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쪼개고 쪼개보면 희한하게도 새로운 시간이 생긴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하루, 유튜브나 티브이로 뒹굴거리다 보면 몇 시간은 훌쩍이다.
또 어떤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외출을 한다.
다녀와도 아직 늦은 오후인걸 보면 일요일 하루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이젠 불금이라는 말도 영 새로운 단어는 아니다.
목요일부터 주말권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도 목요 개봉이 많다.
실제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다는 말도 들려온다.
이것이 소위 워라밸의 실현인지 인공지능으로 인간을 대체하려는 어느 누군가의 빅픽처인지 알 수 없지만
중학생인 아들조차 주말 이틀은 너무 짧다고 부르짖고 있으니 불금이란 말이 더 무색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금요일이 주는 설렘이나 기대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주의 업무가 마무리되는 시점, 2주에 한 번 북클럽에 참여해 의견을 나누고 일상을 나눈다.
그런 날은 밀린 책을 읽느라 금요일 저녁을 다 쓰기도 하지만 밤 9시 30분에 만나 12시까지 계속되는 모임은 꽤나 지적이고 신기하고 재미도 있다. 온라인이 주는 혜택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
좀 더 심적으로 풍족한 주말을 맞게 된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에 답을 하고, 좀체 떠오르지 않는 대답엔 다른 멤버들의 의견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역시나 읽고 질문하는 삶에 감사하며 조금이라도 '뇌'를 깨우쳐보자 노력한다.
독서 모임이 없는 금요일은 무비 데이다.
아이들도 금요일 밤이면 긴장이 풀리는지 좀 더 여유 있어진다.
아이들과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꽤나 행복하다.
이제 범죄도시 시리즈를 봐도 되지 않냐는 큰 아이의 말에 똥개 같은 말이라며 스무 살에 보렴이라고 베리 카인드 하게 말해준다. 아직 우리가 봐야 할 몽글몽글한 영화가 많단다 아가야.
일본 애니메이션도 서정적인 영화도 취향인 아닌 아이들 덕분에 트랜스포머나 SF물을 꽤나 봤는데, 이번달엔 <혹성탈출> 시리즈를 내리 봤다.
인간에 대한 경고, 과학의 위험한 단면, 리더의 모습까지 할 이야기도 내용도 풍부했던 시리즈. 코로나 이후에 보니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봤을 때보다 더 뜨끔하게 다가왔다.
책과 영화가 있는 금요일, 그동안의 이런 금요일이 좋다.
사실 내가 바라는 금요일은 하나 더 있다.
밤 10시까지 열리는 마을의 도서관에서 퇴근 후 책에 푹 파묻히는 것이다.
어둠과 빛이 조화를 이룬 그 시간 치맥도 아닌 북캉스를 즐기고 싶다.
많지 않은 사람들, 아직 바래지 않은 많은 책.
조용한 공간과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그곳에서의 금요일 밤을 꿈꾼다.
약속을 많이 만들고 싶지 않다.
요즘의 우리에겐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깊이 생각에 빠질 시간이 요구된다.
녹은 치즈에 빵을 푹 찍어먹는 퐁듀처럼 충분히 사색에 젖을 시간이 되는 금요일이 될 수 있다.
한 주간을 돌아보고 고민의 답을 찾아볼 시간이 절실하다.
까짓것 가면 되지 뭐가 대수냐고 하겠지만 알다시피 자잘한 많은 일들이 대기하고 있다.
한 허리 뚝 떼어내어 과감히 그 시간을 나에게 선물해 보자.
막상 시작하면 될 일일지도.
다음 금요일은 밤의 도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