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 몸을 다쳐 부상을 입은 자리 / 정신적, 심리적으로 아픔을 받은 자취
어렸을 땐 무릎을 많이 다쳤다.
갈라진 틈 사이로 흐르는 피.
하루만 지나도 굳는 딱지.
다시 딱지를 떼면 맺히는 피. 연고와 밴드.
상처라는 말을 가만히 바라보니 아프다.
말에 힘이 있듯이 단어에도 힘이 있다. 단어가 여러 개 모여 결국 의미 있는 구와 절을 만들어낸다.
말과 글을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상처'라는 단어는 바라보기만 해도 칼에 베이는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이 아픔을 느끼는 상처.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겪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단 한 번도 양쪽의 경험이 없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상처라는 말에 많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나름 질풍노도의 시기인 10대와 20대에 친구 관계, 남녀 관계 혹은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로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민이 많았던가. 그런 내가 지금은 이렇게 무덤덤해진 걸까.
첫 번째 이유는 일종의 자기 방어 내지는 연륜이다.
좋게 말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진 탓이고, 다르게 보면 그저 무뎌진 것일 수도 있다.
이 정도 말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생각하며 통 크게 지낸 덕분이다.
'노화가 온다'라는 말이 너무 수동적이라며 '내가 노화에게로 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남이 주는 '상처'를 내가 '받지 않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다소 편하다.
일종의 정신 승리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 멘털을 가져야 이 세상을 살아가기 편한 듯싶다.
분명 상처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상대방의 공격적이거나 무감한 말에 말 못 하고 끙끙 끌어안으며 고민하는 나이는 지났다. 나이 듦이 참 달가운 순간이다. 더불어 한 가지 행동하는 점은 무조건 말을 참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와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은 예의 바르게 하고 살자 생각하니 가슴속의 응어리가 마시멜로가 화로에 녹듯이 많이 녹아졌다. 점점 말랑말랑 해지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 나이쯤 되면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혹은 가만히 교묘하게 돌려 까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성숙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남의 일에 그렇게 말할 만큼 한가한 사람도 별로 없다. 결혼을 한 사람이건 미혼인 사람이건 각자의 인생과 무게로 꽤나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어제 일도 생각나지 않아 다이어리와 워크 노트, 감정 일기 등등 각종 '쓰기 아이템'을 구비하여 자신을 돌보고 있다. 자꾸 나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말로 이 나이쯤 되니 배려 없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날것의 비난이나 뒷말을 하는 때도 다 어릴 때나 가능하다. 남을 험담하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기엔 인생이 길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인생, 일, 꿈 등등 더 중요한 일이 많은 게 참 다행이다.
세 번째, 더 이상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에너지는 굉장히 잘 분배해서 써야 하는 나이다.
운동을 하는 것도 뭐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오늘 하루 피곤하지 않게,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짜증 내지 않을 만큼, 내 일을 해낼 만큼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끝까지 주전으로 뛰어야 하는 인생이랑 경기에서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긍정 에너지만 끌어다 쓰기에도 쉽지 않은 삶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가련하고 긍휼히 여기리라.
내가 그만큼 썩 괜찮은 사람이라 질투하는 것이라 생각하리라.
더불어 타인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되지 않으리라.
요즘처럼 전쟁이 창궐한 세상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슴 아픈 일이다. 양파를 자르다 살짝만 손을 베어도 소스라칠 듯 아프니까.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봤을 테니 늘 생각하면 되겠다. 칼에 베였을 때 느낌을.
사실 상처를 받은 말들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돈다.
쉬이 잊히지 않는다.
나처럼 무딘 사람도 그렇다.
하물며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더 그렇겠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나라로 날아가봐야겠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치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