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리뷰
김성제 감독이 연출한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2024년 12월 31일에 개봉한 범죄 누아르 장르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세상의 더러움을 한가득 담아내어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찌든 얼룩처럼 강렬하게 표현한다.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욕망과 생존 본능이 얽히는 가운데, 그 결말은 과연 어떻게 장식될까.
1997년 한국은 IMF로 인해 회사들은 부도위기에 처했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IMF로 인해 공장이 망한 후 빚만 잔뜩 쌓인 국희의 아버지 근태는 이민을 가기로 결심한다. 미국으로 바로 떠나고 싶었으나 여건상 중간 거점지라 할 수 있는 '콜롬비아 보고타'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전재산을 도둑맞고 옛 전우이자 한인 상인회의 실세인 박병장의 도움을 받으러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회는 근태가 아닌 국희에게 찾아왔다. 한인 상인회의 권력을 쥔 박병장 밑에서 일을 시작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간다.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새로운 땅에서의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 만든 또 하나의 한국, 지옥이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잔혹하고 더러운 세상이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양심을 팔고 신뢰를 저버릴 수도 있었다. 아래 계급과 윗 계급의 미묘한 신경전이 흐르고 있었다. 이들의 치열한 생존 뒤에는 사람의 목숨을 손쉽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돈'이라는 차갑고도 잔혹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보고타에는 한국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모였다. 이미 부패의 온상이 된 이곳은 밀수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만큼 끈끈한 듯 보였으나 배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서로를 불신한다. 하지만 '돈'이 풍족하게 흐르고 있는 순간만큼 일시적으로나마 평화가 존재할 수 있었다. 언제 뒤집어질지 모를 기회를 노리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바꿀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또한 아니었다. 이곳은 타국이었으며 몇 년을 이곳에 발붙이고 살아도 철저한 이방인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범죄의 온상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저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할 뿐. 밑바닥부터 시작한 국희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쉽지 않았다. 낯선 나라, 언어, 무능력한 아버지, 말없는 어머니까지 짊어져야 했던 국희는 어깨가 무거웠다. 하지만 특유의 근성으로 박병장의 눈에 들게 되고 전과는 다른 '희망'을 조금씩 품게 된다. 되는 일이 지독하게도 없지만 되는 일이 있기도 한 이 나라의 매력에 빠지게 된 듯 아버지가 중얼거렸던 앗싸라비아 콜롬비아를 되뇐다. 치열하게 살아가던 국희에게도 모든 것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여야 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잃을 각오 또한 해야 했다. 처절한 만큼 더러운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그 기회를 붙잡아야 했기에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한국에 가겠노라 다짐했던 국희는 더 이상 한국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생존과 희망을 꿈꿨던 한 인간이 선과 악의 경계선을 넘어 생존과 욕망 만을 품게 된 모습에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수긍이 가는 결말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의 도시 배경 속 국희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채로 담겨있어 그 변화를 뚜렷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며 그 더러움은 어떤 것으로도 닦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고리가 한순간에 끊어지고 파멸로 이어지는 모습이 매우 강렬했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상식밖의 행동을 하며 위기로 이어지는 장면은 긴장감을 극대화했지만 초반과 중반의 분위기가 후반부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비슷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나와서일까. 살짝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영화의 전개가 무척이나 아쉬웠다.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전개는 꽤 흥미로웠고 몰입감 있게 다가왔다. 낯선 땅에서 펼쳐지는 생존과 욕망이 뒤섞인 생존 싸움은 꽤나 거칠고 치열하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흥미로움은 후반부까지 이어지지는 않아 특히 아쉬웠다. 결말의 아쉬움이 아니라 급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개연성이 아쉬웠다. 어떤 결말을 의도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