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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엄마달팽이 Jan 29. 2021

두 달 사이 키보드 자판을 두 개나 긁어내 버렸다.

40살 생일 선물 키보드. 키보드로 깍두기 써는 중

40세 생일을 특별하게 여기는 영국.

40세 생일을 맞았다. 타국에서 동갑 친구가 4명이나 되는 행운이 있음에도 나는 그 행운, 자랑도 못했다. 다 같이 크루즈 여행이라고 가려고 했건만. 먹고 자고 읽고 자고를 하련다, Book Hotel로 쓰련다, 한 해 전부터 노래를 불렀었건만. 코로나 크루즈, 방콕으로 40세 여행을 마쳤다.


나의 친구(남편), 특별한 생일이라고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어 했다. 내게 특별한 선물은, 새로운 혹은 자주 할 여건이 안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오랜 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난다거나, 작은 책방을 찾아내 죽치고 앉아 있어 본다거나, 어릴 때나 하던 놀이를 다시 해 본다거나. 지금의 나는, 새로운 숲을 걸어보거나 명상센터 숙박권, 혹은 책 호텔 숙박권 등이 특별한 선물로 떠올려지는 시점에 있다. 그런데 어느 하나, 가능해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발발, 코로나 수습의 해였다. 2020년.



코로나 시기가 오고, 적는 일이 더 많아졌다. 늘 적기는 적었다. 갈매기 날아가듯 갈겨쓴 아이디어들이 적힌 메모지들이 늘 어딘가에 쌓여있다. 그런데, 그런 적어 제낌과 달리 이 코로나 해에 갑자기 개인 상담도 늘고 트레이닝도 늘면서 기록할 일이 늘어났다. 새로 등록한 수련 코스도 기록을 당겼다. 배우던 일을 하던, 가르치는 일을 하던, 모두 기록, 기록, 기록의 연속이었다. 활동이 늘자 생각도 많아지고 아이디어도 늘어나 매일매일 적고 있었다. 발표할 일이 많아지고 적을 양이 많아지니 기계로 기록하는 일이 점점 늘어난 것이 조금 달라진 부분.


스마트폰에 손가락으로 급하게 많은 양을 적어대는 나를 보자니 답답했던 모양이다. 뭐 안쓰러움이려나?  아무튼. 아이패드를 사주겠단다. 아는 동생에게서 받은 1세대 아이패드가 느려진 운영체계의 속도로 어딘가에서 자고 있는지라, 똑같은 것(?)을 또 사는 느낌이 영 내키지 않았다.


또, 특별한 40세 생일에 받는 게 기계인 것이 나는 좀 그랬다. 특별한 몸뚱아리 감각 경험을 얻고 싶었지, 나와 늘 함께할 것이라는 이용가치를 내민다 해도 기계는 내키지 않았다. 뭔가 아쉬웠다. 적는 일이 많아졌고 비디오 영상 작업이 시작된 내게 큰 화면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맥북을 사자니 또 한 짐 늘어나는 게 부담스러웠고 아이패드라고 한들, 그 사이즈에 그 가격은 또 뭔가 너무했다 싶었다. 물건 선물은 보류하자 했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그때는 여름이었고 내 생일은 늦가을이었다.




코로나 록다운.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다. 어디든 숙박이 불가능했다. 아이와 오페라 공연이라도 갈까 했는데 기차도 비행기도 모두 불가능한 시점에 왔다. 가을까지 기다리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상황은 더 급박해졌다. 한국행 비행기도 탈 수가 없었다. 40세 생일로 한국으로 돌아가 파주에 있는 북호텔에서 2-3박 하고 싶었는데..


결국, 기계를 받아야 하는 건가. 그 외의 선물로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었다. 내년으로 선물은 미루겠다는 생일 당사자의 마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물 주인의 의사가 중요한 게 아닌 이 상황은 뭐지? 선물을 주는 이가 주인공인 날인 줄, 처음 알았다. 이 남자는 자신이 특별하게 느낄 선물을 내게 해주려는 모양이다. 특별하다는 40 생일이라서, 그의 마음을 알아주기로 한다. “이거, 내가 너 40 생일에 해 준거잖아. 잘 쓰니 좋다.” 이 말이 듣고 싶은 게지.... 그래.


내 40 생일 선물. 트랜스포머라도 만드나? 온 가족이 총출동한다. 아이패드. 애플 펜슬. 패드 키보드 등 온갖 스펙을 달아주러 달려들었다. 적는 일 총출동인가 보다. 손으로 적는 만년필 같은 펜도 곁다리로 끼워 주었다. 맘껏 적다 손가락 부러지라는 메시지인가. 그래, 그렇대도 맘에 들었다. 모든 선물이 적는 일을 돕는 것으로 통일되었다.

“나이 40, 적는 해”

뭐 그런 것쯤으로 해두자. 그런 특이한 메시지로 퉁 쳐질 이 모든 사단이 갑자기 조금, 맘에 들었다.




나는 선물을 받았고,  보란 듯이 적어 제쳤다. 멋진 작품 같은 것들이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냥 모두 과제물. (아! 그 사이 브런치도 승인이 났지??!! 브런치 작가 승인이 되니 마니 블로그들에서 말이 많아 궁금했다. 궁금해서 몇 개의 글을 보내본 건데. 승인이 났고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글을 적고 싶어 브런치를 생각한 게 아니었는데 승인이 나고 나니 뭐라도 적고 싶어 진 것이다. 무슨 새 공책을 받아서 뭐라고 끄적여 보고 싶은 그런 느낌)


내 동거남, 아이패드를 매일 끼고 사는 내 모습이 맘에 들었나 보다. 너무도 잘 사용할 물건을 선물해 준 것에 대해 스스로 뿌듯해하는 듯한 저 남자.

‘저 좋으려고 산 게 맞았어....’

나는, 저 망할 놈의 기계가 어이없게 비싼 만큼 열심히 사용해 내리라 맘먹은 것뿐이었는데. 나름 꽤나 내 기록을 편하게 해 주고 있는 건 인정함에도 그 가격이란 게 여전히 참 맘에 안 드는 것이다. 고작 적는 행위 몇 개 하려고 이 기계를 이 값에, 라는 생각이 늘 끊이지 않아 더 열심히 쓰는지도.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나의 말동무가 나의 키보드를 보고는 황당해한다. 교환을 받아야겠단다. 한 달 밖에 안됐는데 키보드 글자판이 지워진다는 건 애플 제품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불량이라며. 애플에 전화를 걸고는 새 키보드로 바꿔 받았다. 그리고 새 키보드를 받았는데.... 푸하하하하! 이게 똑같은 자리 ‘D’ 자판의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 딱 3주 만에 또!


나는 손가락으로 깍두기를 써는 걸까? 늘 다닥다닥 다다다닥 소리에 저 남자와 내 딸, 박장대소를 해대더니. 아니 그렇다고 자판 두 개나 갈아엎을 만큼 내가 세게 치는 건가? 많이 치는 건가? 나도 궁금하다. 글 쓰는 작가들, 공부하는 학생들, 다들, 나보다 더 많이 자판을 두들기지 않나? 나는 회사도 그만둬서 이메일 답장도 안 하고 회사 일로 뭔가를 답하고 적는 일도 줄었는데. 그저 코스 몇 개 과제나 하고 혼자 일기나 적는 건데, 뭔.


아무튼 그렇게 자판 두 개를 두 달 만에 갈아엎으며 이렇게 적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 Blue(딥 블루)는 내게 Writing Blue(희망)를 가져다준 거라 해야 하나? 늘어난 온라인 작업에 적는 실력도 늘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저 잡다한 생각만 더 늘어난 것은 아닌지 아쉽지만, 그래도, 적는다는 행위가 가져오는 심리학적 효과에 그저 감사한다. 적다 보면 뭔가 발견이 되던 정리가 되던 되겠지. 지금은 널어 넣고 펼쳐놓기만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끝없는 집 공사로 셀프 공사가 취미인 남편의 손가락 지문이 지워져 갔다. 휴대폰 지문 인식이 안된다며 내 손가락을 빌려간다. 그의 지문을 보자 자판 벗겨진 내 키보드가 생각났다. 이 녀석, 내가 너무 일을 많이 해댄 건가, 남편의 손처럼?

특별한 나이의 생일선물로는 어림도 없다던 이 아이패드와 키보드가 내 생애 받은 다른 선물 그 어느 것보다 더 오랜 사용 시간을(벌써) 기록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선물이 종래에는 귀하게 한 자리할 것 같다.


아이패드와 펜슬에 그가 새긴 글. “oogway”.  쿵푸판다에 나오는 마스터, 거북이 양반의 이름이다. 2020년 명상을 미치게 해 댄 내게 딱 맞게 준 별칭. 그러고 보니 아이패드 1세대에 새겨진 글도 역시 명상 같은 거였네. “Innerpeace”. 회사 후배가 먼길 떠나는 내게 사 준 선물에 새겨준 단어였다. 그때도 이너피스를 외쳐댔었구나. 그때도 엄청 메모를, 그러나 작은 2G 휴대폰에 해대던 내가 안쓰러워 후배 동생이 내게 사준 선물이었지. “언니, 이제 용량 걱정 말고 맘껏 적으세요”라는 편지와 함께.


그러고 보니 난 어느새 느릿한 걸 좋아하고 있구나. 동경의 대상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거북이, 달팽이. 느린 양반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느리기 위해 늘 연습하는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 언젠간, 애벌레까지 만나면 나, 삼총사 결성하련다!


자주 쓰는 한글이  “ㅇ,ㅏ,ㅡ,ㄴ,ㅌ” 인걸로 판명. (그런데 ㅌ는 왜???)

 


나의 말동무가 새겨준 내 별칭. 쿵푸판다의 마스터 ‘우그웨이’를 사랑한다. 거북이 양반, 우그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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