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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 그리고 욕망에 뒤얽힌 사람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리뷰

by 민드레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연출한 <에밀리아 페레즈>는 3월 12일 개봉 예정이다. 칸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9분 간의 기립박수와 심사위원상과 주연 배우 4인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무려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역대급 기록을 세웠지만 여우조연상, 주제가상 2개의 상에 그쳤다. 주요 부문에서 주목받은 이 영화는 스릴러와 뮤지컬 장르를 유려하게 결합해 독창적인 색깔을 드러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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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카스트로는 능력이 뛰어난 변호사지만 모종의 이유로 전면에 나서지 못하며 잡일을 떠맡는다. 한계에 다다라 몸도 마음도 지친 어느 날, 리타는 큰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의뢰를 받게 된다. 의뢰인은 멕시코 갱단의 보스인 델 몬테. 그는 리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바로, 자신이 여자가 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일 자체로 상당히 어려웠고 협박도 따르는 의뢰였지만 보상이 어마어마했기에 리타는 받아들인다. 그렇게 델 몬테라는 삶을 지우고 에밀리아 페레즈의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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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마니타스 델 몬테는 하나의 몸을 가졌지만 두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혼란과 불안을 가지며 살아왔다. 남자이자 갱단 보스였던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여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는 평생을 남성, 마초의 삶을 살았고, 마약왕이라 불리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여성으로서의 삶을 꿈꿔왔고 그 꿈을 이뤘다. 그리곤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나르코가 살해한 수많은 멕시코인의 시신을 수습하는 협회의 설립자가 된다. 점점 욕심이 생긴다. 그 욕망이 일으키는 소용돌이로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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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의 고충과 트랜스젠더가 되는 과정의 어려움을 담아내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그 이상의 주제로 나아가지 못한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내면적인 삶에 대해 깊이 다루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이 영화가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성전환을 했다고 해서 근본이 바뀌는 것이 아닌 만큼 타고난 남성성이나 자신의 환경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줘서 흥미로웠다. 특히 마티나스의 부인인 헤시와의 관계와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때, 그의 이기적인 태도가 너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렸던 여성에 대한 삶과 실제 격차, 그리고 전혀 다른 세상에 대한 접근이 생각보다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과거에 저질렀던 모든 것들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마약왕이었던 그가 성녀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결말은 다소 아쉬웠다. 그럼에도 사람이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방향성 자체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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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나왔듯이 카르텔이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납치와 실종은 멕시코의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마약 카르텔은 정부 기관의 부정부패로 인해 더욱 끝을 맺지 못하고 있다. 치안은 압도적으로 최악이며 마약 카르텔 조직들이 모여있는 북부 지역은 무정부 상태에 가깝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는 에밀리아가 실종된 사람들의 유해를 찾아주는 협회를 설립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심각한 문제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큰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주인공의 개인적인 변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그 깊이가 아쉽다. 특히 마약왕이었던 주인공의 모습과 폭력적인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진정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더 몰입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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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페레즈>에서 그리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이미지와 신박한 소재가 눈길을 끈다. 갱단 보스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고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피해자를 돕는다는 설정 또한 굉장히 독특했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가 급진적으로 흘러서 당황스러웠다. 주제의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여기저기 뒤엉켜 산만한 느낌이었다. 가장 문제였던 것은 영화 속 이야기의 전개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는 것이 눈에 너무 잘 보인다는 점이다.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뮤지컬 요소가 등장했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적었고, 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나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가볍게 다뤄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집중이 되지 않았다.



1739348488.png 멕시코인들의 성명문


영화는 시작 전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타국의 사람이 어떤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꼭 그 나라의 배우를 쓸 필요는 없지만 그 나라의 언어, 문화 등을 잘 고증하고 검토하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에밀리아 페레즈>를 본 멕시코 관객들이 성명문을 내면서까지 이 영화에 분노하고 있다. 멕시코 자문을 받지 않은 그 자신감이 이 결과를 의문스럽게 만들었다. 한국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어색한 한국어, 고증되지 않은 문화를 그린다면 우리는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멕시코인들에게는 상당히 불쾌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봤을 때, 문화적 고증에 대한 신중함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정작 멕시코에서는 외면받고 외국에서는 극찬받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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