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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티모스, 이번엔 인류를 거대한 실험대 위에 놓다.

영화 <부고니아> 리뷰

by 민드레


원작이 나온 지 24년,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작 <부고니아>를 극장에서 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부국제에서 티켓팅을 처참하게 실패한 뒤, 개봉일만 기다렸다. 란티모스표 <지구를 지켜라>는 어떤 모습일지.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그려온 그의 세계관이 이 작품에는 어떻게 반영될지, 원작이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엠마스톤이 연기할 강만식은 또 어떨지 궁금했다. 자기 확신에서 시작된 모든 행동이 어떻게 폭력과 광기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확신이 세상을 어떻게 뒤틀어 놓는지를 이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영화 <부고니아>는 2025년 11월 5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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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테디는 벌들이 사라지고 자신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외계인의 지구침공계획 때문이라 믿는다. 그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을 잡아 그 음모에 대해 파헤치기 위해 사촌 동생 돈과 함께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사장 미셸을 납치하게 된다. 그녀에게 지구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묻지만 그녀는 자신이 외계인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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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니아


우선, 영화의 제목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 작인 부고니아. 부고니 아는 꿀벌이 소의 시체에서 자연 발생한다는 믿음에 따라 정육면체 집에 소 시체를 넣어 꿀벌이 생겨나기를 기다리는 의식이다. 죽음에서 생명이 나온다는 믿음 혹은 맹신에서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테디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고 믿고 안드로메다인들이 실제 침투를 시작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외계인의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차례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납치하여 실험을 자행한다. 그는 누구보다 외계인을 구분할 줄 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그동안 했던 외계인 감별 실험 중 성공한 것은 단 두 차례.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할 것이라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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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붕괴현상


벌은 생태계와 생태계 먹이사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들의 군집붕괴는 자연의 질서가 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그는 군집붕괴현상의 이유를 모종의 이유로 정부와 기업이 의도하여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 배후는 바로 미셸이라고 믿었다. 음모론을 믿는 만큼 그녀가 외계인이라 확신했고 안드로메다인들이 서서히 지구를 말라죽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 그녀를 납치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보여주는 시선이 테디의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벌집 속 벌은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는 인간과 겹친다. 자기 파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소멸해 가는 존재들처럼 보일 것이 아닌가. 영화에서 인간의 잔혹성과 이기심을 지켜보며 이 행성이 ‘계속 유지할 가치가 있는가’를 시험하고 있었던 것처럼 인류는 실험대 위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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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확신, 그리고 불행


이러한 믿음과 확신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자신의 불행에서 비롯된 망상인지, 확실하게 조사한 것에서의 정보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확신에 의한 믿음이 시야를 넓혀주기는커녕, 오히려 모든 것을 선악 구도로 재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폭력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테디'를 통해 보여준다. ‘악을 처치한다’는 명분으로 타인을 납치하고 고문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지켜낸 것도, 변화시킨 것도 없다. 확신은 그저 그의 세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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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믿음을 실험하다


영화에서의 믿음은 개인의 망상에만 머물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잘못된 믿음이 공유되고 전염되며 확신으로 굳혀가며 하나의 체계를 갖춘 집단이 된다. 테디의 행동은 일부지만 이런 행태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어떤 단체를 떠오르게 한다. 스스로를 ‘진실의 편’이라 믿고, 목적을 위해 폭력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그리고 그 확신을 통해 또 다른 믿음을 만들어내는 모습까지 너무 익숙하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언제나 ‘자극적인 뉴스'를 통해 이득을 얻는 존재들이 있다. 믿음은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공급되고 방향 지어진다. 누군가는 그 확신을 소비하고, 또 누군가는 그 확신을 이용해 더 큰 혼란을 만들어낸다. 테디는 그 판 위에서 뛰고 있을 뿐, 정작 자신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는 끝내 알지 못한다. 자극을 유통하여 이득을 얻고 그 모습을 즐기는 이들의 판에서 놀아나는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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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테디는 쾌락을 느끼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구를 지키겠다는 일념과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이에 대한 복수의 정당성을 들어 폭력을 행사한다. 사실 지구를 지키겠다는 숭고한 가치보다는 개인적인 복수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 확신은 윤리성은 희미해지고 이성 또한 사라진다. 그렇게 자신이 옳다는 이유로 타인을 해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어떤 사명감에 의해 더욱 잔인해지는 것이다. 믿음보다 더 무서운 건 자신의 행동이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라 믿는 것이다. 스스로 영웅이라 착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일일까. 영화에서는 병구, 그러니까 테디에 대한 서사를 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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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에서 추출해 낸 <부고니아>의 이야기


<부고니아>는 <지구를 지켜라>와 닮아 있는 듯 보이지만 결론은 완전히 다르다. 설정만 가져온 이야기라 해도 괜찮을 정도로 담백하고 건조하게 그려졌다. 전작은 광기는 있었으나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연민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그 광기 뒤에는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고니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대신 상처 위에 또 다른 폭력을 덧입힌다. 그가 가진 확신과 선택이었으며 그 책임의 결과였다. 광기보다 더 무서운 건, ‘옳다고 믿는 자신’이었다는 걸 이 두 작품에서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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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티모스 순한 맛


란티모스 감독 영화 중 가장 순하다 느낄 정도의 미묘하고 기이한 광기가 흐른다. 달라진 시대만큼이나 더 잔혹해지고 메마른 감정이 더 크게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적 계급이 다른 '미셸'과 '테디'를 통해 그 미묘한 불편함을 극대화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미셸이 일찍 퇴근하라면서도 할일은 마치고 퇴근하세요 하며 강조하는 장면은 그 불균형과 위압감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개인이 겪고 있는 불행보다는 인간이 행한 잔혹함을 더 드러냄으로써 인간에게는 조금의 연민도 느껴질 수 없게 만든다. 외계인에 대한 고문이라던지 무고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의 가장 큰 차이가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지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인간'만 소각시키는 느낌이 묘했다. 웬일로 기묘한 일이 덜 일어난다 했더니 엔딩에서 결정타를 날리고 만다. 인류는 정말 ‘지켜낼 가치가 있는가'라는 싸늘한 물음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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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의 차이점


원작의 지켜라의 병구는 나름 치밀하고 외계인에 대한 지식도 갖춰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테디는 조금 더 어리숙하고 무모했고, 더욱 잔혹했다. 반면, 미셸의 비중이 늘어났고 지능적이고 설득하는 언변도 빛을 발한다. 제일 걱정이었던 성고문은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유혹당할까 봐 화학적 거세를 하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상의 한계인건지 물파스 고문이 빠진 건 무척이나 아쉽다. 또한, 순이의 순애보가 영화의 재미를 더 살렸는데, 사촌동생 돈으로 바뀌면서 테디에 대한 불신과 고립이 강조된다. 경찰의 역할이 줄어들고 그 경찰과 테디와의 거리를 좁히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척박하고 건조하게 다뤄졌던 원작과는 다르게 넓은 공간에서 비교적인 인도적이고 고급진 모습이 연출되는 건 색다르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원작에 대한 존중인지 한글을 배우는 교실이 등장할 때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을 타이밍은 아니지만..)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원작을 재미있게 보았던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아쉬움이 있을수도 있다.




영화 원작 <지구를 지켜라> 리뷰


https://brunch.co.kr/@mindirrle/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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