃을 때 웃고, 울 때 좀 울어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가로 4.6m, 세로 2.5m인 거대한 붉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써넣은 이 노골적인 메시지를 본 순간의 찌릿함은 감정 인식과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 어떤 정신건강 서적이 주는 메시지보다 강력하게 다가왔다.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가를 나지막이 불러보자.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외롭고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다짐. 그저 참고 참고 또 참는 정서 억압, 외로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하고 거울 속의 나와 대화를 나눈다는 분열적 자기 고립. 부정적인 감정을 부인하고 그저 웃으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거기서 더 나아가 울면 바보라면서 가혹하게 자신을 처벌하는 캔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수많은 캔디들이 있다. 캔디의 역할을 타의로 자의로 부여받아 살고 있는 그 캔디들에게 바바라 크루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제발 웃어, 제발 울어" mind
고선규 마인드웍스 대표 |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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