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계시록> 리뷰
연상호 감독의 <계시록>이 넷플릭스에서 2025년 3월 21일에 공개되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인간의 믿음과 욕망 그리고 사회적 딜레마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성민찬은 개척 사명을 받고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다. 하지만 신도 수는 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교회에 찾아온다. 그런 그를 보며 성민찬 목사는 새 신자가 온 것이라 생각해 기뻐하며 권양래를 적극적으로 신도로 등록하기 위해 애쓴다. 한편, 새롭게 세워지는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길 내심 기대하지만 이미 내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실망하며 돌아온다. 아들이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게 된 성민찬은 권양래가 성범죄 전과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아들을 유괴한 범인이 그라는 '계시'를 받게 된다.
영화 하나로 끝내기는 힘들 정도로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 영화였다. 믿음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확신이 한 번에 무너진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을 믿게 될까. 영화의 분위기나 묵직한 주제가 맞물려 긴장감을 조성하고 어떤 결말로 나아갈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인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수많은 딜레마에 놓인 인간들을 어디에선가 지켜보는 시선이 집요하다. 한 가지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을 더 넓게 펼쳐내었다. 그리고 한 지점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리고 맹목적인 믿음이 주는 파국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의 이 세계는 우리 사회와 맞닿아 있다. 지금의 한국은 분열된 채, 양극단의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가짜뉴스로 더럽혀져 무엇이 진실인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것이 사실인양 자신의 확신에 근거를 더할 뿐이다. 무엇을 위한 믿음일까. 사람은 자신이 보는 것, 믿는 것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세상이라 믿곤 한다. 영화 <계시록>에서는 이 맹목적인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양래는 이 비극의 원인을 괴물이라 하고, 성민찬은 신의 명령, 이연희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복합적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일임에도 우리는 종종 사태의 원인을 하나의 대상에서 찾으려 한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하여 이해려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이 드러나는 셈이다. 눈앞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복잡한 현실을 다각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 속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① 복수와 정의 실현
②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③ 교화와 범죄 피해
복수와 정의 실현
이연희. 그녀는 강력 4팀 형사이자 권양래 사건의 피해자 언니이다. 그날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동생을 잃었고 그 이후로 동생의 환영에 시달린다. 죄책감으로 인해 만들어진 허상이지만 '복수'하기 전까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은 형사다. 감정을 배제하고 증거를 통해 범인을 검거해야 하며 '정의 실현'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동생의 얼굴과 법의 원칙이 충돌하며 복수와 정의 실현 사이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복수는 늘 딜레마처럼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한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의견이 나뉜다. 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을 끊고 정의실현도, 복수도 성공하게 된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정의를 실현했다는 안도감일지, 복수 끝에도 지워지지 않은 상실감일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다.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종교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모순에 대해 들여다본다. 친인척을 주요 교회의 담임교사로 채용하기 위해 '계시'를 이용한다던지, 신의 뜻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계시'로 정당화한다던지. 신의 계시를 오남용 하여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성스러운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원작 웹툰에서는 성민찬의 혼잣말을 통해 불만이나 분노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영화에서는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거나 표정으로 대체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의 민찬은 충분히 찌질한 인간임이 드러났지만 조금 더 속물적인 인간임을 드러내는 대사가 나왔다면 이 메시지가 잘 와닿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특히 자신이 위기에 처한 순간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정신분열증'의 일종인 '아포페니아' 증상을 보인다. 그것은 '계시록'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장하고 부풀린다.
교화와 범죄 피해
가장 큰 딜레마로 작용하는 주제다. 바로 범죄자에 대한 교화와 범죄피해에 대한 이야기다. 범죄자의 교화는 재범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재사회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원인이나 서사에 집중할수록 피해자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의 고통을 간과하지 않으며 범죄자의 교화를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큰 고민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이연희는 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고 강조하곤 했으나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서사나 의도를 파악하여 그가 어린 시절 당했던 학대가 망령을 불러일으켰고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성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범죄자의 다른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교화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실패했지만, 정신과 전문의인 이낙성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이해가 가면서도 밉기도 했다. 범죄자의 교화와 피해자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학대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 셈이지만 피해자에게는 언제나 조심했었어야지, 꼬리를 쳤겠지,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았어야지 라는 가혹한 2차 가해가 뒤따른다는 걸 생각해 보면 가해자에게 동정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좀 이 상황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교화 중점 관점
✔ 범죄자를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목표다.
✔ 교화를 통해 범죄자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사회 적응력을 높이는데
✔ 모든 인간은 변화할 수 있다.
✔ 가혹한 처벌 대신 용서와 화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 범죄는 개인의 문제이자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다.
응보 중심 관점
✔ 범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 엄벌주의를 통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가해자의 교화에 집중하는 것은 부당하다.
✔ 범죄에 대한 관대한 처벌은 사회적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 모든 범죄자가 교화를 통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상영시간 내에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화 특성상 이 세 가지 주제가 버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고민이 전달되는 건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다. 분명히 웹툰과 영화 모두 연상호 감독의 손에서 탄생했지만 영화에서는 원작의 세세한 디테일이 충분히 담기지 않은 듯한 모습은 느낌이 들었다. 원작을 재미있게 봤던 독자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영화로 다가올 수 있다.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지만 해당 주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는 분명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추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연상호 감독이 이 영화가 자신의 모든 세계관이 전부 들어가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아래의 링크에 첨부해 둔 장면은 개인적으로 정말 소름이 끼쳤던 순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gbftdFoeb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