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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박사 레오 Sep 18. 2021

군생활이 남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feat.D.P.)

 Photo by Netplix



1. D.P.를 보셨나요?


Photo by Netplix


요즘 많은 분들이 저에게 '박사님은 D.P. 보셨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아마도 영화 내용 상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나 해석이 궁금하셨던 것 같습니다. 


최근 D.P.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로 인하여 남자들의 군생활이 핫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배경이 헌병대이므로 주로 사건 & 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들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인사과 행정병이었던 저의 감회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 인사과에는 아침이면 '헌병대 사건사고 보고(? 하도 오래돼서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으나..ㅠ)'라는 것이 도착합니다. 

최근 있었던 사건사고 사례를 공유하여 조심하고 예방하지는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은데.. 

그 내용을 보면 '세상에는 참 별일이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게다가 제 전공이 전공인지라 그 내용을 자동적으로 분석하면서 사고자의 성격, 환경, 성장 배경 등등 남들과는 좀 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군 인사과 행정병이 가장 힘들어하는 업무가 2가지 있는데, 그것은 '사망사고'와 '탈영'사고입니다. 

군 생활하면서 이 두 가지를 겪지 않는 것만으로도 복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인사과 행정병 입장에서는 아주 고통스러운 업무입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만 해도 30가지를 넘어 며칠을 밤을 새야 하고, 관련하여 부대 전체가 조사받아야 하는 것까지 치면...... ㅠㅠ (저.. 역시.. 복 없는?! 행정병이었습니다..ㅠㅠ)


이처럼 우리나라의 일반 남자라고 하면 피할 수 없는 군생활은 당연히 남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몇십 년이 지나도 가슴 저리고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PTSD급의 영향을 미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들도 다 가는 군대라는 이유로 그 고통이나 부정적 영향이 무시되어 왔습니다. 

특히 이번 D.P.라는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명백하고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서도 '그냥 덮고, 그냥 방관하고, 그냥 무시하고, 그냥 회피하고' 넘어가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D.P.라는 영화는 우리가 피하고 싶고 숨기고 싶었던 진실을 정면으로 직면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군생활을 경험한 남자들도, 꿀 군대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던 군대 미경험자도, 앞으로 군대에 갈 사람들도, 혹은 자녀를 군대에 보내거나 보낼 부모님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2. 찐.굴종(屈從)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Photo by Diego González on Unsplash


굴종이라는 단어를 풀어서 말하면, 사전적으로는 '자신을 뜻을 펴지 못하고 굽힘' 정도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측면을 반영하자면 '굴욕적으로 복종할 때 느끼는 처참하고 비참한 기분'을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타인의 의지를 따른다는 행동적 의미 이상으로 자신의 뜻을 굽히는 과정에서의 굴욕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굴종' 사건으로 일제 치하의 식민지 시대를 거론할 만큼 '굴종'은 아주 고통스러운 감정의 일종이며,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힘들고 부정적인 감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군 생활에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굴종입니다. 


학교나 가정에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인정받고 당당하게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군대에 들어가는 순간 그런 것은 없습니다. 

똑같은 복장과 똑같은 머리를 하고, 조교나 고참의 한마디에 반박이나 토를 다는 것도 금지되며 계급이라는 기준 하나로 나이와 출신, 학력이나 직업 등과 상관없이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됩니다. 

개성과 가치를 인정받던 존재에서 철저하고 완벽하게 'One of Them'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 내용 중 굴욕적인 복종의 예는 차고도 넘치니.. 제 사례를 하나 들어드리자면..

석사과정을 하다가 군대에 갔던 터라 엄청나게 늦게 나이에 군대를 가야 했던 저의 경우 이미 군필을 했던 후배들이 제 손을 꼭 잡고 당부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형.... 나이 잊어.... 군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정말 잊어.... 안 그럼 힘들어....'라는 당부에 

'괜찮아, 나는 뭐 나이 같은 거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린 후배들과도 잘 지내잖아! 괜찮아!^^'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훈련소에 입소해서 '어디로 가야 하지?'라고 헤매고 있던 저에게 저의 막내동생 뻘 밖에 안돼 보이는 갓 20세 넘어 보이는 조교가 '야이 개OO(in english, dog baby!)야! 이게 어디서 정신 못 차리고 헤매고 있어?! 빨랑 안 달려와~!'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으면서 현타가 왔습니다. 

10분 전 군부대 밖에서 같았으면 '이게 미쳤나, 너 나 알아? 이게 어디서 함부로 욕질이야! 한판 뜰래?'라고 반박했을 건데, 군부대 내에 들어오는 순간 아무런 반항도, 반박도, 따지지도 못하고 조교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누군지도 모른 채, 누구도 그 조교의 명령을 따르라고 한 적도 없으나 '엎드려뻗쳐!'라는 지시에 자동적으로 따르게 되며, '빨랑 튀어가~'라고 하는 말에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던 저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거구나.. 참으라던게.. 이게 현실이구나..ㅠㅠ'라는 생각이 들며 군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어떠셨겠습니까?

(저의 경우 90년대 군번이라서 요즘은 덜 그렇겠지만) 아마도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비슷한 경험들을 여러 개 떠올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언행에 굴복하고, 무조건 참아야 하며, 이런 경험이 24시간 내내 이루어지는 곳에서... 1년 이상을 지낸다면 어떻겠습니까?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부당함을 따질 새도 없이 굴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군대입니다. 



3. 고민과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 '까라면 까~'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군의 속성 중 하나는 분명한 명령과 그에 따른 일사불란한 행동입니다. 

'돌격 앞으로!'라고 명령이 내려지면 무조건 달려 나가야만 합니다. 

특히 전쟁 중이라면 더욱 그러하며(실제로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는 아직 전쟁 중입니다ㅠㅠ), 전쟁을 염두에 둔 조직의 특성상 상사의 명령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나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이나 절차 등보다 빠른 실행과 그로 인한 결과(적군을 물리치기?!)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군대에서의 상사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이며, 관련된 능력이 우수하다고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사불란한 명령체계가 중시되는 조직에서는 상관의 업무(?) 수행과 지시에 대해서 생각이나 판단을 하지 않고, 지시하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특히 군 문화 상 강압적 분위기와 더불어 이견을 제시했을 때 돌아오는 엄청난 고통 등을 한두 번만 겪어도 자동적으로 학습되는 것이 바로 '생각 없어짐(생각 안 하기)'과 '지시에 군소리 없이 따르기'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용어가 바로 '까라면 까!'입니다. 

즉 상관은 지시를 하고, 부하는 판단이나 생각 없이 따라는 것이 일상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까라면 까~' 현상과 관련된 '생각 없어짐'과 '지시에 군소리 없이 따르기'의 경우에는 두 가지의 큰 부작용을 낳습니다. 


첫 번째는 심리적 공동화입니다. 그 유능하고 스마트하던 인재들이 진짜 '단순'해집니다.

생각이 단순해지고 감정도 단편적이 됩니다.

이는 마치 탁월하고 유능했던 축구 선수가 2년 정도 축구를 하지 않고 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지적인 호기심이나 탐구심, 혹은 미래지향적 사고나 보다 효율적인 업무(?!) 처리 방식을 고안하고 도입하고자 하는 노력과 고민, 군에 오기 전에 했던 일이나 군대를 마치고 해야 할 자신의 경력개발과 꿈을 계획하는 일들은 점점 줍니다. 


반대로 매우 생각이나 행동이 단순화되어서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일념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건강한 문제의식은 없어지고 생각해 봐야 해결되거나 변화할 수 없는 고민을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며, 오늘 하루를 잘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 중요한 생존과제가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삶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단순화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긍정적 자극에 대한 반응은 격렬해지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동안 느끼지 못하거나 억제될 수밖에 없었던 이성에 대한 열정을 자극하는 걸그룹과 군생활과는 달리 달달함이 가득한 초코파이입니다. 


더 큰 두 번째 문제는 고차원적인(?) 생각들이 단순화되면서 심리적 공동화가 일어난 빈자리에 군 특유의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이 들어오게 된다는 점입니다.  

강력한 상명하복 식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일사불란하게 행동해야 하는 집단 분위기, 또한 항상 전시를 대비해야 하는 군의 특성상 강력한 조직 중심의 가치와 사고 등이 빈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긍정적인 측면들도 있습니다. 

'무조건 할 수 있다!'라는 추진력과 실행력을 배울 수 있으며, 장애나 문제에 굴하지 않고 "무조건" 성취해 낸다는 군인정신을 배우기도 합니다. 

또한 건강한 체력과 강한 정신력을 역시 배우게 됩니다. 

게다가 국가와 국민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며, 그들은 내가 보호한다는 의식도 내재되게 됩니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들 역시 따라옵니다. 

권위적이고 지시적인 태도나 행동, 군 비리 등에서 볼 수 있는 돈 빼돌리는 방법과 그 정당성과 합리화 방법, 게다가 엄격한 군 규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연하게 피하면서 적당하니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융통성 있게 생존하기 등.. 

물론 이와 같은 행동 방식은 전쟁과 전투를 대비하기 위한 군의 특성 상에서는 적절한 것이지만, 군을 벗어난 일반적 사회 현상과는 동떨어지거나 사회에서는 부적절한 습관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랑비를 오래 맞으면 옷이 흠뻑 젖듯이 어느 새인가 군문화와 분위기에 적응하고 진정한(?!) 군인이 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에 익숙해지며, 익숙해지는 정도를 넘어서서 점차 군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유명한 Seligman의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실험에 나오는 개와 같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면서 아무런 변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적응하게 됩니다. 



4. 절대 권력에 취하다


Photo by Vincent Ledvina on Unsplash


군의 특징 중 하나는 '영원한 쫄병은 없다!'는 점입니다.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버티다 보면 어느새 후임들이 들어오고 어느새 고참이 되어가게 됩니다. 

그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책임이 부과되면서 '우리는 고참이 되면 절대 그렇게 하지 말자!'라는 다짐은 서서히 잊혀가고 '좋은 말로 하니까 정말 군기가 안 잡히는구먼!'이라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젖어들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단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또한 24시간 같이 생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참 놀이는 전투력 향상과 국토수호 방위와 관련 있는 영역 뿐 아니라 생활 전반과 개인적인 취향까지도 터치하게 됩니다. 

아무런 저항이나 반발없이 누군가를 마음대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이른바 가스라이터의 역할을 학습하며 고참 생활에 젖어들게 됩니다. 


배우자나 자녀들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부하직원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스트레스받고 짜증이 났던 적이 있나요?

그럴 때 정말 시키는 대로 재깍재깍 &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적이 있으신가요?

군에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생활이나 행동에 대해서 나의 지시대로 복종하는 행동을 보이는 숫자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화나 짜증을 부려도 반항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참의 강력한 달콤함에 젖어들게 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업무 이외의 활동'에 대한 상사의 개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신체적 및 심리적 가해나 손상이 생기는 경우 처벌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영역 상의 문제 외에도 업무와 관련된 개입 방식이 감정적 분노나 굴욕감을 주는 부당한 행위인 경우에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군에서는 24시간 함께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본연의 업무인지를 구별하기가 어렸습니다. 

또한 이의나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파생적인 문제들이나 보복 행위 수준 등을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하지만 따르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절대 권력이 가지는 맛에 점점 취하게 되며, 이를 즐기게 되고, 점차로 문제의식이나 죄책감은 감소하면서 당당하고 자신 있게 고참으로서의 절대권력을 즐기게 됩니다. 

절대 권력이라는 독배의 유혹을 떨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졸병으로 제대를 하게 된다고 하며 아마도 규칙을 준수하고 주변 사람들의 요구에 순응하는 습관을 가진 채로 사회에 복귀할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고참의 달콤함과 (비록 작은 소집단이기는 하나) 권력의 힘의 한껏 경험한 채로 사회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렇게 더욱더 진정한 군인(?!)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군생활이 끝난 후에도 유사한 조건이나 상황이 되면(즉, 위계가 강한 조직 내의 상사가 되거나 큰 권력이 주어지는 상황 등) 그 달콤했던 고참 놀이의 추억과 역할이 단번에 되살아나게 됩니다. 



5. 극도의 유연성을 담금질하다


Photo by Matúš Kovačovský on Unsplash


혹시 '예비군'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됩니까? 

혹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삐딱하게 모자를 쓰고 군복의 단추를 몇 개 풀어 제친 후 껄렁대는 발걸음으로 절대 정예 군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특징적인 행동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막상 훈련을 시작하면 우선 말을 더럽게 안 들으면서 조교를 놀리는 수준을 넘어서 괴롭히면서 즐기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놀라운 전투력(?)으로 식당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비군복을 딱 입는 순간, 그 전날과는 너무 다른 예비군 고유의 행동들이 솟구치게 됩니다. 

그분들이 바로 전날까지는 멀쩡하게 출근해서 일하던 이 사회의 주역들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또 총을 잡는 순간 날카로운 눈빛으로 과녁을 노려보고 만발(모든 사격에서 과녁에 정확히 맞추는 것)을 하고서는 다시 껄렁대는 예비군의 능글능글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영화에 자주 나오는 '힘숨찐'(평상 시에는 힘을 숨기고 사는 놀라운 사격술을 가진 군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훈련이 끝난 후 다음 날 원래 자기 회사에 출근해서 평범한 동네 아저씨(?)의 모습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스마트하고 샤프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 믿기 힘든 변화에 놀라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어진 상황이나 역할에 따라서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행동을 긍정적 관점에서 보면 유연성과 적응력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Roof Korean(혹은 Roof Top Korean)'이라는 표현을 아십니까?

1992년 LA 폭동 당시, 코리안 타운을 지키기 위해 LA의 한국 예비군들이 모여 스스로를 지켜내었던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때때로 회자될 만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졌던 인상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예비역들은 이와 같은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기회가 되거나 혹은 필요에 따라서 평상시에는 잘 숨겨 놓았던 자질과 능력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다중인격인 것처럼, 평상시 모습을 보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숨겨진 모습과 드러나는 모습 간의 놀라운 격차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운 저 유연성과 적응력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에서 나올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사회적 상황과 아주 특별한 군대의 경험이 합쳐져서 만들어 낸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고 생존해야 했던 경험으로 인한 유연성과 적응력'을 보면 한편 안쓰럽기도 합니다. 



5. 왜 우리나라는 군인을 홀대할까?


Photo by Matúš Kovačovský on Unsplash


신문이나 유튜브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용 중에 '미국의 군인 존중 분위기'를 언급하며, 한국에서의 '군인 홀대 분위기'와 비교하는 내용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업무는 신성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활동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가치는 분명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에 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훌륭한 행동에 대한 존중이 없을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첫째, 의무 복무제로 인하여 그 가치가 폄하된다는 점입니다. 

군대에 가고, 나라를 지키며,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이 분명 중요하고 가치 있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남자들이 가기 때문에, 내적인 자발적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닌, 그래서 특별하기보다는 당연하게 거쳐가는 과정 정도의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육아나 가사노동이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갈 뿐 아니라 가정의 평화와 안녕에 매우 핵심적이고 중요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대우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둘째, 군사독재로 인한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반감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독재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신속한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과 더불어 그 폐해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군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국가 안보의 핵심적 역할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적 아픔과 관련된 내적인 반감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특히 518 민주화 운동과 같이 군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대었던 기억들은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강력한 반발심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셋째, 그동안의 우월적 지위로 인한 내부적 개혁과 정화력 부족입니다. 

군사독재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사회 전반을 주도해 왔던 군은 아직도 분단 군가라는 현실과 맞물리면서 우월적 지위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이에 대하여 반기를 들거나 문제시할 때마다 북한의 위협이나 도발을 이용하여 국민을 통제하는 안 좋은 습관이 일반화되었으며, 이는 단순히 국방이나 군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에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파급력이 컸습니다. 

이와 같은 우월적인 지위는 결국 고인물이 썩어가듯이 사회적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를 개발하고 정화하기보다는 이전의 부귀와 영화에 심취하여 문제를 반복하거나 개선을 회피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아직도 (사회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성희롱의 문제가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으며, D.P.라는 영화에서처럼 부당한 이슈들의 개선이 더디어지고 있습니다. 



6. 군인 아저씨! 정말 감사하고 존중합니다!!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어린 시절 위문편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군인 아저씨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서 보내는 강제적인(?) 활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진정성도 없고 선생님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했던 형식적 활동이었습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포스터에 나온 괴물과 같은 적국 군인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 및 불안감과 맞물려 자발적이지 않았으나 의무감에 해야만 할 것은 같은 필요성은 느꼈던 활동으로 기억합니다. 

오히려 이와 같은 반-강제적인 군 존중 활동이 오히려 현재의 군에 대한 반감을 크게 만드는데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재조명을 해 본다면, 

1) 국가 수호 및 국민 보호를 위한 군의 활동은 정말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안심하고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는 어떤 이유로도 폄하되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힘들고 어려운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남자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훼손될 이유는 없습니다. 잘못을 했을 때에 비난을 하고 책임을 물을 수는 있으나 국가수호라는 본연의 역할 완수 자체를 폄하하거나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인정할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해야 하며, 문제가 되는 일부 군 행동에 대한 비난을 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다수의 군인들의 노력까지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2) 특히 대부분의 군인들(특히 일반 병사)이 자신의 젊음을 희생하는 대가로 의무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더 그 가치는 높아집니다. 

그 어린 청년들이 국가를 위해서 2년 가까이 자신을 희생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는 행동은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가끔 생각해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남자라서 무조건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어찌 보면 '왜 남자만?', '다른 나라는 안 그러잖아?', '그럼 정당한 대우는 해줘야지요?!' 등등 조금만 따져봐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를 묵묵히 감수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군소리 없이 징병검사에 참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이 그리고 그 젊은이들이 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가 군생활할 때 제 군 급여가 2만 원이 안되었고 지금도 60여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 당시 제 수학 과외비가 월 3-40만 원이었는데 월 2만원의 급여를 받으면서 무슨 만족과 보람이 있겠습니까?! 지금의 최저 임을을 고려한다면 100만 원도 안 주는 직장에 누가 가겠습니까? 게다가 그 안에서의 활동은 24시간 전일제 활동에 욕까지 먹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예전에 2만 원이었던 군 급여가 60만 원이 되었으니 '많이 좋아졌네!'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에서 보자면 우리는 그들에게 정당한 최소한의 보상을 지급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치루어야 하는 희생은 큰 반면에 우리는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옳은 판단 아닐까요? 군 가산점 자체도 없애는 것이 추세인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마음의 부채를 가지는 것이 더 당연하고 맞는 일입니다. 


3) 군사독재로 인한 폐해나 군 생활의 비합리성 중 대부분은 의무병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의 문제(즉, D.P.의 대상인 일반병)가 아닙니다. 

군의 자신의 사익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상급 군인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를 지금도 자신의 젊은 시절을 기꺼이 국가에 헌신하는 군인들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부 정치군인이나 문제 군인들로 인하여 정당한 대가나 존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희생자가 더 맞습니다. 문제 행동을 하는 일부 정치군인이나 부당한 행위를 한 비위 군인들에 대한 비난이나 책임 추궁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피해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한 일반병들에게 향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 주변에 가치 있고 소중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바라지도 않은 채 희생하고 있으며,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사회적 평가와 인식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들을 이용하고 등쳐먹는 일부 사람들이 나쁜 것이지 그들은 죄가 없습니다. 

백번을 생각해도 착취를 당할 이유도 없으며, 부당한 대우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그들의 희생은 인정받아야만 하고, 충분한 급여나 대가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의 부채를 가지고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보상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강요하거나 부탁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저는 이 시간에도 묵묵히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 대부분 & 다수의 군인 아저씨들에게 진심으로 &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7. 어디에나 빌런은 있다. 


Photo by Matt Walsh on Unsplash


D.P. 영화의 내용이 사실인지에 대한 관심도 뜨겁습니다. 

'군대가 정말 그래요?', '정말 저 정도예요?'라는 질문과 논의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일부의 경우는 사실이기도 하며, 그중에서도 특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해서 영화를 만든 것이다'가 맞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영화와 같은 일을 당하거나 그 피해자로서 아직도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분들은 '저 정도는 아니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큰 문제없이 군생활을 마치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의 흑막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의 썩은 정치인과 부정하게 결탁한 재벌들의 이야기가 일부는 맞는 얘기이며 일부는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경찰의 비리가 나왔다고 모든 경찰이 다 그런 것은 아니며, 영화의 소재로 사용하기 좋은 흥미 유발이나 자극적인 내용을 통해서 영화를 구성한 것이 맞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술 취해서 방탕한 행동을 하는 재벌 O세 들도 있기는 하지만 가업을 물려받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회사를 더 키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하는) 흥미와 관심이 가고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된 내용을 보면서 '군대 전체가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이며 '부정 편향적 사고'입니다. 

또한 레알 현실은 무엇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거나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군 얘기'라고들 합니다. 

특히 군대를 겪어보지 못한 여자들분들은 주변의 남자들분들의 군 얘기가 당연하 재미없고 공감도 안 되겠지요.

가끔 저녁 식사나 회식 자리에 가면 옆자리에서 벌써 수년도 지난 군대 이야기에 몰두하는 테이블을 흔히 보게 됩니다.

일개 전문가로서 그와 같은 행동을 볼 때면, '저렇게라도 풀어야 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군대를 다녀온 모든 사람들은 PTSD를 품고 산다고 보면 맞습니다(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즉 군대에서의 아픈 기억들을 마음에 품고 살며, 2년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후회도 많고, 쫄병일 때의 당했던 아픔과 더불어 절대권력을 가졌을 때의 미안함이나 죄책감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 어떤 내용으로든 군 경험자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월남전에 스키부대로 참여했다!'는 MSG 가득한 뻥튀기나 자기들의 훈련이 가장 힘들었다는 자랑질과 온 부대는 혼자 책임진 것처럼 말하는 근자감 등은 군대 생활로 인한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마음 부림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그들이 여러분의 소중한 사람이고, 조금이라도 군인 아저씨들의 국가 수호의 혜택을 입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조금씩은 인정하고 받아주고 들어주시면 좋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 과정들이 모여 그들의 트라우마가 조금씩 치유되고 힐링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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