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픔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나위쓰 2기] 감정을 중심으로 회고하는 에세이 글쓰기 1주차

by 김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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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유독 나를 돌보는 데 애쓰고 싶었다. 목요일 저녁 세 시간. 절대적으로 무용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만 했지, 구체적으로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보낼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렇게 적당히, 많이 보고 듣고 해 오던 것들을 꺼내어 휴식을 시도했지만 기분이 좋았다기보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나빴다.


일을 마치고 예정보다 조금 일찍 귀가를 했다. 치킨에 맥주를 세팅하고 새로 업데이트된 일본 드라마 3화를 틀었다. 나를 위한 휴식.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맥주 한 캔, 또 한 캔, 치킨 한 조각, 한 조각 더, 11시, 12시, 새벽 1시. 언제 끝난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다음날 8시에 눈을 떴다.


내가 후회하던 내 과거의 모습이 있다. 헛헛함, 공허함과 같은 감정을 오래 가지는 게 싫어서 잠에 들 때까지 그것을 잊어보려 했던 행동이 있다. 이번에 내가 시도한 의도적 쉼은, 그것의 그림자를 닮은 시간이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대처를 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결국은 습관의 굴레이다. 분명, 건강하게 잘해나가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과거의 나를 마주했다. 어째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결혼을 앞둔 지인과의 저녁, 인터뷰, 과제, 모임 준비, 촬영, 편집, 커뮤니티 오리엔테이션, 조카와의 데이트. 집중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바쁜 스케줄들이 유난히 많았다. 분명 내가 선택한 일들이었다. 근데 왜 즐겁지가 않지, 고통스럽지는 않은데, 행복하지 않았다.


마음이 혼란한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면접을 봤고, 사람을 만났다. 나에게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그래도 견딜 만할 거야'라고 위로했다. 연휴가 끝나갈 무렵, 예기치 못한 일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슬픈 소식은 혼란이 불안으로 바뀌기도 전에 이상한 감정과 묘하게 섞여버린 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뭐지?’라고 계속 눈을 굴리게 만들었다.


늦잠을 잤던 날, 컨디션이 안 좋아 오전에 한두 시간 책상에 앉아 딴짓을 했다. 컬러링 루틴으로 하루를 회고하고, ‘좋아요'를 눌러뒀던 음악을 몰아 들으며 자발적 동기에 대해 쓴 대니얼 핑크의 책을 읽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서 약간의 죄책감을 안고 보낸 이 시간은 지난밤 각오하고 보냈던 이상한 휴식보다 훨씬, 행복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 감정을 돌보는 데 여전히 서툴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나를 돌보기 보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상황들을 해석하고 해결하려 바쁘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회피하거나 합리화하고 얼른 감정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지난밤, 잔뜩 취해 잠이 들었던 그 밤은 괴로움을 잊고 싶었던 나의 방어 기제가 다시 떠오른 것일지도 모른다(라며, 또 상황을 해석하는 나를 발견하는 중이다).


판단 없는 사실은 이것이다. 나는 존재의 상실을 경험했고, 그래서 슬펐고, 얼렁뚱땅 계획한 휴식이 실패해서 좌절감을 느꼈고, 기대했던 소식이 오지 않아 걱정을 했고 이런 여러 모습을 가진 나에게 실망을 했다는 것. 내 슬픔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모든 걸 해결하려 하지 마.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고, 그것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나의 노력이 결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무언가 분명,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마음이 건강할 때야 아침에 운동하고 글을 쓰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항상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지금 이 시기에 감정을 회고하는 글쓰기를 시작한 게 의미가 깊다.


억지로 벗어나려 노력하지 말고 충분히 느껴야 할 감정을 느껴주고 나를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 감정이 말하려 하는 게 뭔지 살펴 봐주는 시간. 치맥과 드라마의 시간이 아니라, 이런 시간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필요했던 게 아닐까. 이것이 생산성의 무대에서는 무용한 시간이자, 나를 돌보며 살아가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절대적으로 무용한 시간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상대적이고 무용한 시간’을 보탤 테다. 오늘부터 나에게 무용한 시간이란, 연민을 가지고 내 감정과 기꺼이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정말로, 진짜 휴식을 할 테다. 남이 말하는 휴식이 아니라, 내 마음이 쉬는 휴식 말이다!



☻ 무용한 휴식을 위한 준비물

이른 아침 두 시간, 책과 고양이, 커피, 음악, 그리고 할 일이 많은 상태에서 느끼는 적당한 죄책감과 생각을 적을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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