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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빌더 Jan 10. 2023

벼락치기하는 심리학자 2

새해 다짐 벼락치기

해가 바뀌고 마흔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벼락치기하던 습관은 고쳐지질 않는다. 올해 내가 마흔이 될 거라는 걸 수개념이 생기고부터 알았을 텐데 마흔이 주는 무게는 서른아홉 더하기 일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서른이 될 때는 이렇지 않았다. 다들 서른에 충격받고 있을 때 나는 어른이 되는 게 낫다고 느꼈다. 안정을 찾고, 돈을 벌고,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진로는 어느 만큼 가닥이 잡혔다. 차가 생기고, 작은 원룸이라도 주거가 안정되는 느낌이 좋았다. 내가 번 돈으로 작은 집을 꾸미고, 옷을 사 입고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남편과 아기가 있는, 사업을 하고 있는 마흔은 다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고, 미뤄둔 노후 준비도,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담실 홈페이지도 정리하고, 키오스크를 들일지 말지에 대한 고민부터 워크숍을 개설해 볼까, 대학 강의는 어떻게 할까 고민거리가 많았다. 생각이 많으면 나는 쉽게 불면증이 생긴다. 


22년 12월부터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많아졌다. 여러 걱정, 기획과 구상, 돈에 대한 생각들이 가득 차서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에 괜히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리고 핸드폰 게임을 한다. 하다 보면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피곤해진 몸이 아우성을 친다. 이리 누워도, 저리 돌아 누워도 불편한 상태가 지속되다가 기절하듯 잠이 드는 것의 반복이다. 하루이틀 이 상태로 있으면 아기를 재우다가 초저녁에 까무룩 잠에 든다. 그러면 또 열두 시쯤 깨서 다시 못 자기를 반복한다. 


작년 말부터 새해에는 이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들이 많아서였는지, 올해의 새해 다짐은 조급하다. 일 년 동안 할 일이겠지만 이미 완성형이어야 할 것 같다. 홈페이지도 완벽하게, 센터 운영지침도 명확하게, 워크숍 계획은 이렇게. 늦어도 1시 전에는 자고, 8시에는 일어나 아이와 오전 시간을 보내고. 드레스룸도 정돈된 상태여야 한다. 공부도 해야지. 스터디 모임도 꾸려야지. 글을 꾸준히 쓰려고 한다. 좋아하는 동료 선생님들도 만날 거다. 요이땅 하고 2023년이 시작되면 새로운 생활이 펼쳐져야 하는데 하룻밤 더 잤다고 내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 달라지는 것. 생각만으로, 다짐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다.


12월 말, 글을 써야지 하는 다짐은 새해로 미루지 않았다. 바로 시작했다. 홈페이지 정비를 시작한다. 네이버 모두 홈페이지로 간결하게 만들려고 했다. 적당한 모습이 된 것 같다. 다른 근사한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센터도 많겠지만 이만하면 됐다. 비교는 금물이다. 키오스크 구입은 일단 미룬다. 돈이 부족하다. 12월 지출이 커서 1월 카드값이 빠듯한데, 1월은 일이 별로 없는 달이다. 수입이 적을 거라는 말이다. 설연휴도 있어 현금도 필요하다. 패스. 심리학자라고 뭐 대단한가, 매일 이런 걱정 속에 산다. 


벼락치기하는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내내 벼락치기로 살던 사람이 엉덩이 무겁게 붙이고 앉아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나을 일이다. 벼락치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잘게 쪼갠다

'상담실 운영을 잘해볼 거야'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쪼개본다.

2. 일단 하나 한다.

일단 모두 홈페이지 만들기로 들어가 본다. 모두 홈페이지 몇 개를 보며 벤치마킹하듯 만들어 나간다. 내키는 걸 그냥 시작하는 편이 좋다.

3. 작심삼일을 활용한다.

브런치 글을 매일 써야 한다고 다짐하지 않는다. 하루이틀 일단 해보고 다시 또 마음먹으면 된다. 중요한 건 자책하지 않는 마음, 하루이틀 빠진 것보다 하루이틀 해낸 일에 집중해 본다.

4. 1, 2, 3번을 자주 한다.

지칠 것 같을 때 다시 잘게 쪼개서 하나 정도만 해본다.


뜻밖에 귀인을 만나 무언가를 하게 되는 날도 있다. 오늘이 그날이다. 출근길에 뜬금없이 병원 동기 선생님의 새해 인사 카톡을 받았다. 괜히 신나서 갑자기 개업한 후배 선생님들 단톡방을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다음 주 저녁약속을 만들었는데, 수줍고 부끄러운데 모임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루기만 하는 일인데 내키는 대로 해버렸다. 2번 활동을 도와준 동기 선생님에게 심심한 감사를.


이게 대체 무슨 글인가 싶다. 벼락치기 개똥철학. 다음에 좀 더 근거 있는 벼락치기로 찾아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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