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치과검진
어제 치아보험 권유 전화를 받았다. 국민카드를 사용하는 30대를 대상으로 한 저렴한 보험상품이란다. 매달 3만 원대를 납부하고 3개월 후부터는 대부분의 치과진료가 보장이 된단다. 흥미가 동하는 권유여서 나중에 다시 통화하기로 하고 할 일이 있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니 보험은 들기가 싫은 거다.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아.. 치아보험에 대한 생각을 하며 갑작스럽게 내 치아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 치아는 건강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릴 땐 교정도 했었고, 양치를 잘해도 충치가 생기기 일쑤였다. 중학생 때는 갑자기 앞니에 충치가 생겨 신경치료를 받고 크라운을 씌워야 했던 적도 있는데, 충분히 이해할 나이였는데도 절차를 설명해주지 않아 이가 없어지던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너무 속상해하니 치과에 함께 갔던 아빠가 갑자기 영화를 보자고 해서 극장에 가서 타이타닉을 봤다. 그날은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이었고, 타이타닉은 이제는 돌아가신 아빠와 단둘이 극장에서 본 전무후무한 영화가 되었다.
몇 년 전, 그렇게 씌웠던 크라운이 20년 정도를 버텼을 때였다. 명절연휴에 갈비찜을 먹다가 허무하게도 빠져버리는 바람에 새로 이를 하느라 또 고생을 했다. 치과는 나에게 늘 가장 무서운 병원이다.
치아보험은 안 들겠지만 치과진료는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한 번 치아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심상찮아 보이는 검은 기운이 한두 군데에서 보인다. 미루고 미루던 치과진료. 아마 한 일 년쯤 됐을 것 같다. 그래도 연초에 한 번은 스케일링을 받으니까.
내가 일하는 곳 바로 맞은편 건물에 한산하고 친절하고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 치과가 하나 있다. 다들 입소문이 나면 대기가 길어질까 봐 쉬쉬하며 소문을 내지 않는 곳. 남편은 이 치과에 한 번 다녀오고는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며 칭찬을 했고(나도 그때 진료를 받았어야 했다), 나도 한 번 가봐야겠다 말만 하고는 또 여러 계절을 흘려보냈다. 후회막급이다. 매번 이렇게 미루다가 격한 폭풍을 맞고야 만다.
한 어금니는 양쪽으로 충치가 생겼고, 바로 옆에 금으로 때웠던 이는 금이 갔단다. 양쪽으로 충치가 생긴 경우 때우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고. 치아 두 개를 크라운으로 씌워야 하는 상태란다. 90만 원 견적,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면 치아 하나당 5만 원이 추가된다고 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고, 열심히 살며 벌었던 돈을 이렇게 쓰는구나. 난 갚을 돈도 많은데 하며 온갖 말들이 머릿속에 떠다녀서 중얼중얼 계속 말하게 되었다.
너무 충격적이에요. 이만한 게 다행인 걸까요? 저 어제 치아보험 권유받았는데 3개월 있다가 진료받으면 안 될까요? 무이자 할부가 되나요? 아, 3개월이요. 다음 달과 다다음달의 저에게 진료비를 부탁해야겠어요. 자주 뵙겠습니다. 중얼중얼
간호사 선생님도 풋 웃으신 것 같고 의사 선생님도 흐뭇한? 머쓱한? 갸륵한?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건네주셨다. 나오는 길에 남편에게 카톡을 하는데 오타 연발이다. 망했다. 대출 갚으려고 열심히 돈 벌고 있었는데 내 발등을 내가 찍는구나. 하고 후아후아 깊은 숨을 쉰 뒤에, 이만하길 다행이다. 합리화라도 해야겠다. 이만하길 다행이야. 뽀사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야. 아직 아프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하고 중얼중얼 혼자 또 읊조린다.
글을 쓰면서 영수증을 찾는데 나도 모르게 힘껏 구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