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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시대 속 신념이 굳건한 이들의 비장한 투쟁.

영화 <하얼빈> 리뷰

by 민드레


<하얼빈>은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여섯 번째 장편영화로 2024년 12월 24일 개봉한 영화이다. 제49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공식 초청작이다. 10.26 사태를 다룬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다룬 <하얼빈> 모두 공교롭게도 10월 26일에 벌어진 사건들이다. 지금 시대와 맞닿아 있어 더욱 뜨거울 이 영화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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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신아산.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일본군 포로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만국공법에 따라 안중근은 전쟁포로를 풀어주고 그로 인해 역습을 당하게 된다. 독립군들은 안중근의 리더십을 문제 삼았고 그는 그들 사이의 균열로 이어진다.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독립군은 작전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 반면, 이들의 작전을 알게 된 일본군의 추격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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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어떤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안중근이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독립투사들이 하나가 되어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변한 사람, 변해가는 사람, 굳은 의지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펼쳐내며 이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비추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독립'이 그때는 이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들의 투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매 작전마다 목숨을 걸고, 살아남는다면 먼저 떠난 동지들을 대신해 더욱 열심히 투쟁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그 생각으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불확실한 확신을 더한 독립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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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영화와의 차별점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익숙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다루어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이 영화에서 차별점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영화 특유의 무미건조함이 척박한 땅에서의 삭막함을 잘 표현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의도된 비장함이 너무 노골적이라 아쉬웠다. 지나치게 노골적인 나머지 어떤 감동도 어떤 재미도 얻을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얕은 서사로 인해 영화 속의 인물들에게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하얼빈이라는 지역, 그리고 독립군의 이야기 자체로 흥미로움을 유발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큐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와 연극 같은 대사들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평면적인 표현으로 인해 배우 활용이 더욱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조우진 배우의 연기가 정말 인상 깊었다. 왜 일찍이 남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두 가지의 마음이 오가는 복잡한 감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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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속 안중근이라는 사람은 고귀하고 고결한 인물로 표현되면서도 지나친 이상주의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일본군 전쟁 포로를 풀어주어 민족을 위기로 몰아넣기도 하고 작전을 승리로 이끌기도 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장면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며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완벽한 영웅이 없음을 깨닫게 해 준다. 완벽하고 강인한 존재로 이상화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면서도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또한, 갈등의 중심이 되는 밀정에 대한 부분이다. 독립 투쟁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과의 심리전을 통해 위협에 대응해야 했다. 나중에 밝혀진 밀정에 대한 부분을 왜 그렇게 마무리 지었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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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장면들은 극적이지 않아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영화 연출은 우리가 보지 못한 역사의 이면을 마주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 생각해 목숨을 다 바쳐 독립을 꿈꿔왔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절망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독립을 꿈꾸는 이들의 고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서로를 믿기 힘든 상황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현재의 감정에 매몰되어 앞으로의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독립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 대사를 뱉는다. 하지만 그들의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든, 성공으로 끝나든 함께 했던 사람들과 그 투쟁의 흔적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건 '완벽한' 영웅 한 사람이 아니라 민초들이 모여 한마음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하얼빈>이 비록 서사적 깊이에 아쉬움을 남겼을지라도 희미해져 가는 역사를 돌이켜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임은 틀림없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기어이 앞으로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을 준비하면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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