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소녀시대.

by 마음돌봄

"옷을 또 보낸다고? 아니야, 서울 갈 일 있으니까 언니가 갈게."

"그래, 언니. 내가 안 입는 옷 다 정리했어. 아기가 생기니까 물욕이 다 없어지네. 웃기지?

아기 물건만 사고 싶고."






전화를 받았을 때 난 <작은 아씨들>을 읽고 있었다. 원고에 싣기 위한 책으로 내게 떠오른 책 중 하나였다.

여러 번역본을 살펴보고, 문장의 맛을 한참 음미하는 중이었다. 원서를 기반으로 읽고 있었지만 영어는 여전히 나에게 꼬부랑 말이었다. 원어가 주는 말맛만큼이나 번역본을 읽는 재미도 상당했다. 특히 <작은 아씨들>은 다양한 번역과 예쁜 표지가 유명하니까. 어쩌면 영화에서 만났던 '작은 아씨들'과 '로리'가 나의 선택에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동생과 난 단 둘 뿐인 자매 지간이다.

메기, 조, 베스, 에이미처럼 네 자매는 아니다. 가끔은 자매나 형제가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때뿐, 일곱 살 어린 동생과의 삶도 꽤나 박진감 있는 삶이었다. 기저귀를 갈아줬는지까지는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동생과 다툴 때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업고 다녔는데 언니한테 대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다. 동생과의 첫 만남은 병원에서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 아빠는 온데간데없고 큰고모가 상하방 문을 열고 '엄마 병원에 있어. 새벽에 여동생이 태어났거든. 이따 고모랑 보러 가자.' 말한 게 첫 기억이다. 꼬물꼬물 한 작은 녀석은 기억이 안 나고 내 손을 잡고 엄마 가게까지 20분을 걸어가던 4살짜리 귀여운 꼬마 녀석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인형같이 생긴 게 잘도 걸어가는 게 깜찍하기도 하고 뭔가 아쉬워서 다리 아프다고 말도 없는 동생을 일부러 안아서 가곤 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동생은 막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내가 처음 동생을 만난 나이. 나름 사춘기를 진하게 겪던 터라 동생이 치대는 게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따라다니고 놀아달라고 칭얼대고. 나에 대한 고민과 이성에 대한 고뇌로 찬란한 사춘기의 언니에게 겁도 없이 다가오는 동생이라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른척해도 붙어 있는 그 아이가 벌써 아기 엄마가 된다. 마치 막내 에이미가 로리와 결혼을 결정하고 매사추세츠 마치가로 돌아오던 그런 기분이랄까. 높은 콧대를 만드는 게 습관이던 에이미는 어느덧 그림 솜씨가 일취월장한 어엿한 화가이자 숙녀가 되었다. 동생도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을 달았을 때 더 이상 어린 꼬마가 아니었다. 스케이트를 타겠다며 기어이 조와 로리를 쫓아 나오던 막무가내 에이미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에이미는 그림을 그렸지만 동생은 글을 썼다. 사실 작가는 나의 소싯적 꿈이었다. 조처럼 옷에 펜이 묻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촛불 아래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삶. 영감이 떠오르면 뒤도 안 돌아보고 작품을 써 내려가며 신문이나 잡지에 내 글을 팔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른이 된 후 동생은 글을 쓰고 난 잠시 그 세계를 잊고 살고 있었다. 여전히 책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 내가 글을 쓸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밤낮이 바뀌어서 늘 글을 쓰던 동생은 웹소설 작가가 되었고, 난 책과 영어를 좋아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웹소설 작가 초장기에 작품을 연재하던 동생은 오로지 글에만 빠져 살았고, 난 연애와 결혼 육아에 점철되었다. 가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육아를 하는 자매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고, 일찍 결혼해 동생과 헤어져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련하기도 했는데 싸우기라도 하는 날엔 두 번 다시 안 볼 원수처럼 다투기도 했다. 이제 난 아이들을 많이 키워 다시 내 꿈을 찾아가고 있다. 동생은 엄마의 삶을 시작할 것이다. 우린 서로 인생의 시간이 엇갈리고 달랐던 게 아니라 꼭 들어맞는 열쇠처럼 잘 맞물리고 있다. 서로 네 옷 내 옷 따져가며 다투던 우리는 이젠 가진 거 하나라도 내어주고 싶은 애틋한 자매이고, 동생은 이제 작가로서의 내 꿈을 응원하는 조력자가 되었다.






"언니가 쓰고 싶은 글부터 시작해 봐. 그게 무엇이든 일단 쓰면 돼."


동생도 다시 글을 쓸 것이다. 지금의 삶에 충실하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이 결코 방해가 되지 않음을 이젠 안다. 우린 매일의 일상을 꾸준히 살아갈 것이고, 글을 쓰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아씨들> '조'의 말처럼 이런 경험과 인생의 장면들이 많아질수록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한다. 택배로도 보낼 수 있는 옷이지만 동생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기껏 이 운전대를 잡았다. 어린 꼬마가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동생과 함께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는 날도 꿈꿔본다. 또 다른 꼬마 녀석은 내 아이들에게 맡겨도 좋겠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조'와 '에이미'처럼 우린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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