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와 미루기
어릴 때면 개학 전날은 늘 급하고 초조했다. 미뤄둔 방학숙제가 산더미인데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고 밀린 일기를 써야 하고, 웬 사진을 찍어서 현상한 뒤 붙여야 하고. 엄마 말에 따르자면 미룬 방학숙제를 하려고 내가 방에서부터 시작해서 방이 꽉차면 거실까지 할일을 가지고 나와 늘어놓고 온 집안을 어지럽혔다고 한다. 그렇게 찍은 사진도 있다. 방을 꾸미는 만들기 과제였는데 미루고 미루면서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어 상도 받았었다. 중학교 때는 미루고 미루다가 밤새서 만들었던 쿠션도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삼면을 바느질을 해서 긴 주머니 모양을 만들어 안에 솜을 넣고, 열린 한 쪽은 리본으로 묶어서 마무리했던 별 자수가 장식된 베이지색 쿠션이었다. 바느질선이 삐뚤어지는 것이 싫어서 먹지를 대고 룰렛으로 선을 그려 점선 한 칸마다 박음질을 했었다. 재봉틀로 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자세히 들여다보고서야 숙제로 인정해주며 '인간 재봉틀'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받은 적도 있다.
미루고 대충 하면 그만인데, 미루고 잘하려 하니 그게 문제였다. 대충이란 게 없었으니, 완벽주의와 미루는 습관으로 인해 노상 힘이 들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이제 벼락치기다. 자랑 아닌 자랑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늘 공부를 잘해왔는데 영 못 하는 게 너무 싫은 거다. 시험기간이 되면 1-2주 전부터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물론 미루기 때문에 1주일 전에 다시 한번 계획을 수정한다. 시험을 3일 본다고 하면 3일째 과목부터 시작해서 역순으로 한다. 예체능 과목은 전날 하루 보는 걸로 하고, 주요 과목들은 미리미리 시험범위를 나눠서 봐야 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름의 체계가 있었던 것 같다.
늘 미루고 벼락치기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벼락치기를 해도 이렇게 잘하는데, 꾸준히만 하면 얼마나 더 잘하겠니. 그러면 하버드도 갈 수 있겠다"하고 말씀하셨는데, 그럴 때면 속이 답답해 오는 거다.
"엄마, 이걸 미루고 하는 것까지가 내 능력이야. 내가 그냥 그런 사람이어서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야"
이런 부분만 조금 어땠으면, 이런 성향만 조금 아니라면, 우리집 상황만 조금 어땠다면 하는 가정이 아쉬울 때가 많지만, 뭐 어쩌겠나. 내가 이런 걸. 미루는 것에 대한 변명일 수도, 나에 대한 수용일 수도 있지만 불완전해서 불편한 나의 부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