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는 누구일까? 아마도 부부일 것이다. 그래서 피를 나눈 부모-자식도 일촌(一寸)이지만, 부부는 무촌(無寸)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부부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친밀한 타인인 것은 맞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는 절대 비밀 같은 것은 없기로 해!'라는 무리한 약속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것을 반영해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달달한 약속과 관계는 백년해로하기로 했던 약조를 지킬 의지가 있는 한에서만 그렇다ㅠㅠ 다른 측면으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미울 수 있는 타인(?!) 역시 배우자이다. 가장 사랑하였으니 결혼하였으나, 그만큼 기대와 바램도 많다. 그 얘기인즉슨, 실망과 서운함도 가장 많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즉 좋은 감정과 안좋은 감정 간의 폭이 가장 큰 대상 역시 배우자이다.
그래서 부부 사이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혈육관계가 아닌 중에서는,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우며, 가장 친밀하고, 가장 아껴준다. 동시에 기대와 요구가 가장 많으며, 나를 이해하고 돌보아주기를 가장 원한다. 그래서 가장 많이 실망하고 상처 받고 가장 많이 분노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불행히도 이 또한 맞는 말이다.
2. 누구나 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와 같이 가장 친밀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이인 부부 사이에서 비밀이 없기를 약속하는 것은 좋은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몇 가지 확인부터 할 것들이 있다.
우선 비밀이 없는 사이가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배우자를 제외하고 생각해보자, 과연 비밀이 없는 사이가 있었던가? 또한 배우자라고 가정을 해 보자, 비밀이 없는 것이 가능한가? 비밀이 없기로 약속을 했다면, 어떤 얘기이건 간에 '왜 그 얘기 나한테 안 했어? 우리 서로 비밀이 없기로 했잖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수많은 과거의 일들과 현재의 모든 일들을 공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할 수는 있는 일인가 하는 것부터 고려해보라.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간에 비밀이 없다는 것이 꼭 좋기만 한 것일까? 비밀이 없기로 약속한 내용 중에 가장 흔한 것은 언제,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항상 확인 가능하며 서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서로의 스마트폰 내용을 마음대로 확인과 검색(?!)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해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 내용을 다 아는 것이 꼭 좋을까? 업무 상, 혹은 개인적으로 했던 모든 통화를 설명하고, 고객과 나누었던 별로 유쾌하지 않은 비굴한(?)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을까?
이는 다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사업 잘되니?'라는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잘 안되고, 힘들어 죽겠어요ㅠ'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과 '그럼요! 잘되요!! 걱정 마세요^^'라고 안심하도록 하는 거짓말(White lie) 중에 어떤 대답이 적절한가? 혹은 아이를 봐주시느라고 멀리서부터 어쩔 수 없이 출퇴근을 하시는 친정엄마에게 '엄마가 오시는 것 때문에 사위가 좀 불편한가 봐ㅠ'라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그리고 꼭 말해주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3. 선호에 따라 선택하고, 기대와 요구를 조정하라.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다 있는 법이다. 특히 결혼을 감행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예쁘게 보이고 잘 보이고 싶으며, 좋은 면만 드러내어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일이 과거이건 현재이건 간에, 그리고 개인적 이슈이건 업무적 문제이건 가족과 관련된 아픔 이건 간에, 자기 만의 영역으로 놓아두고 싶은 부분들이 있는 법이다.
만약 너무 사랑해서 그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비밀이 없기를 요구하고 약속하라. 단, 상대방도 동의하면 그렇게 하라. 적절하게 자신의 비밀스러운(?) 영역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상대의 반응을 '자기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ㅠ 어쩜 그럴 수 있어??'라고 받아들이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그냥 사랑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기대와 요구가 서로 다를 뿐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다양한 부분에서의 타협과 조율이 필요하다. 결혼식장을 잡는 일에서부터 하객들 식사나 접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이 살 신혼집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세세한 인테리어까지, 식사하는 방식에서부터 이를 정리(즉, 설거지!)하는 방법까지, 20년 이상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살아왔던 두 사람 간의 무한한 조율과 타협의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서로 비밀이 없는 사이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두 사람이 합의하여 결정하면 되는 문제이다. 단, 다른 문제들처럼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를 강요한다면 그것 자체가 갈등의 시발점이 되어 관계가 매우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기억하라.
4. 건강한 신비감을 유지하라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돼!'라고 요구하고 기대하는 심리는 결국 '신뢰 및 믿음'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부부 사이의 비밀' 문제는 '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무슨 나쁜 짓을 했길래나한테 숨기려고 하는 건데?'나 '자기는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거 맞아?ㅠ 근데 왜 말 못 해?ㅠㅠ'등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나쁜 짓'의 문제나 '안-사랑함'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신뢰와 믿음이 안정화 될 때까지 서로 굳건한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정적 이슈일 뿐이다. 서로의 핸드폰을 매일 검사하다가도 별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결국 귀찮아서(?) 그만두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그런데 '부부 사이의 비밀' 문제를 서로 간의 '믿음과 신뢰 형성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는 매우 큰 이슈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를 '진정한 사랑'이나 말 그대로 '믿음과 신뢰' 상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이슈와는 다르게 (부정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욱 큰 싸움과 불신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느니 차라리 서로 '건강한 신비감'을 존중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의 신체적인 약점과 부끄러운 부분을 멋지게 보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안 드러내고 싶은 것처럼,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안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혹은 '필요하거나 때가 되면 얘기를 해주겠지!'라고 그냥 상대를 믿어주는 것은 어떨까?
목숨 걸고 비밀을 털려고 하기보다는 서로 간에 믿음과 신뢰에 기반하여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 영역에 대해 존중'하여 "건강한 신비감"을 서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방에 대해서 모두, 그리고 세세하게 다 아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결혼 생활이라는 영역에서 필요한 필수적인 정보 공유는 필요하겠지만, '배우자이니 비밀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사적 영역에 대한 침범이며,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때 분만실에 남편이 들어가서 분만 장면을 보고 참여하는 것을 추천하던 때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 찬반이 엇갈렸으며, 의견이 분분하였다. 분명한 것은 분만 장면을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이를 강요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에는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분만 장면에서의 자세나 노출되는 신체 부위 등을 고려할 때) 이성으로서의 신비감을 유지하고 싶거나 혹은 너무 힘들어하는 보이고 싶지 않은 산모에게는 이를 강요할 수 없다.
'부부간의 비밀 공개' 이슈도 마찬가지이다. 명확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며, 서로 간의 조율과 합의를 통해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을 위해서 혹은 일반적인 대인관계심리를 고려했을 때에는 '부부간의 비밀 공개'를 거부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을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것'이나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음'으로 해석할 문제는 아니다. 사적 영역에 대한 존중이며,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영역에 대한 인정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 부부간의 충분한 믿음과 신뢰가 기반이 되는 가운데에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