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의 연대기> 리뷰
배우로서 수많은 영혼을 연기해 온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카메라 뒤편에 섰다. 그리고 자신의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회고록 <물의 연대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대신 인물의 감각을 직접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감독은 원작이 가진 파편화된 문체와 가공되지 않은 슬픔을 선형적인 줄거리가 아닌 감각적인 영상미로 표현해 낸다. 원작 소설이 '몸으로 쓴 글'이라 불리며 문단에 큰 충격을 주었듯, 영화 역시 주인공의 숨소리, 피부의 떨림, 그리고 차가운 물의 질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빛과 어둠, 그리고 불투명한 물의 일렁임을 통해 그 심연을 시각화하며 누군가의 무너진 내면 한복판으로 던져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게 던져진 곳에서 마주한 리디아의 모습은 위태롭다. 멀쩡해 보이지만 리디아 안에 남아있는 트라우마는 서서히 그녀를 무너뜨린다. 통제광이자 성적학대를 자행한 아버지에게서 도망칠수록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시간을 거친다. 그녀는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다시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든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무엇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의 감정이 물밀듯 덮쳐오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물'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리디아에게 수영은 스포츠가 아니라 아무도 나를 만질 수 없는 자유로운 공간의 일부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지속적으로 심어둔 '말'은 그녀의 영혼에 흉터를 남기고 말았다. 그렇게 과거의 일은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삶의 파도는 그녀를 덮쳐 휩쓸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리디아는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싶었고 온전한 가정의 형태를 꿈꿨다.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지독한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헤엄친다. 과거는 끈질기게 그녀를 물밑으로 끌어당기고, 그 지독한 습기는 여전히 남아 성인이 된 그녀의 삶에도 파고들었다.
리디아는 사실 어릴 때부터 감정의 표출구를 '글'을 통해 표현했다. 아버지에게 혼날 때, 아버지가 가정폭력을 휘두를 때, 그 모든 폭력적인 상황에서 리디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한 구석에는 방 한구석 모서리의 곰팡이, 습기 가득한 방안이 자리 잡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은 '글쓰기'였다. 그것이 저항이든 해소든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가 리디아의 몸을 통제하려 들 때, 그녀는 문장을 쓰며 자신만의 보호막을 쌓았다. 자신을 좀먹는 곰팡이 같은 기억을 종이 위로 끄집어 내 언어라는 감옥에 가두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고통이 나를 먹어치우기 전에. 그 글은 작가가 되는 씨앗이었지만 생존 도구나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자신의 고통을 파먹으며 작품을 완성한다는 말처럼 글을 통해 무너진 자아를 다시 이어 붙여간다.
그녀가 새로운 사랑을 찾고 아이를 가지려 했던 것은 아버지가 망친 '가정'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정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는 계속해서 그녀의 발목을 잡아 물 밑으로 끌어당긴다. 리디아는 방관했던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그 울타리 밖을 나가는 두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을 마주하는 것부터가 '나 자신'을 되찾는 것의 시작이었다. 중독되고, 상처 입으며 다시 그 흉터를 파먹는 수억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언니가 말했던 것처럼 삶이 던지는 모든 비극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사람은 없다. 단지 그 파도 속에서 가라앉지 않고 자신의 언어를 지켜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통제광 아버지가 자행한 학대의 숲을 지나 그녀는 이제야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첫 숨을 쉰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더 이상 멈춰있지도 않다.
이 영화는 상처를 봉합하지 않는 결말을 선택한다. 물은 맑아지지 않고, 과거는 사라지지 않으며, 트라우마는 완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감독이 선택한 것은 회복의 서사가 아니라 가라앉지 않는 한 사람을 응시하는 것이다. 리디아는 흐름에 몸을 맡기기도, 저항하기도 하다 끝내 물과 공존하는 쪽을 택한다. 그것은 순응도, 극복도 아닌 생존의 방식이다. 더 이상 자신을 구하려 애쓰지 않고, 구정물 속에서도 숨 쉴 수 있는 몸을 갖게 되는 것이다.
파편화된 서사와 반복되는 물의 이미지 속에서 관객은 리디아를 이해하기보다는 그녀의 감각에 머무르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감각이 몰려온다. 이 영화가 그만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들 때쯤, 그녀의 낙원이 궁금해졌다. 영화는 고통을 설명하지 않고 체감하게 만들며 동시에 그 고통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친절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으며, 끝내 숨이 막히는 감각을 남긴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사실과 마주한다. 누군가의 삶은 결코 하나의 서사로 정리될 수 없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언제나 미완의 상태로 계속 헤엄치는 일이다. 물의 연대기는 물 밖으로 완전히 올라오는 영화가 아니다. 대신, 아직 젖은 몸으로 숨을 고르며 다음 파도를 준비하는 한 사람의 얼굴을 남긴다. 그 얼굴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건네는 유일하고도 가장 솔직한 대답이다.