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걱정 없이 크레파스 하나만 쥐고 있어도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내가 자라서 엄마가 되었다.
늘 기웃거리고 남의 답안지가 궁금한 나였다. 남과 나 사이의 애매한 답 속을 헤매느라 시간은 다 흘러갔다. 내 인생도 남의 인생도 아닌 듯한 애매한 느낌. 내 인생인데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한 생명이 내 뱃속에 집을 짓고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 이 아기까지 남의 답안지를 엿보며 키울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돼서야 어렴풋이 두 가지를 알게 된 것이다.
1. 내가 쓴 답이든 남의 답을 베껴 쓴 답이든 내가 선택한 답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
2. 내 인생의 정답은 내가 쓴 답일 수도 있다는 것
어떤 답을 쓰던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스스로 달라지고 싶었다.
내 인생의 답은 내가 쓴 답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생각을 믿어보고 싶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이 들 때 나에게 한 번 물어보자는 마음이었다.
내 인생이니까 나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남들이 선택하는 답이니까 쓰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이 끌리는 방향과 거기서 오는 느낌을 모른 척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내 마음이 끌리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믿었고, 나의 느낌은 적어도 내게 옳다고 생각했다.
작은 선택이라도 내가 내 편에 서고자 하니 내 인생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 괜찮다, 문제없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 시작이 자연출산이었고, 집에서 산후조리하는 것이었으며, 가정 보육했던 시간이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많은 육아서에서 36개월까지는 엄마 품이 좋다니까, 아이를 위해 가정보육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엄마인 내가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아이 덕분에 웃었고, 성장한 시간이었다.
내가 선택했던 답들은 결국 나에게 어떤 의미와 행복을 남겨 준 것이다.
가정 보육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마다 상황은 다 다르고 육아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정 보육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가정 보육할까? 말까? 고민이 된다면, 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그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옆집 엄마가 어린이집 보낸다니까 우리 아이도 덩달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선택을 따라가 보았으면 한다. 분명 어떤 이유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이는 이제 5살이다.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옆집 엄마의 사교육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을 것이고, 아이의 진로와 방향을 어떻게 이끌어주어야 할지 고민스러운 무수한 밤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를 품고 나서 깨달았던 두 가지를 마음에 깊이 새길 것이다.
1. 내가 선택한 답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
2. 내 인생의 정답은 내가 쓴 답일 수도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내게 온 아이에게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