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상담사의 어떤 생각
공부를 많이 한 상담자를 만났다.
이론에 빠삭하고, 설명도 정확하다.
어느 접근을 쓰는지 분명하고, 말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런 상담자를 보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또 현장에 익숙한 상담사가 있다.
말이 세련되지 않아도, 조금 서툴러 보여도
이상하게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는 상담사
상담을 ‘잘 해내려’ 하기보다
‘함께 있으려’ 한다.
그 태도가 이론보다 먼저 전해지는 거 같다.
한편으로는 상담사가 지치고 소진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내담자는 교과서처럼 오지 않는다. 내 경험상 어느 이론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정리되지 않은 감정,
버티다 지쳐 온 혹은 괜찮으려 애쓰는 얼굴이다.
그 앞에서 상담자는 매번 선택해야 한다.
지금 말을 건네야 할지,
잠시 침묵을 허용해야 할지,
이론책에서 본 말을 꺼내야 할지,
그래서 상담사는
기술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자는 정해진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의 속도를 읽고, 지금 이 관계가 견딜 수 있는 강도를 가늠하며, 손의 힘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같은 질문 하나도 어떤 내담자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되고, 어떤 내담자에게는 관계를 닫게 만드는 자극이 될 수 있다. 결국 그 차이는 공부한 이론의 양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며 몸으로 익힌 감각에서 나온다.
상담기술이라고 나오는 책들의 제목이 시간 갈수록 수긍이 된다. 하지만 이 기술이 쉽지 않다. 내담자 앞에 앉아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일은 상담자에게도 큰 부담이다.
그래서 상담자는 다시 이론서를 읽고, 훈련과정을 통해 다시 공부한다. 이론은 구조를 제공하고, 안정감을 주고, 무엇보다 덜 불안하게 돕는다. 이론에 목마르고 다시 찾는 시기 역시 상담자 성장의 과정일 것이다.
즉, 이론의 적용이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내담자에게는 정리된 언어와 명확한 틀이 오히려 안전한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관계 맺기에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 이론적 접근이 잘 맞는 만남도 분명 존재한다. 또 이론을 공부하고 익히는 과정이 상담사로서 나의 언어를 배워가는,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다만, 그 태도나 그 자리에 오래 머물면 사람냄새랄까, 체온이 조금 덜 느껴질 수 있다. 말은 맞지만 마음은 닿지 않는 순간이 늘어나고, 그건 내담자가 상담실 밖에서 마주했던 순간들과 유사할 수 있다.
그래서 상담자는 다시 사람을 봐야 한다.
서툴고, 불안하고,
정답이 없는 자리로.
호기심과 진정성을 갖은 태도로
이 지점에서 심리상담을 ‘통합예술’이라고 부르는 말이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된다.
심리치료의 실제는 일종의 예술이며 의학적 치료보다 음악적 표현에 훨씬 더 가깝다.
음악 역시 과학과 이론에 근거하고 있지만, 연주로 나타나는 음악은 감상자의 정신 • 육체 • 감정 • 행위에 특별한 체험으로 전달한다. 음악은 감상자의 음악적 선호와 상관없이 독특한 방식으로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따라서 어떤 치료적 접근이 더 우월한가 하는 물음은 고전 음악, 재즈 음악, 록 음악, 민요, 컨트리 음악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영혼을 살찌우는가 하는 물음처럼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p.49 -
같은 이론, 같은 기법이라도 어떻게 ‘연주’되느냐에 따라 내담자가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달라진다. 그래서 어떤 이론적 접근이 더 우월한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잘못된 질문일지도 모른다. 위에 인용한 글처럼 다양한 음악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영혼을 살찌우는지를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상담사들도 자기를 알리고, 학업과 자격사항 추구하는 이론을 미리 고지하기는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라 지금 이 사람, 지금 이 만남이 내담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울리는가 아닐까?
그래서 상담사는
이론을 아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연주하는 사람이다.
악보를 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 앞에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짜 소리를 내는 사람.
아마 상담사의 길은 이론과 기술,
구조와 예술 사이를 오래 오가는 여정일 것이다.
메말랐다가
다시 적셔지고,
단단해졌다가
다시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시기에 맞는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것도 맞고,
저것도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