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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빌더 Jul 05. 2023

엄마와 딸

세 돌이 갓 지난 딸이 간밤에 자다가 설사를 해서 잠을 설쳤다. 기저귀를 떼고 실수한 적이 없었는데, 항생제 부작용인지 급성 장염인지 탈이 났나 보다. 본인도 놀라고 당황해서는 씻으면서 엉엉 운다. 엄마 안아줘. 엄마 안아줘. 나는 너무 속상해서 시끄럽게 울고 싶어. 너무 놀랐어. 너무 속상했어. 하는 말에 괜찮아 괜찮아하며 한참을 안아줬다. 아기처럼 가슴팍에 기대서는 훌쩍거리는 딸. 한참 안겨서 진정하고는 품에서 잠이 들었다.


엄마가 닭을 삶아놨다고 가져가라 한다. 불퉁하게 뱉는 말이 그냥 엄마 말투다. 퇴근길에 들르겠노라 하고 빗속을 뚫고 엄마네 집으로 갔다. 친정집이라는 말이 별로 익숙지 않다. 대학 다닐 때부터 나와 살았고, 언니와 나를 시집보내고 엄마는 작은 집을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방 한 칸, 거실 하나의 아담한 임대아파트에 혼자 사신다. 친정집은 내가 자라온 우리 집이었던 곳처럼 느껴지는데, 나에게 엄마의 집은 그냥 엄마의 집이다.


무슨 닭이 저렇게나 큰지 오리인지, 칠면조인지, 혹은 거위일까 생각을 하며 엄마가 부지런히 음식 담는 것을 본다. 커다란 양푼에 고기를 건지고, 웬 전복들이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며 솥에서 양푼으로 쏟아져 내린다. 국물은 비닐봉지에 두 번씩 싸고. 커다란 김치통엔 여름철 내가 좋아하는 열무김치, 작은 반찬통도 여러 개다. 수박과 체리까지 쇼핑백에 넣으니 두 사람의 손 네 개가 남질 않는다.


엄마가 반찬을 싸는 걸 지켜보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지난주 결혼식을 했던 후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한다. 오래 암투병을 하셨다고 들었다. 결혼식장에서 혹시 쓰러지시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였는데, 휠체어에 앉아 콧줄을 끼고 화장을 곱게 하셔서는, 생기를 잃어가는 분의 모습이 눈물겨웠다. 부모님께 인사하는 시간에 남편 후배인 신부가 씩씩하게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울지 않으려고 얼마나 마음을 먹었을까. 얼마나 속으로 연습했을까 생각하다 신부 대신 하객들이 울었더랬다.


결혼식이 지나고 열흘. 신랑신부는 신혼여행에 갔다 돌아왔고, 바로 응급실로 향해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고 한다. 딸의 결혼식을 함께 하기 위해 부단히 의지를 다졌을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하고, 엄마를 보낼 수 없는 딸의 마음이 느껴져 슬픔이 차오른다.


내가 울먹거리며 전화를 받으니 엄마는 무슨 일이냐 물었다. 오래 암투병 하시던 분이 돌아가셨다고, 딸 결혼식 보고는 가셨다고 하니 엄마는 오래 아프면 못써, 잘 보고 가셨네 하고 또 내뱉는다. 무슨 말을 그렇게 차갑게 하냐고 핀잔을 주고, 짐을 바리바리 챙겨 나오는 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가 말한다. 요양원에 누구 한 명 새로 들어왔어. 67살이래. 나랑 동갑이야. 치매인지, 섬망인지, 무슨 망상이 있는가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앗싸! 하고 소리도 지르고 그래. 밥도 떠먹여 줘야 먹지 그게 뭔지도 몰라. 어휴. 얼굴은 또 왜 그리 예뻐.


예쁘고 젊은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와 혼잣말을 하고 떠먹여 주는 밥을 먹는 것을 상상하다가 또 울컥했다. 그분도 누군가의 엄마일 테지.


그러고는 이어지는 말이,

이거 가져가서 다 냉장고에 넣어.

죽음과 삶을 빠르게 오가는 대화에 정신이 혼미하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여러 해 일하고 계셔서 아픈 어르신들을 많이 본다. 몸도 정신도 혼자 힘으로 못 살게 되면 꼭 빨리 죽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연명치료 거부신청도 이미 해두셨고, 장기기증도 신청해 두고, 죽기 전에는 건강해야 한다며 운동도 챙겨하신다.


돌아오는 길 역시나 거센 비를 뚫고 조심조심 운전을 하는데, 괜스레 울컥해서 눈물을 몇 번이나 삼켰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많이 슬프겠다. 아빠를 갑자기 보내고 죽음공포증 같은 것에 시달린 나는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무뎌지고 언제든 무슨 일이든 생겨도 괜찮으리라 다짐해 왔다. 그런데도, 오늘에 이르러 엄마가 돌아가시면 많이 슬플 것 같다고 많이 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리고 아픈 딸이 엄마 품에서 위안을 얻고, 나이 든 엄마는 칠면조만 한 닭을 삶는다. 누군가의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고, 누군가의 엄마는 혼잣말을 한다.


엄마와 딸이, 삶과 죽음이 슬픈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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