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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Sep 23. 2023

읽어주는 엄마에서 읽고 쓰는 사람으로

묻고 답하며 익어가는 시간

그럴 때가 있다.

삶의 어느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 물밀듯이 밀려오는 파도가.

사전 정보 없이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부모가 되었다.

갑자기 솟구치는 여러 역할들에 맞추어 부단히도 살았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사회인으로

가정의 아내이자 며느리로

내 안에 나도 몰랐던 모성애를 뿜어내며 아이들을 키웠다.




착한 사람, 예스걸이라는 수식어가 꼭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살던 어느 날

노트북을 열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흔이 넘어가는데 나도 내 말이 하고 싶어.'

남한테 맞추는 거 말고, 뒤돌아 서서 그때 그 말을 했어야지 후회하는 거 말고 아싸 가오리를 외칠 수 있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




아이들을 무슨 천재 만들 요량으로 책을 읽어줬는데 그러면서 주로 본 책은 독서 육아에 관련된 책들이었다.

정작 나는 없이 같은 종류의 책들만 읽었다.

다시 호흡하고 싶어졌다.

한쪽 뇌만 쓰다 보니 다른 곳은 석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흔을 두 번째 스무 살이라고 했던가.

딱히 '마흔'이란 나이를 의식했던 것도 아니고 시킨 것도 아니지만

마치 예정되어 있는 이번주 티브이 편성표처럼 왈칵 찾아온 시간.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만난 사람들.

오랫동안 독서 모임을 염원했었다, 글을 쓴다는 같은 이유로 만난 그녀들과의 책 읽기는 단순한 북클럽이 아니었다.




모든 엄마들에게는 환영받는 시간이 필요하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사유하는 순간이 간절하다.

우리 모임의 이름은 '사브작 북클럽'이다. 

사유하는 브런치 작가들의 모임.

누구의 엄마이지 아내 직장인이 아닌 오로지 글을 통해 교감하고 책을 통해 깊어지는 사이이다.

사유하는 엄마가 가능한가요라고 묻는다고 무조건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한 인간이 감히 사람을 길러내는 인문학적인 고찰을 하고 있으며, 자아의 탐구에 그 누구보다 치열하다. 

삶에서 온몸과 마음으로 극적인 변화를 겪어내는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독서 모임이란 건 단순히 책을 읽고 난 느낌만을 전하는 자리가 아니다.

누구나 책 속에 자신을 투영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이 시간은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글쓰기와 책 읽기라는 공통분모 외에 그 어떤 동일점도 없는 사람들이 함께 약속한 시간에 만난다.

서울에서 제주도만큼의 거리 속에 다들 살고 있지만 절대 이 일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시간은 어느새 삶에서 가장 커다란 이벤트가 되고 있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마음을 이해하고 사연을 알고 응원하는 사이.

함께 읽은 책으로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는 사이.

마치 고등학생 때처럼 까르르 거리며 이야기를 나눌 때면 순수한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지구는 둥글지만 우리의 세상은 네모나다.

모든 네모난 것들 중에 책만큼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같은 책을 읽지만 다양한 생각을 공유한다.

발제문을 준비하며 이미 인문학적 질문을 준비한다.

나라면 읽지 않았을 책들도 읽게 되고 알게 된다.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이런 이유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독서 모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치유제다.




어떻게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생업으로 바쁜 엄마들이 한 달에 두 번 금요일 밤에 만날 수 있을까.

이 시간만큼은 그리고 이 인연들로 인하여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도 생생하게.

살려고 책을 읽고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면 너무 비장하고 교조적인 말일까.




강압적이지 않은 분위기도 한몫한다고 보겠다.

20대 싱그러운 그녀들처럼 우리 우정 포에버를 외치며 강력한 결속과 무조건 다 함께 해야 한다는 감정이 아니다. 좀 더 너그러워진 40대의 우리들은 어떤 경우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바다가 있다.  언제들 편하게 돌아와도 되는 베이스캠프처럼 늘 서로를 향해 펼쳐져 있다. 

두꺼운 벽돌책도 함께 읽는 힘으로 헤쳐나간다.

가끔은 말랑말랑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청소년 소설도 읽는다.

역사의 한가운데서 삶을 논하거나 인생의 지침서가 될만한 책도 읽는다.

그리고 각자의 배경에서 선택한 책은 누군가에겐 돌아보지 않은 곳을 볼 줄 아는 시선도 획득하게 한다.



"여자들은 살기 위해 책을 읽으며, 삶을 견디기 위해, 즉 살아남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슈테판 볼만의 <여자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드물지 않은 게 아니라 그게 전부인 거다. 

소싯적 꿈이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나온 결정이건 간에 누구나 독서를 통한 연대를 꿈꾼다고 감히 말해본다.

인생의 2막에서 나 역시 그녀들과의 책모임을 통해 다시 살아내고 있으므로.

함께 글을 쓰며 책을 읽고 사유하는 삶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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