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다, 아임 쏘 럭키

여러 가지 감정으로 글쓰기

by 김바리



나는 운이 좋다 (I am lucky)

나는 두 명의 언니가 있다. 위로 다섯 살, 세 살 차이가 난다. 두 사람은 성격이 다르다. ‘이쁜공주님’이라는 카카오톡 닉네임에 걸맞게 첫째 언니는 공주처럼 아름답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다. 회색빛 먼지가 앞을 가리는 것만 같은 날들에도 그녀의 상냥하고 다정한 위로의 말을 들으면 갑자기 세상이 온통 벚꽃 빛으로 가득 찬 것만 같다. 그녀의 아름다운 단어들로 어깨 위를 짓누르는 듯한 부담감의 무게는 흰색 솜털만큼 포근하고 가벼워진다. 한편 나는 ’ 순장님(둘째 언니)과 운전석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이동하며 나누는 대화의 시간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녀는 나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 ‘차분함’과 ‘이성‘이 얼마나 중요한 미덕인지를 알게 해 준다. 물음표와 점 세 개로 끝나던 문장들은 차 안의 공기를 채우며 마침표와 느낌표를 나눠 갖는다. 잠깐의 환기로 물음표와 점 세 개는 창밖으로 휘휘 날아간다. 뜨겁고 쓰디쓴 한약과도 같았던 대화의 질감은 어느새 부드럽고 담백한 라테가 되어 두 사람의 머리 주변을 맴돈다. 나는 이토록 내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두 사람을 만나 운이 좋다.





나는 질투한다 (I am jealous)

A는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여러 아이들 무리 속에서 하하 호호 웃고 있는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만의 은밀한 비밀들을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하루는 학교가 끝나고 A의 반으로 갔을 때 이미 그녀가 학교 밖으로 나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나에게 한 마디도 없이 그냥 간 걸까?’. 섭섭했다. 집으로 바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곳에 가면 그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내로 향했다. 시골 아이들이 갈 만한 곳은 정해져 있었다. 문구점 유리 통창 너머로 예의 무리 아이들과 웃으며 학용품을 둘러보고 있는 친구를 보았다. 그날, 밖은 유난히 어두컴컴했고 가게 안의 형광등은 유난히 눈부셨다. 얼마 후 A는 다음 달에 자주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도시로 전학을 갔다. 열이 올랐던 나의 감정도 그녀가 떠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미지근해졌다. 그리곤 이윽고 나 역시 그곳을 떠났다. 멀리멀리 하지만 누군가는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도시로 내가 알지만 모르는 그 감정을 알기 위해 어른이 되기 위한 여정의 발걸음을 한 발 더 뗀 것이다.





그는 다정하다 (He is affectionate)

다정한 사람들의 옷차림을 상상해 보면 대체로 난색 계열의 무채색 니트와 카디건, 단화와 에코백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외모로 성격을 추측한다는 것은 굉장히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한 통계적 유의미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다정한’ 사람들은 대체로 한 공간 안에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치 “나는 다정한 사람이에요.”라고 몸으로 말하듯 옷차림뿐만 아니라 작은 손짓 혹은 표정 하나도 조심스럽고 부드럽기까지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낯선 모임에 처음 나가게 될 때 니트나 청바지, 운동화, 에코백을 지닌 사람 옆에 앉고만 싶은 것은 ‘안 그래도 차가운 세상, 따뜻하게 좀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몸으로 말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첫인사일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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