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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땅에 묻혔지만 난초는 다시 피어날 테니.

영화 <한란> 리뷰

by 민드레


영화 <한란>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로 2025년 11월 26일 개봉했다. 한란은 '겨울에도 꺾이지 않고 꽃을 피우는 한라산의 난초'를 뜻하며, 제목처럼 가장 참혹했던 역사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강인함 담아낸다. 영화는 국가의 폭력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모녀의 생존기를 통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4·3 사건의 참혹한 진실과 고통받았던 이름 없이 사라져야만 했던 희생자들의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 김향기 배우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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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한 엄마 아진. 마을에 두고 온 딸 해생을 구하기 위해 하산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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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일어나기 전,


못 볼걸 봐도 안 본 것처럼 지내야 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어도 못 들은 것처럼 지내야 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된 지금,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비극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었고, 불행은 예고되지 않은 것이었다. 일부를 잡아내기 위해 전부를 없앨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산에 올라가면 '간첩', 마을에 그대로 있으면 '학살'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알았다면 달라졌을까. 아진이 처음부터 생존을 위해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남편을 보기 위해 올라간 것이었고, 기도를 해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이 전부 불탔다는 말에 시어머니와 있을 딸 해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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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란>의 배경인 4·3 사건에 대하여.


미군정은 해방 후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악명이 높았던 친일 경찰과 관리들을 그대로 등용하였고, 제주도는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특히 미곡정책 등에서의 군정의 정책 실패는 민심을 악화시켰다. 1947년 3·1절 집회 당시 경찰의 말에 아이가 치여 항의하러 모인 일반 시민에게 발포한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민은 이에 항의하여 총파업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군정은 총파업의 원인을 경찰 발포에 대한 도민의 반감 및 이를 이용한 남로당의 선동으로 분석했고 '좌익 폭동'으로 규정하여 '서북청년회'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 후,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는 무장봉기를 일으키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정부는 사태 진압을 위해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중산간 지역 전체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무장대뿐 아니라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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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갈라진 한국, 그리고 제주도


해방의 기쁨을 나누기도 잠시 제주는 또 다른 슬픔을 겪게 된다.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며 총구를 겨누게 된다. 이념이 땅을 갈랐고 사상이 피로 뒤덮였다. 평화롭고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말과는 다른 행동이다. 군인들은 민간인을 학살했고, 무장대는 식량강요와 보복테러를 통해 민간인의 생존을 위협하며 공포를 조성했다. 좌·우 양측의 폭력 속에서 짓밟힌 제주도민의 삶은 그 사건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말처럼 마을 다 태우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 3만 명(추정)이 학살되었다. 국가는 이를 방관했고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 언제나 이념과 무관했던 민간인은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고, 그 후에도 일명 빨갱이로 이름이 남아야 했다. 이 영화는 살아남아야 했던 모녀의 이야기로 표현하며 이 땅에 버려진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하는 흐름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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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자막이 없다면 이해하기엔 다소 어려운 제주도 방언을 직접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인물들의 연기나 몇 가지 장면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다큐멘터리처럼 그때 당시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직접 보는 것 같았다.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의 흐름이 무난하지만 우연에 기댄 이야기의 흐름이 가면 갈수록 거칠어진다. 클리셰적인 요소나 갑작스러운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당황스러움을 야기한다. 특히 4·3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만큼 영화의 제목처럼 희망적이게 그렸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바람이 있었다. 물론,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강렬한 방식으로 전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영화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어수선하고, 엔딩이 비장하기 때문에 그 전개가 어색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적 설명이 더 길었더라면 비극을 소비하는 느낌이 아니라 맥락과 기억에 잘 스며들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설명하는 방식을 비극적이게 그리지 않아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여러 작품들이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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