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S
체중 감량 중인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다이어트 기간동안 철저하게 음식의 종류와 양을 제한하는 가운데 일주일에 하루 정도를 정해 스스로에게 포상을 주듯이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맘껏 먹는 것이다. 이 하루를 가리켜 '치팅데이/cheat day'라고 얘기한다.
누구나 한 번즈음은 체중감량을 목표로 한 다이어트를 해본적이 있을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때 첫 다이어트를 시작했으니… 늘 불만이었던 통통한 다리가 날씬해지기를 바라며 시작한 다이어트는 아침저녁으로 식사대용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는 것이었다. 딸기, 초코, 바닐라 세가지 맛으로 다양하게 준비해서 열심히 타마셨지만 배고픔을 잊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녁시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길.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지하철 계단을 올라와서 맡았던 중국집 냄새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난다. 그 처량한 기분이란. 지금 생각해보면 신진대사도 빠르고 활동양도 많던 어린 시절에 뭐하러 그런 짓을 했나 생각도 들지만 한국에서는 날씬함이 나이를 불문한 모든 여자들의 소망이다 보니 나름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 시절에 ‘치팅데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먹는 것을 참으며 보내고 있던 나는 내 나름대로 치팅밀cheating meal? 치팅런치cheating lunch?를 하며 점심 폭식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때 생긴 빠르게 먹기, 많이 먹기, 대충 씹고 삼키기 등의 해로운 식습관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몸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이 있다거나 음식의 영양성분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사실 고등학생이 그런 생각까지 한다는게 더 이상할수도.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무조건 덜 먹는 작전 뿐! 그저 몇 끼니 더 굶으면 살이 빠지는 줄 알았다. 세월이 지나고, 다이어트와 건강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다이어터들 사이에서는 무엇이 좋다! 나쁘다! 라는 주제의 이야기가 끝없이 나온다. ‘지방이 나쁘다. 탄수화물이 최악이다. 밀가루를 끊어라. 하얀것은 먹으면 안된다.!’ 유튜브나 티비같은 미디어에서도 특정 식품을 가리키며 ‘이건 절대 드시면 안됩니다! 이것이 집에 있으면 당장 갖다 버리세요!’ 등의 자극적인 문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이런식으로 특정 음식을 죄악시하거나 독인 것 마냥 묘사하는 것은 언제나 내 마음을 참 불편하게 한다.
나는 그런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본인은 완벽하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평생동안 가족 생일에 케이크 한조각도 안 먹을건가요?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혼자 유난떨며 ‘건강식’을 찾아다닐 건가요? 그리고 본인 기준에서 벗어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실 건가요?
나는 치팅데이가 효과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cheat (cheating) 이라는 단어는 ‘속이다, 사기치다, 부정행위를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이다. 치팅데이를 한다는 것. 보통의 날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고통스럽게 참는 날이고, 내가 먹고싶은 것을 먹는 ‘그날!' 마저도 나쁜짓을 하는 날이 되어버린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도너츠보다 사과가 건강한 음식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간단한 아침이나 간식을 먹고 싶을 때마다 도너츠 대신 사과를 선택 하기란 쉽지않다. 비교적 건강한 입맛을 가진 나 역시도 도너츠 쪽으로 마음이 기울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과 역시 억지로 먹는 음식은 전혀 아니다. 사과의 아삭한 식감과 자연스러운 달콤함은 질리지 않는다. 직접만든 아몬드 버터에 찍어먹는 아침 사과 한조각은 “어우! 너무 맛있어!” 를 연발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과가 몸에 들어와서 부담없이 소화되는 기분, 아몬드 버터와 함께 더부룩함 없이 긴시간 에너지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우리의 뇌와 몸이 학습하게 된다. 섬유질 덕분에 배변활동도 좋아져서 노폐물이 잘 배설되니 몸도 덜 붓고 피부마저 좋아지는 느낌이다. 몸이 편안하니 그 기분을 다시 느끼기 위해 반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도너츠처럼 달달한 빵을 빈번하게 선택할 경우, 먹는 순간은 달콤함과 살살녹는 느낌에 입이 즐겁다. 그렇지만 과도한 설탕과 밀가루의 섭취가 자주 반복될 경우 호르몬 동요로 인한 무기력, 변비, 그로인한 부기와 체중증가 그리고 피부 트러블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경험 역시 내몸에 저장된다. 자주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나는 도너츠를 안먹느냐? 절대 아니다. 꽤나 좋아한다. 보송하고 쫄깃한 빵 안에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이 가득 들어있는 도너츠는 종종 생각나는 맛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비슷한 종류의 도너츠를 발견하면 꼭 먹어보고 싶은 생각에 입안가득 침이 고인다. 요즘에도 가끔은 분위기 좋은 도너츠 가게나 빵집을 방문해서 여유있게 커피와 함께 간단한 아침을 먹는것을 좋아한다.
단! 건강한 생활 습관을 배워가며 실천하고 있는 부분은, 적당히! 의식하며! 먹는 것이다. 욕심내지 않는다.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처럼 먹지 않는다. 그 순간을, 음식외에 다른것들 까지, 음미하면서 절제 하에 즐긴다. 예전 같으면 무조건 종류별로 충분히 사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저것 다 먹어봐야지’ 했겠지만 그래봤자 남는건 더부룩함 밖에 없더라…
의식하면서! 적당히 즐기며 섭취하는 음식은 뭐든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망했어! 내가 이렇지 뭐..이런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다니’ 등의 부정적인 문장을 스스로에게 사용하고 싶지 않다. 내 입에 넣는 음식은 나의 즐거움을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외출해서 신상 도너츠를 하나씩 시켜 나눠 먹는 시간은 도너츠를 먹는다는 그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
10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맥도날드에 갔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거기까지 가서 버거와 감자튀김은 사주지 않고 참으라고 얘기한다. 원래 그런 음식을 즐기지 않는 아이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온갖 짜증이 날 것이다. 무조건 그것을 먹고 나와야 만족스러울 것이다. 나는 치팅데이가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의지력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든다. 예를들면 주중에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사실은 꼭 그렇지 않더라도말이다.)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는다. 토요일은 치팅데이이기 때문에 자극적인 배달음식 두어개를 머릿속에 계획해 놓는다. 가령 토요일이 되어서 배달음식이 당기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뇌는 주중에 음식을 참기 위한 의지력을 발휘하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버린 나머지 ‘고생’에 대한 보상을 원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화끈하게! 끝장을 보면서 말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나의 빨리 먹고 폭식 하는 습관은 음식을 제한 했을 때 더 나빠졌다. 음식이 허락되는 짧은순간에는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12시간이 지나도 소화가 다 되지 않았고 많은 음식물 때문에 위가 당겨서 불편하고 무기력 했던 적도 많았다. 소화기관에 큰 무리를 주고 호르몬 조절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해로운 습관이다.
매일 소량의 초콜릿을 의식하며 적당히 즐기는 것과, 참고 또 참았다가 고삐가 풀린 채로 몇조각의 케이크를 한 순간에 먹어 치우는 것은 다르다. 몸에 가해지는 부담의 크기가 확연하게 차이난다.
나이가 이삼십대인 분들은 아직 본인의 몸을 예민하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둘째를 낳고 예민해진 몸으로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로 넘어가는 시간을 경험했다. 그 약해진 몸에 단 하루의 무절제를 가했을때 부작용은 엄청났다. 좋지 않은 음식과 과식으로 장내환경이 방해를 받아 며칠간의 변비로 이어졌다. 고로 엄청 부었다. 과식으로 인한 체온 상승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다음날도 피곤했고 수면 스케쥴까지 깨져버렸다. 컨디션을 평소처럼 되돌리는 것 만해도 2-3일은 족히 걸렸다. 치팅데이 라는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일까?
*나의 경우 체중감량 중의 치팅데이는 아니다. 친구들과의 저녁모임등 가끔 일어나는 스페셜 이벤트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려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완전히 정신을 놓은 채 먹는 것도 치팅데이와 다르지 않다.
‘적당히 먹어라!’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차고도 넘치는데 어떻게 적당히가 되는지 궁금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습관은 ‘적당히’를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이다. 그것이 건강과 행복 두가지를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매일의 좋은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 하루하루 의도적인 음식섭취를 연습하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언제 얼마나 먹었을 때 내 기분과 에너지가 좋게 유지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적절하게 재미를 찾아가는 방법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터득하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꾸준한 연습을 하다보면 ‘건강한 음식은 맛이없다’든지 ‘맛있는 음식은 다 몸에 안좋다’ 등의 음식에 대한 선입견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먹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버릇도 줄어들게 된다. 적당히 절제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 먹을 음식은 없다.
내가 체중감량을 위한 극단적인 다이어트 식단을 하지 않은지는 정말 오래되었다. 우리의 몸은 칼로리를 줄인다고 살이 빠지지 않는다. 운동량을 늘린다고 해서 체중이 계속적으로 쭉쭉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수퍼푸드만 먹는다고 해서 몸이 건강해지지도 않는다.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개인의 체질과 히스토리에 따라 음식을 처리하는 능력이나 호르몬 분비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본인의 몸이 어떻게 작동 하는지 더 잘 알고 싶다면, 그리고 더 효율적이게 만들고 싶다면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내몸이 즐거워하는 쪽으로 식습관을 바꿔 나가면 된다.
이런 중요한 과정을 교란시키는 치팅데이를 나는 믿지 않는다. 건강한 식습관과 체중유지를 위한 장기적 모범답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오늘 하루 내 몸의 행복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연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