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설유치원과 코로나
“안녕, 나랑 같이 놀래?”
4살을 꼬박 채우고 나니 아이가 친구와 함께 노는 재미를 알만큼 성장했다. 놀이터에 가면 아이는 또래를 찾아서 먼저 인사를 건네고 같이 놀았다. 아직도 내 눈에는 어린아이 같은데 형이라고 놀이터에서 만난 동생에게 장난감을 양보하기도 하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등 의젓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만 더 천천히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과 많이 성장했구나를 동시에 느끼곤 했다.
느낌이 왔다. 5살에는 유치원에 보내야겠구나! 5살에는 아쉬움 없이 보낼 수 있겠구나.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7살까지 보낼 수 있는 어린이 집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대기가 길었다. 1년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리 대기를 걸어 두었고, 근처 초등학교 내 병설 유치원에 지원했다.
공교롭게도 병설 유치원에 뽑혔다는 소식과 함께 단지 내 어린이집도 아이의 순서가 되어서 등원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병설 유치원 하원은 매일 1시 20분, 어린이집 하원은 4시.
병설 유치원 방학은 한두 달, 어린이집 방학은 1주일.
병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에서 큰 차이가 났다.
이를 두고 내 안에서 또 많은 갈등이 일었다.
고민한 끝에, 내 마음은 여전히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그 마음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병설 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기분이 가벼워졌다.
늦가을 아이와 함께 유치원 입학 설명회에 다녀왔다. 작은 손을 잡고 학교에 들어서면서 5살 형이 되면 다닐 유치원이라고 이야기해줬다. 아이도 기대했고 나도 기대했다.
내년이면 드디어 나에게도 평일 오전에 온전한 내 시간이 확보된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벅찼다. 2020년 계획을 세울 때 나를 위해서 하고 싶은 일로 꽉꽉 채웠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에 욕심을 냈다.
병설 유치원의 방학이 길다는 점도 장점으로 생각했다.
5살 아이와 다른 지역 2주 살기 혹은 한 달 살기를 꿈꿨다. 방학은 방학 나름대로 추억을 만들 생각에 기대되었다. 육아에 대한 나의 욕구를 실현하기에 병설 유치원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나와 아이의 성장이 기대되는 2020년이었다.
2020년 한 해가 넘어가니 지금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인 우한 폐렴이라는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난리였다. 심각한 상황이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뉴스를 잘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그 심각함이 작은 핸드폰 액정을 통해서 느껴졌다. 나가서 무언가를 만지기만 해도 예외 없이 바이러스에 옮을 것 같은 두려움이 확산되어 아이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3월 3일 아이의 유치원 입학식 날이었다.
코로나로 입학식은 연기되었고 온라인 원격수업으로 대체된다는 온라인 가정통신문이 전해졌다. 선생님은 매일 아침 EBS 우리 집 유치원 링크와 관련 수업 자료를 보내 주셨다. 필요한 교구는 택배로 도착했다. 유치원 친구들은 네이버 밴드의 프로필 사진으로 겨우 볼 수 있었고 “누구누구 출석합니다.”라는 댓글로 같은 반 친구들이 존재함을 알았다.
아이가 등원하지 않으니 기대했던 나의 온전한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기대하지도 못한 2020년이 펼쳐진 것이다.
아쉬움은 분명 있었지만, 또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던 것은 해왔던 가정보육의 연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월 28일이 되고 첫 등원을 했다. 어린이집이 아니니 적응기간 같은 건 없었다.
처음 유치원 간 날 약간 긴장된 모습으로 새싹반 앞에 서있던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다.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엄마가 데리러 올게. 친구들과 선생님과 즐겁게 보내!”
아이는 씩씩하게 손 흔들어 보였다. 4돌 가까이 된 아이가 처음으로 가족 품을 잠시 떠나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아이를 한참 지켜보다가 집에 돌아왔다.‘내 품에서 어느새 이만큼 컸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다.
오늘 유치원 등원을 시작으로 우리는 한평생 만났다 헤어졌다를 무수히 반복할 것이다. 나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아이 스스로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인생이, 아이에게는 아이의 인생이 있음을 인정하자고 나를 다독였다.
그 이후로 1주일에 한 번씩 유치원에 등원했다. 병설 유치원이라 초등학교 등교수와 같았다.
친구에게 아이가 이제 1주일에 한번 등원한다고 소식을 전하니 유치원 체험하는 거냐고 웃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등원수가 적은 것도 한 반을 3팀으로 나누는 것도 차라리 낫다 싶었다.
가정보육과 다름없었지만, 자기 전 입고 갈 옷을 스스로 챙길 만큼 아이는 유치원 가는 그 하루를 기다렸고 즐거워했다. 나 역시도 평일 하루 오전 3시간 30분이 귀했다.
1주일에 한 번씩 10번을 등원하고 나니 여름방학이었다. 한 달의 여름 방학을 보내고 2학기는 일주일에 두 번씩 등원했다. 한 번이었다가 두 번 등원한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상황이 또 달라져 초등학교는 매일 등교가 결정되었고, 병설 유치원은 한주는 두 번 다음 한주는 세 번씩 등원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가정보육인 듯 아닌 듯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라고. 이 시간은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일주일 중 며칠은 아이가 유치원에 가니까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유치원에 안 가는 날은 계획했던 가정 보육은 아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여전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