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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어떤 정의는 희생을 치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영화 <배심원 #2> 리뷰

by 민드레


1. 정의의 여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정의의 여신은 로마 신화에서는 유스티티아(Justitia)로,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디케(Dike)로 통칭된다.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정의의 상징이 되었고, 로마 제국의 통치 이념을 확립하고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정의의 여신은 사법제도의 도덕성을 수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존재로 여겨져 왔다. 법원 앞에 놓여있는 정의의 여신은 오늘날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한 <배심원 #2>에서 펼쳐진다. 우리가 굳게 믿어온 정의의 방향성과 그 이름 아래 벌어지는 선택과 책임의 무게는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담고 있는지 되묻는다. 영화는 사법 제도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균열을 조명하며 현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의 정의에 대한 딜레마와 괴리감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법정 스릴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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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임스 카터 사망사건


영화는 제임스 카터 사망 사건에서 시작된다. 사건은 미국 전역을 뒤흔들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이 사건의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된 저스틴은 재판이 진행될수록 자신이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는다. 고위험군 산모인 와이프와 곧 태어날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켄달을 쳤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고한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저스틴은 변호사 래리에게 조언을 구한다. 래리는 절대 말해서는 안 되며 저스틴은 음주 운전 전력이 있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저스틴은 그날의 일을 감추기로 한다. 또한, 자신처럼 사이스 또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무죄를 주장하기로 한 것이다. 자신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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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주주의의 시작, 미국 배심원제도의 현실?


미국의 배심원제도는 일반 시민들이 재판 과정에 참여해 피고인의 유죄 혹은 무죄를 판단하는 사법제도이다. 소수의 법조 권력에 의해 판결이 좌우되는 것을 방지하고, 재판결과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한국에는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배심원제도를 시작하고 있으나 배심원의 평결에 구속력은 없다. 한편, 미국의 배심원 제도는 기소 단계와 재판 단계로 구분된다. 대배심(Grand Jury) 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을 토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며, 피고인의 변론은 듣지 않는다. 반면, 실제 재판에서 유무죄를 가리는 소배심(Petit Jury) 은 검사와 변호사 양측의 주장과 증거를 모두 검토하고 배심원들의 평결을 통해 판단을 내린다. <배심원 #2>에서는 소배심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배심원은 편견 없이 공정해야 하며, 법정에서 제시된 증거와 법에 대한 판사의 지시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배심원 #2>는 이 제도의 이상적인 원칙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회적 편견과 확증편향이 작용하는 순간, 판단의 객관성을 흐리며 재판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건의 외형적인 증거들보다 피고인의 과거 전력이나 개인적 배경이 더 크게 작용하는 순간, 정의는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다. 영화는 정의의 실현과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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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의의 여신상, 그리고 한국.


<배심원#2>에서는 인간의 불완전성, 사회적 편견, 그리고 윤리적 갈등 속에서 정의가 어떻게 흔들리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포착한다. 특히 저스틴 뒤편에 놓인 정의의 여신상은 마치 '상징'처럼 존재하듯 이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각국마다 정의의 여신상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보통은 눈가리개, 저울, 칼, 법전 혹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는 각각 법 앞의 평등, 공정한 심판, 그리고 법의 강제력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현실 속에서의 정의의 여신상은 '완벽한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눈가리개는 외부의 영향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법과 증거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함을 의미하지만 쉽지 않았다. 저울은 상반되는 주장과 증거의 균형을 상징하지만, 사회적 편입견과 확증 편향은 그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칼은 법의 엄정함과 집행력을 나타내지만, 영화는 그 칼날이 누구를 향하는지에 따라 정의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법전은 정의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개인적 윤리와 공동체 윤리 사이의 충돌 앞에서는 때로 무력해지기도 한다.


정의의 여신상은 각국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가리개를 하지 않고 눈을 뜨고 있으며,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이처럼 타국가와 다른 모습을 한 한국의 정의의 여신상은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의 판단이 가진 자에게는 관대하고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가혹하게 적용되는 현실을 지금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스기사의 800원 유죄 판결과 50억 뇌물 무죄 판결이 나란히 존재하는 현실은 국민들로 하여금 법의 형평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본래 정의의 여신은 불의를 꿰뚫어 보라는 의미로 눈을 가리지 않았으나 눈앞의 진실을 못 본척한다는 의미로 눈가리개를 씌웠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편견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손에 들고 있는 저울로 공정과 공평을 실현한다는 의미로 바뀌었지만 본래의 의미와 같은 한국의 정의의 여신상은 과연 눈을 제대로 뜨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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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지 않은 정의 앞에 놓인 우리.


<배심원 #2>에서는 사건의 명확한 진실에 대해서는 비추지 않는다. 단지 완전하지 않는 것들을 포착할 뿐이다. 저스틴은 그 충격적인 가능성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저 이만하면 됐지,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안일한 타협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 제도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고 합리적인 의심이 사라질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의를 추구하기에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신뢰하는 제도이지만 정의가 무너지고 제도의 틈이 생긴다면 '사법 불신'은 사회 시스템 전반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정의를 수호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일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의 양심과 책임감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결말 부분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지는 예상할 수 없으나 '진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다만, 그 진실이라는 것이 완벽하고 명확한 형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에 어쩌면 씁쓸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배심원#2>는 법정 영화 특유의 긴장감과 복잡성을 잘 묘사하며 당신은 '정의'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법정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생각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전체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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