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의 확장과 새로운 항적
15년 넘는 세월 동안 나의 세계는 거대한 엔진룸이라는 '나무'에 집중되어 있었다. 피스톤의 움직임 하나, 밸브의 미세한 진동 하나를 살피는 것은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이자 숙명이었다. 하지만 2026년 3월의 사고와 그 이후 마주한 인간적인 실망감들은 나에게 이제 고개를 들어 숲을 바라보라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다.
사고로 인해 흐려진 시야는 역설적으로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다. 한 척의 배, 하나의 엔진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해운 산업의 거대한 흐름과 부조리한 시스템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제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를 넘어, 숲 전체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전략가가 되기로 했다. 싱가포르에서의 기술감독(TSI) 경력은 그 숲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다.
나의 항해는 단순히 관리직으로의 이직에서 멈추지 않는다. 싱가포르라는 글로벌 해운 허브에서 기술감독으로서 현장의 감각과 관리의 정석을 익힌 뒤, 나는 선단 전체를 아우르는 Fleet 경영과 선박 안전 및 오염 방지의 핵심 책임자인 DPA(Designated Person Ashore)의 길을 걷고자 한다. 이는 개인의 커리어를 넘어, 해운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겠다는 나의 의지다.
이 새로운 도전의 가장 강력한 연료는 '어린 나 / 미래의 후배들이다' 이다. 내가 겪었던 부당한 대우, 인류애가 상실된 현장의 모습들을 나의 후배들은 겪지 않게 하고 싶다. 내가 먼저 길을 닦고, 더 투명하고 건강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그들이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을 온전히 지키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이것은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선택인 동시에, 바다 위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갈 다음 세대를 위한 나의 소명이기도 하다.
나는 배에서 내리며 결심했다. 나의 하선은 끝이 아니라, 더 나은 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출항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