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어린 나에게

아이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by 마인드카소

기억은 편집된다.

좋았던 기억은 작은 것도 수집해서 모아 두고 힘들었던 기억은 컷 해서 버린다. 사무치게 아픈 기억은 더 크게 조각나서 마음에 남아있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은 불유쾌한 기억들은 컷. 컷. 컷. 과감하게 자른다.

그런 기억들까지 다 안고 살기에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감정과 에너지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 보육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힘든 순간도 꽤 있었다. 사소한 힘듦은 아이의 미소로 애교로 금방 잊어버리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한 번씩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24개월 전후였다. 아이도 자신이 아기인지 어린이인지 헷갈리는 시기. 아기처럼 엄마가 다 해주길 바랬다가도 어린이로 대해주기를 원했다. 아이는 고집이 생겼고 뭐든지 혼자 해보고 싶어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자신의 뜻대로 잘 안되면 악을 쓰며 난동을 피우곤 했다. 달래기가 힘들었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육아서를 읽으면 머리로는 아이의 성장을 이해했지만 막상 그 고집을 마주하면 아이를 외면하고 싶었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같이 악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자잘한 힘듦이 누적되고 있는 와중에 아이는 한동안 밤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했다. 이틀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맞춰 주었다. 12시가 넘도록 책을 읽어달라면 책을 읽어주고 블록놀이를 하자고 하면 같이 쌓고 놀았다.

이런 밤이 삼일 째 반복되자 나의 수면 부족과 피곤함이 펑 터지고 말았다. 힘들어서 강제로 아이를 재우려 했고 아이는 자고 싶지 않다며 악을 썼다. 체력이 바닥나니 내 인성의 밑바닥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도 나도 울고불고 난리 속에 새벽을 보냈다.


아침이 되었고, 아이와 외출했다. 산책이 아니었다.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을 대여섯 군데를 투어 했다. ‘어린이집에 보내야지’가 아닌 ‘어린이집에 보내 버릴 거야’ 충동적인 마음에서였다. 당장 자리가 난 곳이라면 집어넣고 싶었다. 그때 심정은 그랬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가 지구에 오기로 결정을 하면, 저 먼 별나라에서 한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사춘기, 청년, 결혼 후까지 꼼꼼히 지켜본 뒤 엄마로 선택해서 뱃속의 씨앗으로 들어온다고. 그러니까 아이는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면서 '저 사람이면 나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나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불러주는 아이. 나 하나 믿고 저 먼 별나라에서 지구로 내려온 존재라니, 감동적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화가 나면 왜 이렇게 고약하게 변하는 걸까.

나를 믿고 온 아이에게 변함없이 잘해주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정한 기준에 어긋나면 왜 이렇게 함부로 구는 건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차근차근 계획이나 합리적인 생각을 거쳐서가 아닌 나 힘들다고 갑자기 어린이집에 보내려는 나를 보며 또 화가 났다.


한 어린이집에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눈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지금 우리가 잘 지내기 위해서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아니란 걸 내 마음은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다가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내 안의 어린 나에게 물어보는 것. 마음속의 어린 나나 지금 어린 내 아이는 같으니까 말이다.

그 날 이후로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떼를 쓰거나 버거울 때면 “어린 나”를 소환한다. 이럴 때 어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린 내가 엄마에게 떼를 쓰고 고집 피우는 이유. 그럴 때 그 어린 나는 엄마가 나를 어떻게 해주기를 바랐을까? 그 포인트를 곰곰이 생각한다.


어린 나는 내가 아무리 떼쓰고 못난 짓을 해도 엄마가 언제든 안아주고 품을 내어주길 원했다.

좀 찡얼거려도 “오구오구 기분이 안 좋아?! 어떻게 하면 우리 아기 기분이 좋아질까?” 한결같은 친절함으로 대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속상했고 나 좀 봐달라고 난리를 쳤다.

엄마는 달래주기는 커녕 한 번씩 내게 더 심한 화를 퍼붓기도 했는데, 친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엄마에 대한 신뢰의 뿌리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혹시 나도 아이에게 이런 불안감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이의 눈을 보는데 덜컥 겁이 났다.


아이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또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목이 매였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나의 부족하고 잘못했던 일을 계속 끄집어내서 수치심을 주거나 반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금방 용서해주고 마음을 회복해준다.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잘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

잘하자.


육아 5년 차 여전히 힘든 순간이 있다. 아이가 이해가 되지 않고, 왜 저러나 싶고, 미울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 안의 어린 나에게 묻는다.


‘아이야, 엄마가 어떻게 대해주면 좋겠니?’


'그럼에도 안아주면 좋겠어.

조금만 기다려주면 좋겠어.

상냥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어.'


내 안의 아이는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들은 그대로 아이에게 해준다.

내 안의 아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의 형태대로 우리 아이에게 대해주면, 아이는 차분해지거나 조금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어린 시절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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